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집안일을 하다가 바깥에 나왔더니 눈부신 햇살이 머리와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차가운 안개가 뿌옇게 서려 있었는데, 지금은 따스한 기운 속에 흰나비 한 마리가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이제 정말 봄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노라면 지붕 위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던 오소마츠가 나를 불렀다.

 “오늘은 햇볕이 좋아. 너도 이리 와.”

 그가 자신의 무릎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지만, 나는 쑥스러움에 그 말을 듣지 않고 그의 바로 옆에 앉았다. 오소마츠는 입술을 삐죽이 내밀다가도 곧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돌연 내 몸을 끌어안고 기왓장 위로 쓰러졌다.

 “뭐, 뭐하는 거야?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우리가 이런 관계라는 거 마을 사람들 전부 알고 있어. 괜찮으니까 잠시만 이대로 있자.”

 나는 오소마츠의 팔을 베고 누워서 그와 함께 햇볕을 쬐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근처의 목련나무로부터 향기로운 꽃내음이 풍겨왔다. 겨울을 지낼 때마다 점점 쇠해져가는 탓에 매년 봄이 되어도 앙상한 가지만 있었는데, 오소마츠가 오고나서 처음으로 꽃이 풍성하게 피었다. 가지 마다 하얗게 드리워, 조금만 가까이 다가서도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고혹한 향기가 났다. 아직까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지금 나의 기분과도 같이.

 “무슨 생각해?”

 문득 부드러운 손길이 뺨에서 느껴지는가 하면 오소마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은 역시나 자신의 꿈에 대한 것. 그래, 처음부터 이 따스한 일상이 내게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시내에 나갔던 날을 떠올리고 있었어.”

 “꽤 지난 일이잖아. 갑자기 그날은 왜?”

 “…….”

 오소마츠가 오고나서 불과 며칠이 지났던 때, 그러니까 그와 막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소박한 아침 식사를 끝낸 뒤 잠시 쉬고 있노라면 갑자기 그가 시내로 나가자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 먼 길을 떠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나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처음 우리가 다다른 곳은 마을의 우물가. 그때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오소마츠가 나를 우물속으로 밀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어둠속에 있었고, 어느덧 나를 뒤따라온 오소마츠와 함께 그곳에 걸려 있던 사다리를 타고 우물을 빠져나갔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빛이 다시 돌아오는가 하면, 낯선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물을 통해 마을에서 시내로 순식간에 이동을 한 것이었다.

 “우와…….”

 오소마츠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나를 잡아끌어 근처의 커다란 건물로 들어갔다. 술을 마시거나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계단을 올라 가장 높은 곳에 이르자 커다란 난간이 나왔는데, 그곳에서 큰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행상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난간으로 데리고 가서 눈에 띄는 젊은 남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몇 번이고 내게 물었다.

 “저 남자는 어때? 말 타고 가는 녀석.”

 “복장을 보니 꽤 높은 신분의 귀족 같은데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기왕 혼인하는 거 귀족이랑 하면 좋잖아.”

 “무리에요, 제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걸요.”

 “내가 도와줄게. 너 미인이니까 괜찮을 거야.”

 “미, 미인이라니, 제가 무슨…….”

 나는 그가 내게 어떠냐고 물을 때 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고개를 저었다. 별 수 없었던 것이, 그렇게 간단히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진작에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 남편감을 찾는 일에 상당히 강한 의욕을 보였던 오소마츠도 그런 나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쳐갔다.

 “그럼 도대체 어떤 녀석이 좋은데?”

 “저는 딱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단지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가슴을 천천히 죄어오는 듯한 아픔, 떨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오소마츠가 허리를 숙여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그러한 감각이 더할나위 없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너 혹시 나 같은 녀석이 취향이야?”

 오소마츠는 대답이 없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

 “그런가 보네, 귀엽긴.”

 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는 곧 내게서 멀어졌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 울렁이기 시작한 심장은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자, 너도 어디 괜찮은 녀석이 없는지 잘 찾아봐.”

 “…….”

 “나 쳐다보지 말고.”

 “네, 네…….”

 누군가 나를 위해 발을 벗고 나서주는 것은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다. 물론 나도 기뻤다. 단지 다리를 다친 학을 치료해주었을 뿐인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은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 소원에는 분명히 이루지 못할 부분이 있었고, 내가 느꼈던 기쁨이라는 감정 속에는 차마 감출 수 없는 쓸쓸함이 있었다. 도망칠 새도 없이 너무나 갑자기 시작되어 버린 연심. 처음부터 내 눈은 다른 곳으로 향할 줄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만을 쫓고 있었다.

 “그것이 너에게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라면, 그냥 잊어 버려.”

 어느덧 회상으로부터 빠져나온 나는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여전히 따뜻한 체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몸의 방향을 돌려 정면으로부터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난 이제 너를 다른 녀석에게 보낼 생각 따위…….”

 어깨 위로 뜨거운 숨결이 떨어지는가 하면, 그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은 그에게 녹아들었다.

 …

 …

 …

 하늘도 바람도 그대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에 봄의 기운이 만연해 있었다. 변함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모두가 사랑하는 계절인 봄은 매년 너무나도 빨리 끝난다. 이 봄이 지나가고 들판의 꽃들이 지면 나도 꿈에서 깨어나게 될까. 자신에게 과분한 것은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죄어왔다. 나의 이러한 감정을 오소마츠는 알고 있을까. 그때 그의 행동은 나를 안심시켜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지금으로서는 그저 자신의 마음으로 느낀 것을 믿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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