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 즈음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 해의 농사를 위해 밭이나 논을 일구는 데 열중한다. 우리 집은 식구가 두 사람 뿐이어서 그다지 거창하게 벌일 필요가 없지만, 일용할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역시 매일 아침 밭에 나와서 일을 해야만 한다.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호미로 감자를 캐고 있노라면, 문득 시야가 어두워지며 하늘에서 구름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이제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그다지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콰과과과광─!!! 번쩍─!!! 대기가 째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깊이 패인 땅 한 가운데 쓰러져 있는 오소마츠의 몸에서 푸슈슉 연기가 나고 있다. “괘, 괜찮아?”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무릎을 구부려 앉고는 그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어본다. 찌릿─. 그저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한데, 그것을 정통으로 맞은 오소마츠는 지금 얼마나 아플까. 아니, 어쩌면 아픔을 느끼기 이전에 감각을 잃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소마츠는 신선이니까 벼락을 몇 번 맞는다 한들 죽지 않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별 수 없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불안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만큼이나 오소마츠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그의 손가락이 삐끗삐끗 경련을 일으킨다. 한 마디로 만신창이.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자니 역시 가슴이 아프다. “그러니까 일을 하다가 왜 갑자기 야한 생각을 하고 그래…….” “네 뒤태가 묘하게 관능적이어서 무심코…….” 얼굴이 뜨거워져서는 그를 노려본다. 뭐, 벼락이 떨어진 원인은 어디까지나 오소마츠의 ‘생각’이니까 누구도 탓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면 내게도 어느정도는 잘못이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제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나도 오소마츠도 정말 깜짝 놀랐었다. 물론 처음 나에게 천녀의 팔찌를 주었던 사람은 오소마츠였고, 누군가 그런 나에 대해서 더러운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도 오소마츠였다. 다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만큼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한눈에 반해 버렸던 나와 달리, 오소마츠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를 전혀 여인으로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하자면 웃음이 나올 것도 같다. 그때도 우리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오소마츠는 나를 따라왔고,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어떻게 하면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는지 배웠다. 농작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째서 갑자기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오소마츠가 문득 내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길이 묘하게 야릇해서, 그때도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정적 끝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오소마츠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젠장!’ 하고 외치며 근처의 숲으로 냅다 달렸다. 어차피 벼락을 피할 수는 없고, 그대로 가만히 있다간 나까지 다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벼락은 오소마츠의 모습이 나무에 가려지기 무섭게 내리쳤다. 번쩍- 하고 일어난 눈부신 빛이 사그라든 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새카맣게 타 버린 나무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내 시야에 비친 그의 모습은 역시나 망신창이였다. “오소마츠가 불편하다면 이 팔찌 차지 않을게.” “아니, 밖에 나갈 때는 꼭 차.” “어째서?”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이상한 녀석들이 납치해갈지도 모르잖아.” 어느덧 회상으로부터 빠져나온 나는 여전히 엎드려 누워 있는 오소마츠의 등을 살살 어루만져주며 쓴웃음을 지었다. 팔찌를 차고 있다고 해도 나를 납치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더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한 벼락은 떨어지지 않지만, 확실히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오소마츠가 벼락을 맞을 때 마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오소마츠가 나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진심으로 기뻤던 것이다. “하지만…….” “응?” 하지만 한편으로는── “밖에 나오면 오소마츠가 의식적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니까, 조금 쓸쓸해.” “…….” 오소마츠는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문득 새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올 정도로 고요하게,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적이 깨지며 우리를 비추고 있던 따스한 햇살이 사라지더니, 머리 위에 또 다시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으으윽’ 하고 작게 신음하며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저리 가라며 손짓했다. 내가 언덕 아래로 피신하자, 그는 하늘에 대고 외쳤다. “망할!!! 방금 건 아니었잖아!!!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을 뿐이잖아──!!!” 콰과과과광─!!! 번쩍─!!! 빛이 사그라든 뒤, 오소마츠는 그렇잖아도 깊이 패인 구덩이속 잿더미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만신창이를 넘어서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래…… 솔직히 생각했어……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했어…….” 오소마츠의 얼굴은 잿더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그 안에서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 문득 궁금한 게 생겼는데…….” 그것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말투였지만 홀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려왔다. “아바마마께서는 도대체 어마마마를 어떻게 꼬시셨을까……?” “그도 그럴 것이…… 무리잖아…… 이래서는…….” “어떻게 하셨지……? 어떻게…….” 그의 중얼거림은 그로부터 한동안 계속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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