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염라궁. 그러나 천선에게는 그곳의 모든 장소가 혐오스러웠다. 높은 천장에 새겨진 문양은 마치 괴물의 형상처럼 보였고, 견고한 기둥, 부드러운 융단, 온갖 빛이 나는 장식품들은 천국의 자미궁을 본딴 듯하였으나 그에게는 모두 어설퍼보이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원수의 집에 와있는 기분이 이와 같을까. 천선은 숨을 쉬기가 괴로워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채 가로로 넓게 펼쳐진 단상 위를 서성이며 생각했다. 그때 멀리서부터 시위들의 외침이 들려왔고, 문 밖에 서 있던 시녀들의 작고 가녀린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그는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내와 마주했다. 그의 숙부인 염마왕, 그리고 둘째 동생인 천기였다.

 “그녀는 어딨습니까.”

 염마왕은 마땅히 선행되어야 할 예를 깔끔히 무시한 천선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는 조용히 눈썹을 찌푸렸다. 여태껏 증오심이란 나이와 경험에 비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염마왕이었으나, 그의 어린 조카 천선이 가진 눈빛과 목소리가 띠고 있는 살기는 제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그는 사소한 것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는 늘 그랬듯, 여유가 넘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던 네가 사람 하나 찾겠다고 여기까지 직접 오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그녀를 돌려주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입니다. 어찌하여 제게 자객을 보내 잠들게 하면서까지…….”

 “너에게 자객을 보내 잠들게 하면서까지 데려온 녀석이다.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천선은 자신이 염마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당당한 태도에 새삼 경악했고, 이를 악 문 채 가슴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그를 노려보았다. 염마왕은 천계와 옥황상제에게 오랜 분노를 가진 자였으나, 천선은 결코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분노가 그의 분노에 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천선의 손이 떨리고 있었던 이유는 분노보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녀를 잃게 될지도, 어쩌면 이미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로 인해 천선은 말을 하기에 앞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하찮은 생명에 집착하는 것이 네 아비를 똑 닮았구나.”

 천선은 염마왕의 태도에 발끈 하여 소리쳤다.

 “당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천국의 태자입니다! 예를 갖추시지요!”

 “예를 갖추라?”

 염마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지금 날더러 예를 갖추라고 했느냐? 네 까짓 놈이 감히…….”

 그러나 천선은 조금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내 사람을 건드리는 것은 나를 거스르는 것이며, 이는 천국에 대한 반역입니다. 또 다시 반역자로 낙인 찍히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

 염마왕은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마주 서 있던 천선이나 뒤편의 천기는 그 미소가 묘하게 일그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염마왕으로서는 그저 눈 앞의 어린 조카가 괘씸할 따름이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는 속으로 동요했다. 조금 전 천선의 모습이 자신의 친형, 옥황상제의 어린 시절 모습과 일순간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의식 속에 형에 대한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자 이에 대해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가만히 천선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히 시선을 내리고는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염마왕 천기(刋棄)가 태자마마를 뵈옵니다.”

 이윽고 염마왕의 뒤편에 서 있던 천기를 비롯한 모든 수하들이 그를 따라 천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염마왕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천선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바닥을 할퀴듯이 낮고 매섭게 들려왔다.

 “아직 한참 더 남았지요. 제가 원하는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신이 느껴왔던 절망감을 숙부님께 그대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님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 관련자들을 모두 처벌하는 것, 내 아내를 돌려받는 것, 두 번 다시 지하 세계 밖으로 손을 뻗칠 수 없도록 철저히 밟아 죽이는 것입니다.”

 염마왕은 시선을 정면으로 되돌리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잊으려 했던 옛 기억이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어머님의 죽음은……, 상제께서 이미 덮어두신 일입니다. 어찌하여 다시 들춰내려 하십니까.”

 “아바마마께서 용서하셨어도 저는 못합니다. 아니, 안 합니다.”

 천선의 꽉 움켜진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염마왕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곧 이전의 웃음을 되찾았다.

 “태자마마께서는 제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마마를 해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듯하나, 그것은 근거가 없는 망상입니다.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습니다. 황권 다툼에서 밀려나고 제 이름이 천기(天紀)에서 천기(刋棄)로 바뀌었을 때 말입니다. 상제의 옥체가 나날이 미령해져가시니, 지금은 그저 천국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천선의 증오심에 불을 지피는 말이었으나, 그의 얼굴은 일순간 증오가 아닌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를 납치해간 것도 천국의 안위를 위해서입니까?”

