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나는 매일같이 악몽을 꿨고, 꿈속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처음 며칠 동안은 스트레스 때문에 이상한 일을 겪고 있는 것 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자신의 바람과 달리 내 일상은 점점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꿈을 꾸지 않기 위해 수면을 기피하게 되면서 몸이 망가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늘도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지만, 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어차피 다시 그 꿈을 꾸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문득 진동소리가 들려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베개 밑에서 자신의 휴대전화기를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화면 하단에는 내게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나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여 잠겨 있던 목을 가다듬은 뒤 버튼을 밀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게─?」 “오소마츠지 누구야.” 「으응, 맞아. 헤헷─.」 “번호가 저장되어 있으면 어차피 화면에 뜨는데 왜 매번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그냥, 네가 내 이름 부르는 걸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서.」 “요즘 경찰은 엄청 한가하나 보네. 이런 녀석들은 월급을 줄여야 하는 건데.” 「너무해─. 지금까지 바쁘게 일하다가 겨우 짬을 내서 전화한 거라구─.」 “또 비상계단에서 몰래 하고 있지?” 「우와, 어떻게 알았어?」 “소리가 울리잖아.” 나는 통화를 하면서 위태롭던 심장 박동이 조금씩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거칠게 내쉬고 있던 숨도 어느덧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 정말 불쌍하지 않아? 여자친구랑 마음 놓고 통화도 못하고 말이야.」 “다른 직업군도 근무 시간에 사적인 통화를 하지는 않아. 네가 불량한 거지.” 「그래도 내가 전화 걸어줘서 기쁘지─? 그렇다고 말해줘─.」 “너란 녀석은…….” 이 남자의 이름은 마츠노 오소마츠. 내가 고등학생시절 처음 알게 된 녀석이고, 조금 전에 얘기했다시피 우리는 지금 교제를 하고 있다. 사귀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이고, 그 전까지는 그럭저럭 친한 친구로 지냈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나와 같은 도시에 살아왔고, 경찰로서 근무해왔다. 그는 1년 내내 바빠서 이따금씩 경찰서 근처를 지날 때 잠시 들른다고 해도 만나지 못할 때가 많다. 주말에도 각자 미뤄두었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는 것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이고, 평상시에는 그저 이렇게 수화기 너머로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고작이다. 「요즘따라 기운이 없는 것 같네. 무슨 일 있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내게 물었다. 물론 나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내 애인이니까 그에게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뒤 대답했다. “실은 계속 이상한 꿈을 꾸고 있어.” 「악몽?」 “응, 모든 것이 너무 리얼해서 잠에서 깨어나도 돌아온 것 같지 않아.” 「괜찮아?」 “솔직히 말해서 이제 한계야.” 「그럼 이 얘기는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당분간은 계속 바쁠 거라고 했잖아.” 「잠자는 시간을 조금 쪼개면 돼.」 “그러지 마, 지금도 충분히 피곤할 텐데.” 「네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떻게 맘 편히 잘 수 있겠냐? 괜찮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 말하고는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고마워, 오소마츠.” 「고마워는 필요없으니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너는 정말 나한테 해줬으면 하는 말이 많구나.” 「전화로는 그것밖에 네 마음을 확인할 방법이 없잖아.」 “그래도 말할 타이밍은 내가 스스로 정하게 해줘.” 그는 ‘칫, 알았어…….’ 하고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곧바로 그려졌기에, 나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두고 봐, 만나면 반드시 말하게 해줄 테니까.」 “내가 평소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던가?” 「그래! 마지막으로 들었던 게 언제였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나! 이쪽은 언제나 하고 있는데 말야! 불공평하다고!」 “사랑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너는 날 너무 사랑해. 조금 줄여도 될 텐데.” 「으─, 열받아! 하지만 사랑해!」 “그래, 알았어. 이제 그만 네 자리로 돌아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야 돼. 알았지?」 “응.” ──. 나는 통화를 끝낸 뒤 주방으로 향했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기운을 차리려면 그래도 먹어야만 했다. 둥그런 그릇에 우유와 시리얼을 붓고나니, 예전에 과자를 만들기 위해 사다놓았던 크랜베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높은 곳에 위치한 선반으로 손을 뻗고 안쪽을 뒤적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쾅- 하고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익숙한 소음과 함께 거센 두통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휘청 하고 두 손으로 싱크대를 짚었다가 그대로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태껏 몇 번이고 반복된 일이었지만 여지없이 두렵고, 불안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꼭 잠을 잘 때가 아니여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악몽을 꾸게 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떠보면 어느덧 나는 또다시 어두운 방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꺼운 사슬에 두 팔이 단단히 속박된 채. 덜컥─. 철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가 하면, 늘 그렇듯이 얼굴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오로지 그 순간에만 바깥을 엿볼 수가 있었다. 엿본다고 해도 캄캄한 어둠 뿐,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나로서는 답답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적어도 그 남자 외에 나를 위협하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움직일 수 없는 것에는 익숙해졌지만, 매번 어딘가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남자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커다란 칼을 손에 쥐고 있었고, 이따금씩 반대쪽 손에 망치를 들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살벌한 그 물건들을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데 썼을까 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행여 남자에게 물으면, 그는 몰라도 된다며 매번 똑같은 대답을 돌려줄 뿐이었다. 