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치마츠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온 것은 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낡은 인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나는 그의 발소리를 들었지만 애써 그를 돌아보지 않았고, 자신이 듣기에도 담담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여기서 나가야겠어.”

 “…….”

 “네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계속 여기에 있다간 정말 미쳐 버릴 거야.”

 “말했잖아, 도박을 걸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고.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저 문을 열고 나가.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생길지,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이치마츠의 냉정한 태도에 비하면 나의 담담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앞에서 더 이상 작아지지 않으려고 했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이상 자신의 삶으로부터 눈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야. 하지만 만약 네가 하려는 일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난……. 아니, 네가 하라는 일은 뭐든지 할게.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줘. 넌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우리? 너,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누구야? 지금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네 애인?”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야.”

 나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뒤 말을 이었다.

 “너도 이제 그만 이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야지.”

 “…….”

 “너 혼자 두고 가지는 않아. 우리, 같이 돌아가자.”

 이치마츠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무거운 정적속에서 다만 모닥불이 조용히 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피식- 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치마츠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어깨를 붙잡혀 뒤를 돌아보았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하얀 마스크의 아랫부분이 부숴져 있다는 것을.

 “조금 전에 지금의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지? 그 말대로야.”

 갈라진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빨간 흔적. 그것은…… 그것은 마치, 불에 데여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피부에 닿으려는 순간, 이치마츠가 그 손을 저지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의 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제로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해. 살아 생전 네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잃게 되거든. 너의 몸, 너의 생각, 너의 감정…….”

 다시 뺨으로 향하려하는 내 손을, 그는 더욱 꽉 붙잡았다.

 “지금의 나는 자신에게 오직 하나 남은 원한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쓰레기 같은 존재야. 이런 나를 위해 이제와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넌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당장 현실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지만, 정말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거기 얌전히 있어. 내가 원하는 건 그것 뿐이니까.”

 “하지만 이대로는 너도 괴롭잖아. 이런 곳에서, 이렇게 너의 상처도 보지 못하는데, 대체 뭘 할 수 있는 건지 난 모르겠어…….”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의 마스크에 숨겨진 것을 결국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서 쓰러지듯 이치마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윽고 나를 저지하고 있던 힘이 약해지는가 하면, 그에게 붙잡혔던 손이 그의 어깨를 타고 스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어찌 보면 가장 괴로운 거겠지.”

 이치마츠는 내 어깨를 붙잡고 나를 자신에게서 떼어놓았다. 그의 손이 내 뺨을 감싸왔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비록 얼음장처럼 차가울지라도, 그것은 잠시나마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는 내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마스크를 벗었다. 저도 모르게 다시 손을 뻗자, 얼굴을 만지면 죽여 버리겠다는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그는 내 팔을 붙잡고, 내게 키스를 했다. 입술이 닿는 순간 내가 움찔 하자, 그의 팔이 내 허리를 감싸고 반대 쪽의 손이 내 뒤통수를 감쌌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점점 거칠어져가는 움직임에 저항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즈음, 그가 나의 몸을 시트 위로 쓰러뜨렸다.

 “그만둬…….”

 그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실 난 그 후로 계속 오소마츠를 좋아했어. 지금도, 넌 알고 있잖아. 너와 내가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부탁이야, 그만둬.

 속마음은 결국 소리를 갖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흩어져 버렸다. 대신 나의 손이 이치마츠에게 계속 저항을 했다. 이치마츠는 이렇게 된 이상 적어도 살아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달라며 더욱 뜨거운 곳을 찾아 내 안을 파고들었다.

 오소마츠…….

 나는 힘이 바닥나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렸다. 자신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더 이상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그때, 무언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이치마츠가 괴로운 듯한 신음을 내뱉더니 입을 틀어막으며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는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바닥에 무릎을 부딪히며 주저앉았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눈을 떴어도 그의 얼굴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문득 우욱,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입을 틀어막은 이치마츠의 손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짙은 검은색을 띠고 있는 액체였다.

 “너, 몸에 뭘 지니고 있는 거야…….”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쥔 채 고통을 삼키던 이치마츠가 꺼낸 말, 그 말은 나로 하여금 곧바로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떠올리게 했다. 혹시 이것 때문인 걸까. 왜 이제와서? 이치마츠는 딱히 내 목걸이에 손을 대지 않았고, 나는 그저 오소마츠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더 이상 저항을 할 수 없었고,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에게 해가 될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괴로운 듯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망할 신부자식…….”

 무거운 정적속에서, 이치마츠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는 손등으로 입을 슥- 닦은 뒤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내게 걸어왔다. 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후 그가 마스크를 쓰는 소리를 듣고 다시 눈을 떴다.

 “너와 함께 지내던 또 다른 녀석, 이름이 카라마츠였지?”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마치 칼날처럼 들려와, 일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내게 다가왔고, 아직 검은 액체가 묻어 있는 손으로 내 앞섬을 풀어헤쳤다. 문득 그의 마스크 너머로 힘없이 실소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어이가 없군.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녀석이라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의 손끝이 천천히 나의 쇄골을 훑고, 마침내 그가 내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치이익- 하고 살갗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같은 순간 목을 감고 있는 체인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머지 않아 열기에 녹아내리듯이 뚝- 끊어졌다. 이치마츠는 끊어진 목걸이를 바닥에 던지고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빨갛고 까맣게 그을린 살갗에서 아직 연기가 나고, 십자가가 닿았던 부분은 처참하게 골이 파여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이치마츠의 눈은 그에 비해서 너무나도 덤덤해 보였다. 이 정도는 고통 축에도 못 낀다는 듯이, 약간의 비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어차피 떨어져 죽을 거라면 도중에 어딘가 부딪혀 부러지더라도 상관없겠지.”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침대 밑에 세워두었던 칼을 손에 쥐고 방을 나가는 이치마츠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조금 전 보았던 그의 눈빛이 마치 살기를 띤 것처럼 무서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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