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약속했던 대로, 오소마츠는 일을 끝마친 뒤 곧장 내게 와주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의 눈은 나를 똑바로 향해 있었지만, 그 언저리가 거뭇해진 것이 얼굴에 피곤함이 영력했다. 12시간 동안 고생하는 것도 모자라 거의 매일같이 초과근무를 하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나에게 거듭 물었다. 내 목, 그리고 손목에 난 검붉은 흔적에 대해서. 경찰인 그의 눈에 그것이 어떤 흔적으로 보일지는 생각할 것도 없이 뻔했다. 설령 경찰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는 애인으로서 나를 지켜주려 했겠지만, 자신의 직업 때문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은 너도 꽤나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까, 혼자서 뭐가 어떻게 된걸까 고민하지 말고 일단 나한테 얘기해 봐. 혹시 네가 악몽을 꾸는 것과 관련된 거야?” 그는 미간을 좁히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얘기를 들으러 왔는데 내가 아무 말 없이 계속 머뭇거리기만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어쩌면 내 모습이 오소마츠에게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다그치려 하지 않고,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얼마나 이상한 일을 겪었든, 그 얘기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할 필요 없어. 난 널 믿으니까.” 평소에는 우스갯소리로 내게 간이고 쓸개고 전부 내어줄 것처럼 구는 오소마츠이지만, 진지한 상황에서는 그 분위기가 조금 두려울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 내 손을 붙잡으면, 그가 내 말을 믿든 믿지 않든 나는 자연스레 그에게 의지를 하게 되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최근 매일같이 악몽을 꿔. 눈을 뜨면 언제나 침대 위에 누워 있고, 두 팔이 속박되어 있어. 그대로 시간이 조금 흐르면 어떤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데, 커다란 칼을 가지고 있고, 옷은 언제나 피투성이야.” 나는 말하기를 멈추고 무릎에 덮고 있는 담요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군가 내게 뭔가 이상한 짓을 한 걸까? 아니면 정말 내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오소마츠는 이전과 같이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간혹 내 목에 생긴 흔적에 그의 시선이 머무를 때면, 그의 얼굴에서 진지함을 넘어선 심각함이 느껴졌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얘기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리를 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오소마츠였기에, 나는 자신에게 있어서 민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경우까지 과감히 의심해볼 수 있었다. 누군가 집에 강제로 침입해서 내가 자고 있는 동안 환각제 등의 주사를 놓는다거나, 내가 자주 먹는 식재에 그런 약을 몰래 섞어놓는다거나 하는, 꿈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무섭고 끔찍한 일들. “이리 와.” 그는 얼굴에서 심각함을 잠시 지우고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었다. 넓은 가슴에 기대어 두 눈을 지그시 감으니 익숙한 그의 체온과 다정한 손길에 위태로이 떨리던 가슴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다만,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좀 더 깊이 느끼고 싶었다. “오소마츠, 나 무서워.”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만약 이게 정말 끔찍한 악몽이라면, 그리고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떡하지?” “설령 꿈속이라고 해도, 아니, 지옥이라고 해도 구하러 갈게.” “제이슨은 내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죽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불안해.” “내가 살아 있는 이상 누구도 널 나한테서 빼앗아갈 수 없어. 걱정 마.” 나는 두려움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경찰인 오소마츠에게는 피해자의 가족이나 그의 주변 인물들과 대면하는 것이 주된 업무중 하나인데, 어느 날 한 남자가 납치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서 그는 업무의 일환으로 유가족들을 만나러 갔었다. 당시에 나는 그 근처를 지나가던 중이었고, 그가 피해자의 6살 된 어린 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적한 놀이터의 그네에 소녀가 앉아 있었고, 소녀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은 오소마츠가 그녀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오빠는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지는 않지만 어디든지 달려서 갈 거고, 마술사처럼 요술을 부리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거야. 그러니까 나를 믿고, 울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다려. 나쁜 아저씨들이 전부 벌을 받을 수 있도록 오빠가 힘낼게. 알았지?” 어쩌면 그것은 오소마츠가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날 때 마다 습관처럼 하게 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만약 그가 무의식중에 자연스레 그 말을 내뱉게 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정형화 된 생각 혹은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온갖 위험한 일에 뛰어들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기는 커녕 욕을 먹는 일이 빈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소마츠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딱히 사건에 관련된 것 뿐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일과 마주함에 있어서 그랬다. 그리고 그것이 연인이라는 관계를 떠나서 내가 그를 믿을 수 있는 이유였다. “날이 밝을 때까지 옆에 있어줄 테니까, 오늘은 안심하고 푹 자. 너 얼굴이 너무 초췌해졌어.” “응…….” 나는 오소마츠의 옷을 움켜쥐고서 그의 어깨에 이마를 부비적거렸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문득 뺨을 감싸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나를 자신과 마주보도록 한 뒤 그대로 내게 키스를 했다. 그의 입술이 나 만큼이나 지쳐 있었지만, 그로부터 전해져오는 마음은 굉장히 강하고, 뜨거운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분명히 그가 곁에 있는데, 더 이상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은데, 머리가 조금씩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깨닫고 보면 멀리서부터 작은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속삭임은 나에게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돌아와. 도망치지 마. 벗어날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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