그래……. 남자는 내게 무엇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적어도 먼저 말을 걸면 내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사용했고, 나는 일본인이 아니지만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애당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닌 일본이고, 내 애인 오소마츠 역시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 남자와 소통을 하는 데 딱히 문제는 없었다. 처음에는 괴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다소 해괴한 상상도 했었지만, 그는 표면적으로 엄연히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 “제이슨.” 언젠가 영화에서 본 적이 있던 인물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남자를 그 인물의 이름으로 불렀다. 제이슨은 자신이 이름을 옛날에 잃어버렸으니 좋을대로 하라고 했다. 이름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섣불리 저항을 하는 것보다 일단 침착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제이슨은 말수가 적었지만, 일반적인 납치 영화의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서로 말이 통한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한 얼굴로 손에 쥐고 있던 자루를 내 앞에 던진 뒤, 제이슨은 난로에 다가섰다. 그는 방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난로 앞에서 불을 쬐었다. 이따금씩 그의 손이 닿아올 때면 나는 그와 닿아 있다는 사실보다도 그 얼음장 같은 한기에 움찔- 하고 몸을 움츠리곤 했었다. 꿈속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겠지만, 따뜻한 봄의 계절인데 어째서 이렇게 손이 차가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그것은 그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 중 하나일 뿐이었다. “왜 먹지 않는 거야? 그 정도는 움직일 수 있잖아.” “반대로 묻고 싶은데, 어째서 내가 먹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팔을 가로 뻗어 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침대 밑에는 그 동안 제이슨이 내게 가져다주었던,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자루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와 같이 내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그가 내게 윽박을 지른다거나 나를 해코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먹든, 먹지 않든, 그는 묵묵이 자루를 가져와서 내 앞으로 던졌다. 단지 그 뿐이었다. “저기, 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몰라. 하지만 만약 내가 계속 이 장소로 돌아오게 되는 것에 네가 조금이라도 관여하고 있다면 날 그만 놔 줘.” 제이슨은 나의 부탁에 언제나 잔인하리 만큼 간결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침묵은 ‘No’라는 뜻이었고, 그는 자신의 의사를 결코 번복하는 일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는 여전히 미스테리한 존재였지만, 좋다/싫다, 된다/안된다 등의 생각 만큼은 확고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되지만 얼굴을 보는 것은 안 된다. 그가 나를 만지는 것은 되지만 내가 그를 만지는 것은 안 된다. 소리를 치거나 화를 내도 되지만 물리적인 저항을 하면 죽인다. 내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 그와 내 사이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생겨났고, 나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해서 그 규칙을 지켜야만 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현실의 나는 어떻게 돼? 역시 자고 있는 거야?” “때로는 자고 있고, 때로는 깨어 있을 거야.” “깨어 있다니, 무슨 소리야? 현실의 나도 지금의 나처럼 말할 수 있는 거야? 누구와? 너와?” 제이슨은 불 앞에 앉아 아늑함을 느끼면서도 방에서는 좀처럼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난로에 잠시 세워놓았던 자신의 칼을 손에 쥐고 다시 방을 나가려 했다. 내게 먹을 것을 건네주는 것 외 다른 볼일은 없다는 듯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나에게는 그가 없는 것이 나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혼자 남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려웠다. 아직 문 너머 어둠속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얌전히만 있으면 제이슨은 나를 해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다려.” “?” “나를 이런 소름끼치는 방에 가둬놓고 혼자 어딘가로 가 버리지 마, 나쁜 자식아.”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뭘 하든지 일단 여기 있어.” “…….” 제이슨은 나를 돌아보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조용히 내게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에게서 짙은 피비린내가 풍겨오는 순간 그를 불러세웠던 것이 후회되었지만 그가 의외로 내 말에 순순히 따라준 것에 대해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스스로는 움직일 수도, 그를 건드릴 수도 없었다. 내게 그를 붙잡아둘 방법은 오로지 말 뿐이었고, 그것은 미약하나마 내가 가진 유일한 힘이었다. “제이슨, 우리 그냥 한 번 상상해보자. 만약 지금 내가 너에게 필사적으로 저항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널 죽여 버릴 거야.” “어떻게?” “방법이 중요해?” “중요하지. 내가 느끼게 될 고통의 정도가 달라지잖아.” “원한다면 최대한 고통이 없도록 해줄게. 뭘 어떻게 하든 네가 죽게 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 “으음…….” 나도 딱히 손발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그에게 제대로 된 저항을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그런 말을 듣고나서 스스로 체념을 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제이슨은 난로를 향해 앉아 있었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투나 습관 등을 보면 아직 젊은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가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 “제이슨.” “왜?”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애인 있어?” “…….” “혹시 차였어?” “……╬.” 