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나는 현실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내 일상은 침대에 속박된 채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되었다. 제이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좀처럼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면 그에게 또 심한 짓을 당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제이슨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지난 날의 제이슨이 나에게 매우 너그러웠었다는 것을. 불행하게도, 제이슨은 달라졌다. 내가 그와의 약속을 어기고 돌아오지 않으려 했던 날들을 기점으로, 그는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어쩌면 감추고 있었을 뿐, 예전부터 줄곧 그래왔는지도 모른다.

 악몽을 보고 있다고 해도 이곳의 시간은 현실과 똑같이 흘러간다. 아니, 오히려 더 빨리 흘러가는 듯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꿈을 꾸는 동안에도 계속 잠을 자야 했고, 밥을 먹어야 했다. 방에 갇혀 있는 통에 식욕이 생길 리 없었지만, 제이슨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먹는 수밖에 없었다.

 잠을 잘 때 현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꿈속에서는 또 다른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을 감고 있는 내내 단지 어둠속을 헤메일 뿐, 그토록 넓은 빈공간에 그리운 사람의 얼굴 조차 그릴 수가 없었다. 무언가 묵직한 것이 계속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두통은 어느덧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고, 날이 갈수록 점점 몸이 약해져갔다.

 무언가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 바람의 인기척……. 날카로운 숨소리……. 옆으로 누워 잠을 자고 있던 나는 몸을 정면으로 되돌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맞닿은 베개와 시트의 감촉을 비롯해 모든 것으로부터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위화감은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질수록 더욱 커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내가 잠들기 전에 보았던 방이 아닌, 전혀 다른 장소의 풍경이었다. 하얀 벽지, 바퀴 달린 침대, 팔에 꽂혀 있는 링거. 얼핏 둘러보아도 환자들이 사용하는 병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그런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두 팔이 속박되어 있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혹시 저 문을 열고 나가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노라면 문득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들려와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금속이 서로 부대끼는 것 같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감았던 눈을 뜨기에 무섭게 소스라치며 놀랐다. 문에 난 작은 유리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린 것이었다. 바람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며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찰나, 내 심장은 또 한 번 격하게 뛰었다. 무언가 바닥에 쓸리는 듯한 소리, 살짝 열린 문틈으로 불쑥 나타난 사람의 손 때문이었다. 문틈이 점점 벌어지고, 바닥에 엎어진 여자가 그대로 나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얼굴이며 옷이며 온통 피투성이가 된 끔찍한 모습이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침대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문 쪽에서부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고, 하나 뿐인 창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팔에 꽂혀 있던 링거주사를 뽑아낸 뒤 겨우 몸을 일으킨 나는 벽에 바짝 붙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이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방 안쪽까지 들어왔을 때는 이대로 죽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고, 차마 견딜 수가 없어서 어둠속으로 도망치듯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괴물의 절규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그곳에 제이슨이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괴물의 머리를 부여잡고,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칼로 그것의 목을 가차없이 그었다. 그래도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는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와 내가 있는 곳까지 튀었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멈춘 듯했던 것은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쇼크를 받았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이 너무 끔찍해서 모든 감각이 스스로의 의지로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다. 내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내게 가까이 다가온 제이슨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내 팔을 붙잡고 나를 일으켜세웠다. 당연히 나는 설 수 없었고, 쓰러지려는 나를 그가 다시 붙잡아주었다. 그는 하는 수없이 나를 들쳐엎고 괴물의 사체를 지나쳐 방을 나갔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익숙한 방의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고개를 들어 제이슨의 뒤쪽을 바라보아도, 그곳에 피로 물든 병실은 더 이상 없었다.

 제이슨은 나를 침대에 내려놓은 뒤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와서 내 앞에 내민 것은 물이 따라져 있는 유리컵이었다. 나는 여전히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받아들고 물을 마셨다. 들어올 때는 분명 난로의 불이 꺼져 있었는데 어느새부턴가 그 안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내게서 빈컵을 건네받아 테이블 위로 돌려놓은 제이슨은 난로 위에 널어놓았던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닦았다고 해도 이미 옷이 말라붙은 피로 검게 물들어 있어서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수건을 다시 널어놓은 그는 습관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난로의 불에 얼어붙은 손을 녹였다. 전부터 그것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는 언제나 말 없이 난로 앞으로 향했다. 설마 또 방을 나가려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이슨의 뒷모습만을 주시했다. 다행히 그는 난로에 세워둔 칼을 다시 쥐려 하지 않고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까 내가 봤던 그건 대체 뭐였어?”