 염마왕은 천선의 얼굴을 보지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를 통해 그 슬픔을 느꼈다. ‘형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역시 이 녀석은 아직 고통에 취약한 애송이다.’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차마 감출 수가 없었다.

 “터무니 없는 자에게 황후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인간 여자가 어찌 천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황후이기 이전에 내 아내이고, 인간이기 이전에 내가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그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녀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는 없단 말입니다.”

 천선은 자신의 얼굴에서 애써 슬픔을 지웠다.

 “본인의 의사라고 하셨습니까?”

 그때 염마왕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천기가 끼어들었다.

 “그녀에게 헤어질 의사가 있다면 그때는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말씀이시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천선은 매서운 눈빛으로 천기를 쏘아보았다.

 “답을 하기에 앞서, 잠시만 옛 형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천기는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너도 알다시피, 신선과 인간은 본래 함께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각각 살아가는 세계도, 방법도 다르지. 그렇기에 (인연을 관장하는 신)아바마마께서는 신선과 인간의 결합을 매우 엄격하게 다루신다. 인간과 인간 간의 혼인처럼 그저 서로 말을 맞추는 것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한 순수한 애정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지. 그래서 네가 그녀를 만난 뒤 아바마마께 몇 번이고 허락을 구해야만 했던 것이고 말이야.”

 그는 천천히 천선의 주변을 거닐며 말을 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설령 신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어떠한 증표도 없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은 인간 정도로 바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것을 택한 네가 여러 가지 의미로 정말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정적이 계속되자, 천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사랑하는…… (웃음)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 그녀는 어렸을 때 가족과 떨어져 줄곧 혼자 외롭게 살아왔다. 굳이 네가 아니여도, 그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사내라면 분명 누구든 상관없었을 거다.”

 “헛소리 집어치워.”

 천선은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염마왕과 똑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천기의 얼굴을 보며 진작부터 가지고 있던 혐오감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천기의 웃는 얼굴은 염마왕이 그렇듯이 잠시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헛소리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네가 허락을 구할 때마다 너는 아바마마께 계속 불통(不通)을 받았었잖냐. 너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를 택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일까? 고민할 것도 없이 너무 뻔하다. 그녀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거다. 그저 믿고 싶지 않을 뿐, 너도 줄곧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잖냐.”

 천선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천기에게는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그건…… 그건 내 사랑에…… 사심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야…….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어야만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아바마마께서 허락해주지 않으셨던 거야……. 그것 뿐……. 다른 이유 따위는 없어……. 절대로…….”

 천기는 실소를 터뜨렸다.

 “바보 같은 일을 하더니, 정말로 바보가 되어 버렸군. 믿지 못하겠다면 네가 직접 가서 확인하도록 해라. 지금쯤 넷째가 그녀에게 약을 건네주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천선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약……?”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약. 너도 잘 알고 있잖냐.”

 “그녀가 그걸 마셨을 리 없어!”

 천선이 소리치자 천기는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기울였다. 그의 두 눈이 마치 가엾은 것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듯한 안타까움을 띠고 있었다.

 “과연 어떨까.”

 그가 천선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기억하나? 어마마마께서 인간계에 계실 무렵, 우리가 동생들을 데리고 아바마마 몰래 어마마마를 찾아갔던 날.”

 천선은 천기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천기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너와 나, 아바마마, 심지어 우리들의 이름까지도.”

 천기는 자신의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작은 유리병이었다.

 “괴로우셨겠지……. 이곳의 모든 이들에게 부정당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가는 것이…….”

 그는 유리병을 꽉 움켜쥐더니, 이전과 사뭇 다른 중저음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나는 어렸지만 똑똑히 깨달았다. 인간이란 존재가 상상이상으로 나약하다는 것, 마음을 내어줄 가치가 조금도 없다는 걸 말이야.”

 천선은 비로소 고개를 돌려 천기와 마주보았다. 그러자 천기가 문득 팔을 가로 뻗었고, 그의 손에서 유리병이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마마마께서는 그렇게 한심한 이유로 우리를 버리셨다. 네 여자라고 다를 것 같나?”

 “닥쳐!”