제이슨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렵고 약간 머쓱하기도 해서, 나는 능청스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왜 차인 거야?” 이런. 그 질문이 자신의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속으로 이마를 쳤다. 호기심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곤란을 겪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도, 깨닫고 보면 언제나 나는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자신이 완전히 안전불감증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녀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겼어.” “에…….” 당연히 무시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제이슨이 내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남자와 잔 거야?” “몰라. 아마도 그랬겠지.” 이별이란 본디 안타까운 것. 하지만 나는 상대방의 바람이 그 중에서도 최악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 남자와 몇 년 째 교제해온 데다 아직까지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내가 말해도 그다지 현실성이 없겠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 만큼 사람을 크게 상처입히는 것은 없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만약 제이슨이 그것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여지 없이 그를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라고 말하는 제이슨의 목소리는,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들려왔다. “난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어. 최근 계속 악몽을 꾸고 있다고 말했더니, 엄청 걱정했어.” 제이슨은 난로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하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기에, 나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곧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도착했을 때 나가지 못할까 봐 걱정 돼.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분명 문을 열어줄 때까지 집앞에서 기다릴 거야.” 그런 말들이 제이슨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신의 목소리가 우울함에 젖어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소마츠는 내가 외로울 때나 무서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었고,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몇 번이나 이런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서는 어떻게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가 보고 싶었고,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2주도 더 지난 일이었다. 그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와주었는데,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보내줄게.” “응?”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면 현실로 보내줄게.” “정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이슨은 난로 안에서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뜻밖의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나로서는 거기서 싫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약속을 하든 하지 않든 어차피 꿈을 꾸는 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고, 현실로 돌아가 오소마츠와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할게! 제발 보내줘!” “…….” 제이슨은 잠시 말이 없다가 몸을 일으켰고, 나를 향해 섰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간단한 타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바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노라면, 제이슨이 문득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오른쪽 어깨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나는 사색이 되었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뭐, 뭐하는…….” “네가 너의 꿈속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듯이, 이 악몽도 내가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억지로 깨어나게 하려면 그 만큼 큰 자극을 주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거짓말이지…….”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할 거라고 생각했어? 걱정 마,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잠깐…… 그만둬……. 꺄아아아──!!!” 칼이 내리쳐지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새빨간 선혈이 내 시야를 뒤덮었고, 무거운 어둠이 나를 짓누르듯이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그 순간에는 괴롭다는 생각이 들지도, 아픔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치 세상이 멈춰 버린 듯 꿈속에서의 내 시간은 거기서 끝났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모습을 보면 몸에 가로로 길게 생긴 흉터가 있었고, 고개를 내리면 늘 그랬듯이 양쪽 손목에 속방당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고개를 세차게 저은 뒤 찬물로 세수를 했다. 꿈을 꾸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좀처럼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어째서인가 잠에서 깨어나면 그런 꿈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이상하고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해 커다란 자괴감이 느껴졌다. 나는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여전히 조금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거실로 나갔다. 그때, 띵동- 하고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잠깐 꿈을 꾸었을 뿐인데,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덧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나는 흐트러진 옷을 추스르는 것도 잊어 버리고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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