 제이슨은 침대에 걸터앉아 근처에 놓여 있던 자루를 풀어헤쳤다.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가져다 놓았던 건지, 본 적이 없는 자루였다. 그가 가져다준 자루에는 보통 침대 위에서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과 음료가 들어 있었다. 하나 같이 딱딱하게 굳었거나 차갑게 식어서 맛이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불안이 닥쳐올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직접 자루 안에서 음식을 꺼내 먹었는데, 어째서인가 이번에는 제이슨이 나 대신 그것들을 꺼내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빵이려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가 내 앞으로 내민 것은 빵이 아니었다. 아니,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병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링거였다.

 “누군가 현실의 널 병원으로 옮겼어. 아마도 언제나 네 곁에 있는 그 녀석이겠지. 현실의 장소가 변하면 이곳도 같이 변해. 그리고 네가 봤던 것은 나도 몰라. 악몽이니까 무엇을 본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 없잖아.”

 그러고보니 내가 처음 오소마츠의 집에 갔을 때도 이곳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지. 나는 제이슨이 내 팔에 바늘을 찔러넣는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 제이슨이 말하는 ‘그 녀석’이라는 것은 오소마츠를 뜻하는 걸까. 제이슨도 오소마츠를 알고 있는 걸까. 하지만 어떻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제이슨이 내 팔을 내려놓고서 내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나는 베개를 베고 누워서 그의 마스크에 난 두 개의 검은 터널 속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는 그 차가운 유리알은 더 이상 질문을 해봤자 내게 어떤 대답도 돌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현실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오소마츠가 나를 병원으로 옮겼다면 지금쯤 그는 나에 대한 걱정으로 제 정신이 아닐 것이다. 예전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고, 내가 거처를 옮긴 뒤로는 집에 있는 내내 딱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던 녀석이니까. 문득 같이 살고 있는 카라마츠의 앞에서도 서슴없이 내게 다가오는 그를 야단쳤던 기억이 난다.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아이처럼 구시렁거리면서도 못내 웃으며 다시 엉겨붙던 그 모습이 지금도 나를 웃게 만든다. 그 동안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결국에는 해버리고 말았다. 만나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그리움에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제이슨의 앞에서는 그것 조차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그라면 내게 화를 낼지도 모르고, 그 이상으로 심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자신의 두려움이 슬픔을 간단히 짓눌러 버리는 일이 많아진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이 정말 무섭다.

 나는 링거 안의 투명한 액체가 관을 타고 천천히 내려와 내 팔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만약 아까 내가 죽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이 의미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 목소리는 상당히 어두웠다. 자신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 있음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 날 구해준 거야? 그리고 왜 다시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알 수 있었지만, 어째서였을까.

 “부탁이니까 말 좀 해 봐.”

 나는 처음으로 고집을 부렸다. 아마도 소용 없는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필요하니까.”

 그런데 의외로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내가 가진 무언가 망가졌는데, 그걸 고치는 데 네가 필요해.”

 가슴속에서 미움이 끓어올랐다. 아무리 두려움이 슬픔을 짓누르고 있다지만, 나에게 무엇보다도 강한 감정은 미움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가슴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그 때문인지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제이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모로 돌렸지만 제이슨은 그 순간 내 눈이 붉어진 것을 본 것 같았다. 문득 그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한결 부드럽게 들려왔다.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가끔은 나도 내가 아주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는 내가 고개를 젓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미 그렇게 되어 버린 거니까.”

 결국에는 단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닥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에. 나는 제이슨에게 천천히 생명력을 빼앗기고 있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그의 곁에 있어야만 했다. 제이슨이 내게 얼마나 심한 짓을 하든, 얼마나 밉든, 그것이 내가 놓인 상황이었다.

 만약 제이슨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그때는 돌아갈 수 있을까.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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