 천선은 천기의 멱살을 붙잡았고, 천기는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 염마왕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으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오히려 재밌다는 듯이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마마마께 버림받은 건 너 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그녀에게 버려졌지.”

 천기는 천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넌 몰랐겠지만 당시에 난 이 세상 누구보다 어마마마를 가장 사랑했다. 내가 인간을 증오하는 건 그 만큼 배신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부러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천선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며 내면의 불안함을 겉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고 포기해라, 천선. 그녀가 약을 마신다면 어차피 너를 향한 마음은 처음부터 그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선은 완전히 구석으로 내몰려지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

 “안내해…….”

 천기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천선이 그의 멱살을 흔들었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그 외침이 울려 퍼지기에 무섭게, 방의 입구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하겠습니다.”

 천선의 넷째 동생, 옥형이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천기는 옥형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천선의 손등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마침내 천선이 그를 놓아주었다. 다시 찾아온 정적속에서 옥형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천선 또한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태자마마.”

 두 남자가 문턱을 넘기 전, 염마왕이 천선을 불러세웠다.

 “반 평생 마계에 유폐된 채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살아온 저입니다만, 이런 제게도 젊은 시절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선을 돌아보지 않고,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고, 일단 뜻을 품기만 하면 어떤 방향으로든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천선은 염마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꼿꼿하게 세워져 있는 허리, 넓은 등, 반듯한 어깨. 여태껏 수많은 고단함과 어려움에 부딪혔을 그 모습은 이제 웬만한 풍파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마마께서도 곧 깨닫게 되실 겁니다.”

 그 강함은 시간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연륜(年輪). 천선이 염마왕에게서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었다.

 “사랑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빛나는 것……. 이 세상에 지킬 수 있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요.”

 …

 …

 …

 옥형의 안내를 받아 길을 걷는 동안 천선은 자신의 가슴속에 마계보다 끔찍한 또 하나의 지옥이 있음을 느꼈다. 아내와 함께하는 동안 어렵게 가꾸어왔던 모든 것들이 어느덧 까만 잿더미로 변해 본래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천선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생각했다. 멀쩡한 모습의 아내를 보는 순간, 평소와 같은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지옥은 다시 천국으로 변할 것이라고.

 “이곳입니다.”

 천선은 옥형이 가리킨 방안으로 들어갔다. 모퉁이를 돌자 방 한가운데 원형 탁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 나왔다. 그의 아내는 탁자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병이 곧바로 천선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아내에게 달려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병은 덮개가 열려 있었고, 바닥 위로 떨어지는 순간 청아한 소리를 냈다. 내용물이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천선은 심하게 동요했지만 애써 그러한 감정을 억눌렀고, 아내의 뺨을 손으로 감싸며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누구세요……?”

 돌아온 대답은 그의 바람에 어긋난 것이었고, 천선은 이성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아, 아아…….”

 천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삼켰다 토해냈다. 어느덧 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 나야……. 나 똑바로 봐……. 장난하지 말고…….”

 그는 일그러진 진주처럼 생기가 없는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흩트러진 아내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겨주었다.

 “내 신분에 대해서 숨겼던 거 미안해……. 난 그냥…… 네가 아무런 고민 없이 평화롭게 지내길 바랐어……. 그 뿐이야…….”

 아내는 천선의 파르르 떨리는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이윽고 천선의 얼굴에 희망이 비추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곧 절망으로 변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낯설음에서 두려움으로 변하고, 그녀가 뒷걸음질을 쳤기 때문이었다.

 “그래…… 뭣 모르고 약을 마셨다고 치자……. 그래도 넌 날 잊어 버리면 안 되잖아……. 날 사랑했잖아……. 사랑한다고 했잖아…….”

 천선은 아내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고 도망치려는 그녀를 자신에게로 다시 끌어당겼다.

 “내가 화내는 거 봤으면서……. 불안해하는 거 봤으면서……. 왜 몰라……. 나 너 없으면 안 돼…….”

 아내는 천선의 간절한 애원에 더 이상 저항을 하지 않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윽고 천선이 그녀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는 아내의 손에 이마를 기대고서 그녀의 체온을 느꼈다. 천선에게 있어서 아내는 이미 그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였고, 천선은 그녀의 체온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참아야만 하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너 마저 떠나 버리면…… 난 어떡해……?”

“그렇게…… 그렇게 쉽게 버리지 마…….”

“제발……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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