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소마츠와 했던 약속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일단 해보자라는, 나로서는 상당히 과감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자신이 왜 계속 악몽을 꾸어야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 내 옆에 있을 때는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 덧붙여 제이슨은 꿈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나는 자신의 가슴에 제이슨에 대한 저항심과 도망치고자 하는 욕구가 겉잡을 수 없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큰 결심을 했다.

 현재 나는 자신의 집이 아닌 오소마츠의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오소마츠는 직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녀석이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전까지 그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났던 것을 생각하면 차마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오소마츠는 원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가 집에 없을 때는 동생인 카라마츠가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물론 낮 동안에는 그도 일을 나가야 했다. 나는 반나절을 바깥에서 보내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덕분에 몇 주간이나 악몽을 피할 수가 있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것으로 괜찮을 것 같았다.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은 거냐.”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는 소파에 앉아 초조한 마음으로 휴대전화기의 액정에 비친 시계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도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비번인 날이라 볼일을 마치고 금방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뜻밖의 일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카라마츠가 괜찮을 거라며 다독여주었지만, 나는 좀처럼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동안 악몽을 꾸지 않았기에 더욱 제이슨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정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는 아무런 계획이 없더라도 일단 바깥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그때 즈음 휴대전화기 액정의 화면이 바뀌며 작은 메시지가 떴다. 오소마츠로부터 온 것이었다.

 “곧 도착할 거래.”

 “다행이군.”

 그 말대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가 올 때까지 카라마츠와 함께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을 바짝 긴장케 했던 두려움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띵동─. 그때, 인터폰으로부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오소마츠 외에는 딱히 올 사람이 없었고, 아무래도 택배기사인 것 같았다.

 나는 카라마츠가 현관으로 나가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거실 한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지, 택배기사가 물건을 건네주지는 않고 손에 쥐고 있는 기기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잠시 후 카라마츠도 현관 밖으로 나가서 기기에 비친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무언가 착오가 있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쾅!

 갑자기 현관문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무도 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았고, 아무도 문을 밀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지만 나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나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밀려오는 불안감에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바깥에서 카라마츠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굳게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텅빈 거실과 정적. 그곳에 남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제자리에서 휘청거리던 나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소리를 쳐보아도, 누구도 내게 달려와서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 남자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제이슨,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은 바닥이며 천장이며 온통 검은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나를 속박하고 있는 두꺼운 사슬이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벗어나려 하면 할 수록 오히려 더욱 나를 죄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많이 참아준 거야.”

 제이슨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고 차갑게 들려왔다. 피부는 온통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는데, 그의 팔뚝과 목에 돋아난 검붉은색의 핏줄이 방안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심장박동 소리를 따라 굵어졌다가 얇아지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형상이었다.

 나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을 어찌하지 못하고 발버둥을 쳤다. 문득 제이슨의 무릎이 침대 위로 올라오는가 하면, 그대로 상체를 숙이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다 결국 쓰러지게 되었다. 그런 내 귓가에 대고 제이슨이 속삭였다.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오겠다고 했잖아…….”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그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랐다. 평소 익히 들어왔던 원래 목소리인데,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다른 사람이 말한 듯, 아주 슬프고, 쓸쓸하게 들려왔다. 오로지 그 순간 뿐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라고.”

  또다시 변한 차가운 목소리.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역시 제이슨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일 리가 없다. 제이슨의 하얀 손이 내 앞섬을 꽉 움켜쥐자 그 손에 닿은 옷이 까맣게 물들었다. 마치 불에 타서 사라지듯이, 그의 손 안에서 녹아내렸다. 목에 떨어지는 그의 숨결은 얼음의 그것처럼 차가웠다.

 제이슨의 손은 내 가슴에 닿았다가 목으로 옮겨가서 그대로 나를 어루만졌다. 검은 점액이 묻은 곳에서 불쾌한 느낌이 났고,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천천히 화상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 순간부터 나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닌 실제적인 위험을 느꼈다. 내가 비명을 지르거나 어떠한 저항을 하기 전에, 제이슨이 나의 다리를 휘어잡고 내 안으로 들어왔다.

 “윽……! 아아……!”

 아픔, 공포, 깊은 수치심. 때로는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순간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끝을 모르는 무력감에 절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제이슨의 어깨를 밀어내거나, 때리는 것 뿐. 그의 몸은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처럼 딱딱하고 차가웠고, 내 저항을 소리 없이 비웃었다. 어느덧 검은 점액이 온몸을 적셔서, 그대로 가다간 결국 뼈만 남게 될 것 같았다. 그 만큼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제이슨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움켜쥔 탓에 고개를 돌릴 수도, 신음을 내뱉을 수도 없었다. 문득 무언가 시트 위에 나뒹구는 것이 느껴졌다. 제이슨의 마스크인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마치 그에게 자신의 생명력을 모두 빼앗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아직은 포기할 수 없겠지.”

 실낱 같은 의식으로 힘겹게 눈을 떠보니, 제이슨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하지만 시야가 엉망진창으로 뭉개져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방이 불타올랐고, 그 안의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갔다.

 “네가 직접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은, 내가 전부 없애 버릴 거야. 너의 주변에서 하나씩, 하나씩. 과연 그 일을 지켜보는 것과 이 악몽을 꾸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지금부터 잘 생각해 봐.”

 어쩌면 이곳이 정말 지옥일지도 모른다.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