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뒤틀린 일상이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쓰러진 이후 나는 오소마츠로부터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믿을 수 없는 것 뿐이었지만, 적어도 그가 곁에 있으면 자신이 점점 악몽의 깊숙한 곳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저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가슴 한 구석에 허전한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오소마츠의 말에 따르면, 이 꿈의 세계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첫째, 혐오. 이것은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모두 더럽고 흉측하게 묘사된다. 둘째, 집착. 이것은 이치마츠를 움직이게 하는 힘과 같은 것으로, 이것이 모두 없어지면 그도 사라지게 된다. 셋째, 허상. 이것은 이치마츠에게 있어서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꿈의 배경에 불과하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집착이다. 오소마츠는 아직 살아 있는 이치마츠의 육체를 잠재우기 위해 마지막 하나 남은 그 집착을 부숴뜨려야만 한다고 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집착이 묻어 있는 ‘물건’이었다. 나는 깊이 고민했다. 내가 이치마츠와 함께했던 시절과 똑같은 모습의 도시 한 가운데서, 한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공터의 벤치에 홀로 앉아, 그 물건이 무엇일까 계속 생각했다. 이 세계는 이치마츠의 기억이다. 그 기억에, 그의 내면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물건도 분명 그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을 터. 분명, 그 중에서도 인상에 깊이 남을만한, 중요한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이거 마셔.” 근처의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온 오소마츠가 내게 캔 하나를 내민다. 꿈이라고 해도 과거의 세계라고 하면, 조금 황당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내가 어렸을 적 정말 좋아했던 이 음료는, 몇 년 전 판매중지 되어 현실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다. 옛날에 이치마츠가 나에게 종종 이것을 가져다주곤 했었다. 이제 그런 사소한 일 마저 아픈 추억이 되었다. 모든 것이 그렇다. “뭐 좀 생각난 거 있어?” “아직.” 오소마츠가 옆으로 다가와 앉고는 내 어깨를 감싸안는다. 하지만 그도 지친 걸까, 그의 손은 곧 내게서 멀어졌다. 그는 캔을 기울여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공터 한 구석에 시선을 던졌다. “어쩌면 그 물건은 녀석이 집착하는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몰라. 어떤 유형의 집착이든 간에 결국 모두 한 사람에게서 나온 거니까.” “…….” 나는 조금씩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치마츠는 나를 직접 꿈속으로 데려왔다. 한 번은 도망치려고도 해봤지만, 그에 의해 다시 방에 갇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도 이치마츠에게 있어서는 집착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와 연관된 물건이라고 하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은 한동안 내 안에서 망각되어 있었다. 내가 곧바로 떠올려내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그 인형에 뭔가 사연이라도 있어?” “난 이 인형을 볼 때마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떠올려. 때로는 미래까지도. 이건 내 겉모습과 내 속마음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거든.” “처음 이 인형을 갖게 되었을 때, 난 자신의 일생을 전부 합쳐도 모자랄 만큼의 행복, 그리고 모멸감을 느꼈어. 빛이 있는 곳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달까, 마치 신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 “어렸을 때 난 언제나 꿈을 꿨어. 여느 인간들처럼 그들의 가족에게, 연인에게 사랑받는 꿈을.”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엄밀히 따지면 동정도 사랑이지.” “신이 내 기도에 돌려준 답은 동정이었어.” “…….” “어쩌면 그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사랑이었는지도 몰라.” “참 슬프지 않아?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아무리 형편없는 빛이라 해도 동경할 수밖에 없다는 게.” 마음을 비추는 거울, 유일한 사랑, 동경……. 오로지 그때 뿐이었다. 이치마츠가 살아있을 때도, 그가 그런 쓸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원하는 것이 모두 집착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밖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인형.” “응?” “내가 처음 갇혔던 방에 고양이 인형 하나가 있었어. 아무래도 그거인 것 같아.” 오소마츠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더니 손에 쥐고 있던 캔을 벤치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탄창을 갈아끼웠고, ‘……가자.’ 하며 걸음을 옮겼다. 나도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주변에 맴도는 정적 만큼,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시끌벅적했던 예전 우리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인형은 아직 그 방에 있을 터. 그렇다는 것은,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된다. 나는 두려움도, 불안도, 어떠한 감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길을 걷고, 또 걸었다. … … … 몇 번이고 위험에 부딪혔다. 마침내, 우리 앞에 그 방이 있었다. “엎드려.” 퍽─!!! 오는 도중 탄창이 떨어진 오소마츠는 그 근처에서 적당한 길이의 쇠파이프를 얻었고, 이제는 익숙해진 듯 흉측한 괴물의 머리에 가차없이 휘둘렀다. 괴물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면, 그는 반드시 그것의 머리를 짓밟아서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다시 일어나서 공격해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응.” 나는 오소마츠가 내민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 앞으로의 길은 붉은 전등이 있어 시야가 확보되어 있었고, 안전한 것 같았다. 복도 위를 걸어, 문앞에 이르러, 나는 손잡이를 돌렸다. 덜컥─. 문이 열리자, 새삼스레 그리움이 느껴지는 방의 풍경이 나의 시야를 채웠다. 