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두통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힘겹게 눈을 떴다. 아직 꿈속이었던 것일까,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질 수록 눈앞의 광경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의 천장은 부식되었고, 작은 수납장 위에는 스탠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으며, 방 한 가운데 의자 없이 홀로 서 있는 네모난 테이블이 보였다.
시선을 가까운 곳으로 돌리면 천장처럼 녹슬어 있는 낡은 침대가 있었고, 하얀 시트에 가로 누워 있는 나의 팔이 있었다. 그 사이 점점 고동을 더해가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난로 앞에는 어느 낯선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난로 안에서 모닥불이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황량한 방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그와 나 둘 뿐이었다. 끔찍한 소음. 갑자기 무겁고도 날카로운 공기가 나의 귀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으니 의식을 잃은 것만 같은 짙은 암흑이 돌연 나를 덮쳐왔다. 다시 감았던 눈을 뜨면, 어느덧 남자가 나를 향해 돌아서 있었다. 어째서인가 몸이 움직이 않았고, 그로 인해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벌레가 귀를 갉아먹는 듯한 끔찍한 소음 만큼 시야가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저 남자는 위험해. 마치 내 본능이 스스로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그러나 마치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위에 눌리는 듯한 엄청난 무게가 천장에서부터 나를 강하게 짓눌러왔다. 이를 악 물고 팔을 앞으로 뻗자, 철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손목이 홱- 꺾였다. 깨닫고 보면 침대의 뼈대와 연결되어 있는 두꺼운 사슬이 나를 속박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눈을 질끈 감았다 떴을 때, 남자는 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을 치기 시작하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마음 같아서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뼈가 부서질 것처럼 고통스럽고, 모든 감각이 무언가로부터 계속 잔인하게 학대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 말로 표현하자면, 마치 누군가에게 뒷덜미를 붙잡혀 지옥을 향해 강제로 끌려가는 듯했다. “으, 으윽!” 너무 괴로워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숨이 끊어지는 시간보다 앞선, 그보다 더 빠른 ‘죽음’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커다란 칼에, 나는 숨이 막힐 듯한 공포를 느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칼날은 검게 굳어진 피와 하나가 된 듯했고,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선명한 붉은색의 피가 그 위로 흐르고 있었다. 삐걱이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 남자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그는 군데군데 찢겨진 흔적이 있는 낡은 셔츠에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헐렁한 바지에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역시 하얀색 두꺼운 하키 마스크. 남자의 얼굴은 마스크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고, 나는 두 개의 구멍을 통해서 그의 눈동자만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무의식중에 계속 생각했던 것이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의 눈매, 나를 보는 눈빛이. “이치마츠……?”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나에게 있어서 그 기억은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억지로 거슬러 올라가려 하면 두통이 절로 일어났다. “나를 왜 이런 곳에 데려온 거죠? 내게 원하는 게 뭐예요?” 나는 도망치듯이 뒤로 물러나며 남자에게 물었다. 철커덩─. 단단한 금속이 또 다시 나의 손목을 죄어왔다. 문득 묘하게 소름끼치는 바람이 불어오는가 하면, 수납장 위 스탠드의 전구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단지 그 뿐이었는데도, 방이 완전한 어둠으로 물드는 순간 내 심장은 미친듯이 뛰어댔다. 아무리 두 손으로 귀를 막아도 무언가 자신에게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여전히 내 뒷덜미를 붙잡고, 나를 어딘가로 끌고가는 것만 같았다. "그만, 그만해!"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마치 악몽을 꿀 때처럼 무의식 중에 얼른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도망치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후 전혀 다른 장소에서 눈을 떴다. 몸을 벌떡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가 잠들기 전에 보았던 내 원래 집, 내 원래 방의 풍경이었다. “꿈…….” 너무 갑작스러운 탓에 도리어 낯설게 느껴지는 자신의 침대 위에서, 나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더 이상 나를 속박하는 사슬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있던 자리에 새빨갛게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세면대의 물을 최대한 차갑게 틀어놓고 부어오른 손목을 식혔다. 그러나 마치 멍이 생긴 것처럼 그것은 좀처럼 옅어지지 않았다. 혹시 내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최근 들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기절하듯이 잠들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이해시켰지만,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손목을 마구 씻어댔다. 그런 다음에는 쏟아지는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하지만 아무리 세수를 하고 눈을 감았다 떠보아도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체념한 나는 물을 잠근 뒤 굽었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세면대 위에 부착된 거울에 어느새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치지 마. 검붉은 색의 그것은 피가 분명했다. 나 외에 아무도 없는 집에 누군가 피로 글을 써놓은 것이었다. 나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딱딱한 타일로부터 전해져오는 한기 만큼이나 쌔한 기분이 들었고, 머지않아 뻣뻣하게 굳은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세면대를 짚고서 겨우 몸을 일으킨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울과 마주했다. 겁에 질린 내 얼굴이 그곳에 있었고, 피로 쓰인 글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짧은 악몽을 꾼 것처럼, 끔찍했던 환상은 그렇게 간단히 나에게서 떠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왠지 모르게 알고 있었다. 그것이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간단히 내게 찾아올 것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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