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이치마츠가 나를 찾아오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설령 온다고 해도 그는 내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내가 이치마츠에게 용서를 구했던 그날 이후, 나는 한 번도 그와 만나지 못했다. 아마 지금쯤 저 문 너머 어딘가에 있을 테지만,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바깥에서 무언가 두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이치마츠가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잠이 든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이마를 짚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가슴언저리에서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나서 고개를 숙여보니, 내 목에 웬 처음 보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얇은 체인에 작은 십자가가 달린 평범한 모양. 순수한 은만이 낼 수 있는 은은한 백색의 목걸이었다. 혹시 이치마츠가 다녀간 것일까. 나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라니, 그것은 어떻게 봐도 이치마츠와 연관지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지난 날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에게 들었던 ‘현실의 장소가 바뀌면 이곳의 장소도 바뀐다’는 말은, 어쩌면 몸에 착용하고 있는 물건 역시 해당되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 현실의 나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면, 나는 그 일을 오히려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같이 살고 있는 카라마츠가 언제나 예배당에 다니고 있으니, 그라면 ‘왜 하필이면 십자가 모양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아마 좀처럼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나를 굉장히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 … … 이제는 깊은 잠으로도 이 비극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목에 매달린 십자가를 움켜쥐고서 눈을 감았다. 평소에는 기도 같은 것을 잘 하지 않는데도, 내 두 손은 자연스레 가슴 앞으로 모아졌다. 그대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어둠이 걷혀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노라면, 문득 어떤 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점점 선명해져가는, 결코 낯설지 않은 남자의 음성이었다. 오소마츠……?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아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와 같은 방의 풍경 뿐이었다. 다시 눈을 감자,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것은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와 같았다. 나는 점점 확신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어둠속에서 그의 형상을 쫓았다. 그가 나를 부르고 있듯이, 속으로 그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인가 반복하자, 머지않아 거짓말처럼 그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자신에게 그런 것을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곧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든 현실이든 자신의 목소리가 그에게 닿고 있다는 것에 그저 기쁨과 안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너, 괜찮은 거야?” “아직 그 방에 있어.” 나는 다급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오소마츠, 들어봐, 내가 일전에 말했던 제이슨이라는 남자, 실은…….” 내 감정이 전달 되었던 걸까. “알아.” 무리하지 말라는 듯이, 그는 조심스레 내 말의 허리를 잘랐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녀석에 대한 것은 모두.” “…….” 궁금한 것, 묻고 싶은 것, 그 밖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내 입에서 무엇보다 먼저 튀어나온 것은 단 하나의 절박한 물음이었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오소마츠는 잠시 말이 없더니, 습관처럼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었다. “울지 마.” 그의 목소리는 쇠하고 갈라져서, 마치 통증을 억누르고 있는 사람의 작은 신음처럼 들려왔다. 그것이 나를 더욱 두렵게 했지만,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네가 갇혀 있는 방, 난 그 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지금 최선을 다해서 그 쪽으로 가고 있어. 남은 것은 시간의 문제야.” 힘겹게 숨을 삼켰다가 다시 토해낸 뒤, 그는 또 말했다. “약해지면 안 돼. 내가 갈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 상대방에게 보일 리 없겠지만,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메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오소마츠를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그라면 내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있잖아.” “?” “장담컨대, 난 네가 이치마츠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 너 자신 다음으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지금 네 기분이 어떤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윽……!” 문득 그의 목에서 신음이 터져나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차갑게 식은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지만 나는 약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해. 녀석은 오래 전에 죽었고, 죽은 사람은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도 돌려받을 수 없어. 아무리 슬퍼도, 화가 나도, 억울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나는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를 내며 코를 훌쩍였다. “사랑해.” 그때 그의 속삭임이 들려와, 나의 가슴을 두드렸다. “지금 너에게 이런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솔직히 나도 무서워…….”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할 수 있는데…….” “그래도…….” 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더해지는 만큼, 나도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내가 널 잃지 않을 수 있게…….” “무섭지 않게…….” “너도 최선을 다해줘…….” “끝까지 포기하지 마…….” … … … 그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오소마츠에게서 더 이상 어떤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던 들리지 않던 나는 기도를 계속 했고, 그것으로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