나는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가 선반에 놓여 있던 인형을 손에 쥐었다. 여기 저기 뜯어지고 찢겨진, 더럽고, 낡은 헝겊인형. 그것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변함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걸 없애면 이치마츠가 죽는 거야?” “일단 되살아났던 육체는 완전히 죽어.” “하지만 이미 이렇게나 망가져 있는데…….” “약해지면 안 돼.” 알고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없애야만 한다는 것을. 하지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네가 할 수 없다면 내가 할게. 이리줘.” “…….” 아니, 이럴 때 마다 너에게 떠넘길 수는 없어. 이번 만큼은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말하기 위해, 나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나의 심장은——. “오소마츠, 뒤!” 내 심장은, 그에게 드리워 있는 검은 그림자를 본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안녕, 형. 또 만났네?” 뒤에서부터 이치마츠에게 붙잡힌 오소마츠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커다란 칼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고, 이미 조금 베어져서 금방이라도 피가 솟구칠 것 같았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로를 지켜봤어야 했는데, 오소마츠도 나도 인형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탓에 깨닫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정말 그림자처럼 아무런 기척 없이, 소리도 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알아, 너를 죽여도 재단 위에서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거. 하지만 네가 아니여도 희생자로 삼을 인간은 얼마든지 있어. 죽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계속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그는 카라마츠의 죽음 이후 벗어던졌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오른쪽 뺨 부분의 부숴진 틈새로부터 화상의 흔적이 보였다. 의식을 이어나가면서 회복되었던 얼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여기서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결국 저 인형이 맞다는 거네. 사내놈이 인형 따위에 집착하다니, 귀여운 구석도 있잖아.” “닥쳐, 너에게 쓸데없는 말을 해도 좋다고 한 적 없어.” 이치마츠의 칼날이 더욱 깊숙이 당겨졌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면서도, 오소마츠는 덤덤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인형을 망가뜨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는 또 한 번 말했다. “망가뜨려.” 물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금 그걸 포기한다고 해도 어차피 이 녀석은 날 살려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망설이지 마.” 눈앞에 죽음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그의 냉정함에, 강함에, 오히려 나는 작아졌다. 이치마츠는 입가에 사악한 웃음을 띤 채, 그런 나를 조롱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그의 목소리는 변하기 이전과 같이 차분하고 부드럽게 들려왔다. “넌 이미 나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잖아. 그 중에서 최악은 나를 불타는 건물 안에 내버려둔 거지. 적어도 이번 만큼은 나를 위한 선택을 해줘. 그 인형을 내려놓으면 너도, 이 녀석도 살려줄게. 착하지, 응?” “…….” 나는 결심을 했다. 죽음이 두려웠던 것도,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 순간에는 가슴이 아팠다. 그것을 간신히 견뎌내며, 나는 인형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미안, 이치마츠.” 인형의 팔을, 다리를, 그리고 머리를, 차례로 잡아뜯었다. 그 동안 이치마츠는 얼마든지 오소마츠를 벨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였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어.” 이치마츠는 살기 원했다. 옛날에 잃어 버렸던 목숨을 다시 돌려받고, 계속 살아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사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진작 인형을 감추거나 해서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감추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누구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나한테 있어서 넌 과거이고, 오소마츠는 미래야.”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오소마츠의 말대로, 이치마츠는 오래 전에 죽었다. 죽은 사람은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도 돌려받을 수 없다. 슬퍼도, 억울해도,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잘못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내가 사랑했던 이치마츠도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와 나의 시간은, 이대로 과거에 멈추어 있는 편이 낫다. “켁! 케헥!”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치마츠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검은 피, 그리고 검은 영혼. 이전과 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표정이 괴로워보이지 않고, 슬퍼보인다는 것이었다. “케헥! 케헥! 케헥……!” 이치마츠는 연기가 모두 빠져나간 뒤 쓰러졌다. 똑같이 괴로웠을 텐데, 그의 비명은 이전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든 뒤 나는 가슴의 아픔을 호소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인형속에 들어 있던 솜이 하나 둘 씩 천천히 떨어져, 내 어깨와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 나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인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오소마츠의 손이 어깨에 닿아오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는 내 어깨를 감싸안고 우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뺨을 타고 흘러내린 내 눈물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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