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바깥은 아직 환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처음 이 집을 얻었을 때는 나에게 언제든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매일이 즐겁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깊은 한숨이 나온다. 내가 악몽을 꾸기 시작하고서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날이 갈수록 꿈속으로 불려가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 현실 속에서도 그 꿈의 형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점이다. 아무리 리얼한 꿈이라고 해도 깨어있을 때는 그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단단한 금속으로 지어진 그 방의 벽과 천장이 내 방의 것과 겹쳐 보인다. 이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모르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피곤해져서 그냥 침대에 누워 푹 자고 싶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고집불통인 나라도 체념을 하게 된달까,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자신의 휴대전화기에 남은 메시지들을 보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자신을 탓하게 된다. 작은 액정 속에, 나를 걱정하는 오소마츠의 진심어린 말들이 담겨 있다.

「어제는 잘 잤어?」

 「밥 제대로 챙겨먹고 있지?」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오늘 일이 끝나면 만나러 갈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부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건만, 그 말들을 하나하나 되새길 때 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고마움, 그리고 설렘. 남들은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반 농담으로 말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두근거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가 곁에 있어준다면 나의 암담한 상황까지도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

 …

 낮에 장을 봐온 식재료들을 이용해 저녁식사로 먹을 음식을 몇 가지 만들었다. 오늘은 오소마츠와 밤새 함께 있을 수 있는 날이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근무가 비번인 날마다 내게로 와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소마츠가 있을 때 만큼은 악몽을 꾸는 일이 없다. 이따금씩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 뿐, 그날 하루 만큼은 나도 긴장을 놓을 수가 있다. 이제는 그 하루가 나의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잠을 푹 잘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것을 떠나서도 나로서는 일주일 만에 그를 만나게 되는 이 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애인이고, 좋아하고 있으니까.

 띵동─.

 “아얏!”

 주방에서 요리의 마무리를 하는 도중 초인종 소리를 들은 나는 저도 고개를 확 들었다가 손가락을 날에 베이고 말았다. 칼을 쥐고 있었다고 해도 딱히 무언가를 썰고 있지는 않았는데, 깊숙이 베인 상처에서 새빨간 피가 솟구쳐 나왔다. 의아함에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나는 곧장 현관으로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갑자기 울긋불긋한 것이 얼굴 앞으로 확 들이닥치는가 하면, 향긋한 꽃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그리고 꽃다발에 이어, 오소마츠가 문틈으로 얼굴을 쑥 내밀었다.

 “이런 건 뭐 하러 사왔어?”

 “네가 매번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니까, 나도 뭔가 선물하고 싶어져서 말이야.”

 나는 애써 기쁜 마음을 감추며 꽃다발을 받고서 그를 안으로 들였다. 그것만으로도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너만 있으면 충분해’라는 목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켜야만 했다. 그 후 거실에 이렀을 때 즈음, 오소마츠가 돌연 나를 붙잡았다. 내 손가락에 상처가 나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괜찮아?”

 “그냥 살짝 베인 것뿐이야.”

 그가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나는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치료는 주방의 선반에 넣어두었던 밴드를 붙여놓는 것으로 끝냈다. 이미 충분히 지쳐있을 오소마츠를 그런 사소한 일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좋은 냄새가 나네─.”

 “처음 만들어본 거라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많이 먹어.”

 “난 밥을 사먹을 때 언제나 가격에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서 웬만한 걸로는 불평하지 않아.”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무원도 실은 여러가지로 힘들구나.”

 “나 같은 경찰들은 더 그렇지. 아, 생각하기도 싫어. 그보다 네 얘기를 하자.”

 오소마츠와 식탁에 마주앉은 나는 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일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야기를 듣는 쪽인 오소마츠도 나만큼이나 지쳐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내 앞에서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환하게 웃다가도 나와 함께 심각하게 고민을 해주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내 곁을 지키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이따금씩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지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리 상황이 극한에 치닫는다 하더라도 그를 위해서 견뎌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으로 몇 번이고 두려움을 억누를 수가 있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충분히 그에게 의지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자, 그럼 보여줘.”

 식사를 끝마친 뒤 소파에 앉아 쉬고 있노라면, 오소마츠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가 탁자 위에 내려놓은 것을 보니, 다름 아닌 구급상자였다.

 “살짝 베였다고? 누구 눈을 속이려고.”

 “…….”

