오소마츠는 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다. 나는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최선이었음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 역시 많이 힘들고 지쳐보였다. 그래서 언제까지고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고, 오소마츠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남은 일은 이치마츠의 영혼을 찾아내는 것. 오소마츠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다며 나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깨달았다. 그 길은, 우리가 대학 시절을 보냈던 캠퍼스로 향하는 길이었다.

 “잠깐, 오소마츠.”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어느 남자 아이가 무언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걸음을 멈춘 나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보았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 친구들과 놀이터에 모여 즐겁게 뛰어 놀고 있는 세피아색 추억이 바로 눈앞에서 재생되었다. 한편 남자 아이는 인형을 품에 안은 채 같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놀이터가 있는 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익숙한 차림새, 그리고 얼굴. 나는 또 다시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오소마츠도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혼자 움직이지 않기로 그와 약속했지만, 나는 남자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는 나를 보고 놀라는 듯하더니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조금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괜찮아. 난 그냥 너와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이 세계는 이치마츠의 과거니까, 길을 가다 갑자기 어린 시절의 그와 마주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 내 눈에 비치고 있는 그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뭐하고 있어?”

 “친구를 보고 있어요.”

 “보고 있지만 말고 같이 가서 놀지 그래?”

 “그녀의 친구들이 저를 싫어해요.”

 나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들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이치마츠에게는 어땠을까. 아이라면 누구나 짓궂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기에, 더욱.

 “친구가 되면 그녀들도 너를 좋아하게 될 거야.”

 “다른 여자애들에게는 관심 없어요.”

 그리고 이치마츠의 시선도 다시 놀이터의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 근처의 모든 것이 관찰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정말 ‘나’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계속 나의 동선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전 단지 언젠가 그녀도 저를 싫어하게 될까 봐 걱정이예요.”

 나는 괴로움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두 눈을 감았다 떴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언젠가는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내가 말하자, 이치마츠는 나무에 얹은 손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그녀가 후회하고 내게 다시 돌아와줄까요?”

 그는 그렇게 묻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그러지 않겠죠.”

 답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나와 있었고,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하지만 전 믿고 싶어요.”

 그는 고개를 들며 또 말했다.

 “간절히 기도하면 신께서 들어주실지도 모르잖아요.”

 그 순간에는, 그의 덤덤한 표정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그 미소를 발견하는 찰나, 등 뒤에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그는 이치마츠에게 총을 겨누었고, 그의 손가락은 정확하게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 돼!”

 나는 이치마츠의 작은 몸을 감싸안았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말했다.

 “그 꼬마는 이치마츠가 아니야. 녀석이 가진 기억의 일부분일 뿐이지. 집착의 씨가 되는 기억 따윈 지워 버리는 편이 나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허상이든 뭐든 간에 난 더 이상 이치마츠가 상처입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울먹이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미간이 좁혀졌다.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키기로 다짐했어. 악몽이라도, 지옥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지금 이곳에 있어. 나 역시, 네가 힘들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그가 총을 쥔 손을 천천히 내리기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성격 알지? 널 위해서라면 난 이보다 더 나쁜 역할이라도 해낼 수 있어.”

 오소마츠는 내 팔을 붙잡고, 나를 이치마츠로부터 억지로 떼어냈다.

 “안 돼, 안 돼! 그만둬!”

 결국 나는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고, 부딪힌 곳에 아픔을 호소했다. 서둘러 몸을 추슬렀지만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오소마츠는 이미 이치마츠에게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문득 이치마츠의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천사……?”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였고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그 중얼거림이 무슨 뜻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치마츠가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제게 왜 이러시는 거죠……?”

 이치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은 딱히 냉정하거나 날카롭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해 총을 겨누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비치지 않는 그 눈동자가,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대답을 하는 데 잠시도 뜸을 들이지 않았다.

 “왜냐면 네가 괴물이니까. 난 그녀가 그런 널 다시 사랑하게 되길 원하지 않아.”

 탕─! 총성이 울려 퍼졌고, 이치마츠는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허망한 마음에 한동안 멍하니 그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멀리서부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에게 탈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바로 그 소리였다.

 오소마츠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세웠다. 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해야만 했다. 오소마츠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빠르게 느껴졌고, 사이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소리는 우리들의 목적지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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