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와 만난 이후 나는 한동안 악몽을 꾸지 않았지만 평범하게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불안을 느꼈고, 머지않아 다시 좌절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그 황량한 방의 풍경이 나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단지 극심한 두통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내가 휴대전화기를 쥐고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거나 그 밖의 대처를 하려고 하면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제이슨은 늘 그랬듯이 어딘가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 나타났고, 난로 앞에서 손을 녹이며 나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가 장소를 떠났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 역시 이전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굳이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방안에 새로운 물건 하나가 생겨났다는 것일까. 그 방은 나로부터 오른쪽 방향의 벽면에 작은 직삭각형의 선반이 달려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던 그곳에 어린아이의 몸통크기 만한 인형이 하나 생겨났다. 너무 낡고 헤진데다 여기저기 뜯어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떻게든 그것이 고양이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상당히 끔직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인형이 싫지 않았고, 그것을 볼 때 마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말하자면 그리움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제이슨, 그 인형에 뭔가 사연이라도 있어?”

 어쩌면 이 감정은 제이슨으로부터 옮겨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나 외에 유일하게 '평범한 물건 이상'의 관심을 가지는 대상. 그는 종종 손에 쥔 고양이 인형을 한참 동안 말 없이 바라보곤 했다. 두꺼운 마스크로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그 속에서는 분명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었다. 인형이란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곧잘 연결되는 물건이고, 인간이든 괴물이든 간에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기 마련이니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난 이 인형을 볼 때마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떠올려. 때로는 미래까지도. 이건 내 겉모습과 내 속마음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거든.”

 제이슨은 손에 쥐고 있던 인형을 선반에 내려놓고서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고는 그대로 계속 그것을 바라보았다. 단지 가만히 서서 한 곳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정말로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이 인형을 갖게 되었을 때, 난 자신의 일생을 전부 합쳐도 모자랄 만큼의 행복, 그리고 모멸감을 느꼈어. 빛이 있는 곳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달까, 마치 신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제이슨이 난로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세워놓았던 칼을 손에 쥐었다. 그는 칼날에 비쳐 일렁이는 불꽃을 내려다 보며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난 언제나 꿈을 꿨어. 여느 인간들처럼 그들의 가족에게, 연인에게 사랑받는 꿈을.”

 그가 손잡이를 살짝 비틀자, 칼날이 세워지며 붉은 빛을 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엄밀히 따지면 동정도 사랑이지.”

 그는 칼을 아래로 향하고서 난로의 불빛을 돌아보았다.

 “신이 내 기도에 돌려준 답은 동정이었어.”

 “…….”

 “어쩌면 그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사랑이었는지도 몰라.”

 불꽃은 고요함속에서 천천히 나무를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참 슬프지 않아?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아무리 형편없는 빛이라 해도 동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잿더미 만큼이나 허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제이슨은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몰라 답답했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쓸쓸한 분위기의 침묵 속에서 단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문득 기억속 안개가 흐트러지며 무언가 떠오를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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