 들킨 이상 거기서 더 잡아떼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얌전히 그에게 손을 내주었다. 오소마츠는 응급처치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기에 소독을 하고, 붕대를 잘라 손가락에 감고, 마무리를 하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밴드를 붙이고 있을 때는 계속 욱신거림을 느꼈었는데, 그가 손을 봐주고나니 붕대가 상처를 꽉 잡아주는 듯해서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일하는 도중에 다치면 이렇게 치료해주는 사람 있어?”

 “그야 물론 없지! 다들 제 몸 건사하기 바쁜데 누가 날 신경 쓰겠냐? 하하핫──.”

 “암울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째서 유쾌하게 웃는 거야…….”

 “그런데도 네가 있으니까 행복한 거야─. 모르겠어─?”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오소마츠의 웃는 얼굴을 보면 저도 모르게 속으로 ‘바보…….’ 하고 중얼거리게 되지만, 그럴 때 마다 항상 나는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답답함 등이 전부 하나의 따뜻한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쓴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깨닫고 보면 어느덧 나는 그의 어깨를 감싸안고 있었다. 나의 체온이 전해진 것일까, 그는 내 품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 그대로.

 “저기, 나 지금부터 씻으려고 하는데 같이 들어갈래?”

 “그래, 기다리는 시간 아까우니까─.”

 “실은 내 몸이 보고 싶을 뿐인 거 아냐?”

 “곧 보게 될 텐데 뭐 하러 그런 생각을 하겠어─.”

 “하겠다고 말한 적 없거든. 나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잤고, 너도 하루 종일 일해서 피곤할 테니까 오늘은 쉬어.”

 “안 돼, 안 돼,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완전히 충전하지 않으면─. 예전에 거의 두 달 동안 만나지 못했던 적이 있었잖아─. 그때 정말 미쳐 버리는 줄 알았어─. 원래 ‘일 일 일 너 일 일 일’인 내 일정이 ‘일 일 일 일 일 일 일’이 되어서 말이야─. 그런 거 더는 무리야──!”

 이 녀석의 삶에는 정말 ‘일’과 ‘나’밖에 없는 걸까…….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와 함께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끝냈다. 동료 경찰들은 모두 다부진 어깨에 아랫배가 조금 나온 체형인데, 몇 년 동안 그 바닥에서 일해왔다고 해도 그는 아직 10대 같은 얄쌍한 몸을 하고 있었다. 범죄자들에게 얕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 하지만 내가 딱히 몸에 대해서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늘 그래왔듯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나도 그를 좀 더 잘 챙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언제까지고 상대방에게 의지만 해서는 이기적인 애인이라는 말에 부정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본심을 좀 더 말하자면, 오소마츠가 그런 내게 질려서 나를 떠나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음…… 읏……!”

 “왜 그래?”

 내 입술에 뜨거운 숨결을 떨어뜨리며, 그는 자신의 아래에 누워 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침대 맡의 딱딱한 곳에 손목을 부딪히는 순간 아픔이 관절 마디로 찌르르 퍼져나가 입술을 채 떼기도 전에 무심코 신음을 흘려버렸다. 키스에 이성을 빼앗겨서 악몽에 대한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나는 문득 자괴감을 느꼈다. ‘어째서 이런 순간까지 그 녀석을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오소마츠에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다만, 이렇게 물었다.

 “있잖아, 지난번에 했던 말, 진심이야?”

 “응?”

 “꿈속이라고 해도, 지옥이라고 해도, 나를 구하러 오겠다는 거.”

 “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 없어. 사랑하니까 당연하잖아.”

 “하지만 거긴 너무 무서워. 그리고 끔찍해. 그 꿈을 꿀 때 마다 언제나 너를 생각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네가 없었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 혹시라도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분명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나와 뺨을 맞대고 있던 오소마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땀에 젖어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었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며 낮지만 온화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내 ‘사랑해’를 얕보지 마. 절대로 널 내버려두고 죽거나 하지 않아. 생각해 봐, 내가 한 번이라도 널 가슴 아프게 했던 적 있어?”

 “하고 싶은 말은 엄청 많지만, 크게 사고친 적은 없으니까 넘어가줄게…….”

 그는 내 귓가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얘기를 하느라 쉬고 있던 몸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흔들릴 때 마다 울려 퍼지는 쾌감과 함께 그의 숨소리가 내 가슴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와 닿아 있는 모든 곳이 너무 뜨거워서 그대로 녹아버릴 것 같았다. 계속 악몽에 시달릴 바에는, 계속 그 모습을 떠올릴 바에는,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