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오소마츠가 문득 산책을 하러 가지 않겠냐는 말을 꺼냈다. 우리는 식사를 끝마친 뒤 집을 나섰고, 숲으로 둘러쌓인 호숫가의 구름다리 위를 걸었다. 봄날이 매일 그러하듯 한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밤의 고요함이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히며 은은한 달빛이 성숙한 여인의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째서 이 녀석들까지 따라나온 거야?”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던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단 둘이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둘이 늘어나 넷이 된 우리는 가족이 모인 듯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온 내게 그것은 그 나름대로 좋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일부러 그들에게 방해를 당한 듯이 미간을 좁힌 채 구시렁거렸다.

 “오늘은 달이 밝아서 나도 산책을 조금 하고 싶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밤이 늦었습니다. 호위를 맡은 제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산책을 하려거든 혼자서 해! 너도 이런 곳까지 따라올 필요 없어! 둘 다 썩 꺼져!”

 나는 오소마츠에게 그만두라고 말하는 대신 그의 소매를 슬쩍 잡아당겼다. 그는 잠시 인상을 펴다가도 짜증이 한가득 담긴 표정으로 두 동생들을 쏘아보고는 내게 팔을 두르고 걷기를 계속했다. 그것으로 달빛 아래의 산책이 고요함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두 남자가 오소마츠를 제치고 내게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하고서부터, 그의 심중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형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괴로운 점은 없나? 나라도 괜찮다면 언제든지 상담에 임하겠다.”

 “앞으로 어딜 가든지 혼자일 때는 나를 부르도록 해라. 이상한 녀석이 어슬렁거리지는 않는지 지켜봐줄 테니.”

 “괴로운 점은 너고, 이상한 녀석은 너야!”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를 차례로 가리키며 신경질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친 뒤 결국 두 사람을 내게서 억지로 떨어뜨려놓았다.

 “사내가 되어서는 투기를 하다니, 꼴사납다고 생각하지 않나, 형님.”

 “다른 놈들이 내 아내에게 집적거리는 걸 똥폼 잡고 가만히 지켜보는 게 더 꼴사납거든!”

 “집적거리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니 진정하시지요.”

 “알게 된지 겨우 며칠밖에 안 된 녀석과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아? 200년 동안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이 형하고는 할말이 없냐?”

 오소마츠의 심기가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왠지 모르게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손으로 입을 가렸는데도 그 소리가 들렸던 건지, 오소마츠가 고개를 홱! 돌려 얄쌍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두 남자의 사이를 뚫고 내게 다가와 뒤에서부터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 갑자기 발밑에서 솟아난 강한 바람. 우물을 통해 시내로 나갈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몸을 감싸는 순간 깜짝 놀란 나는 무심코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몸을 감싸고 있는 오소마츠의 팔에 힘이 들어가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따라오면 죽인다.”

 귓가에 오소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바람이 점점 거세게 솟구쳐 오르며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나부꼈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카라마츠씨와 문득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치마츠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전과 전혀 다른 풍경의 장소에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깊은 산속, 하늘이 더욱 가까워보이는 곳이었다.

 “오소마츠, 여긴 어디야?”

 “…….”

 그는 여전히 뒤에서부터 나를 끌어안고 있었고, 그대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오소마츠의 품에서 벗어나 그와 마주보려 했으나 그의 말대로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두 팔은 나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난 너랑 그다지 얘기도 못 나눴고,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 걸.”

 “그렇게 싫었어? 난 오소마츠의 형제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너는 그럴지 몰라도 녀석들은 아니야. 바보…….”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손을 뒤로 뻗어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오소마츠가 문득 그런 내 팔을 덥썩 붙잡았다. 이윽고 귓가에서 작은 신음이 들려오는가 하면, 뜨거운 숨결이 목에 떨어지는 것이 느꼈다. 그는 내 목에 입을 맞추었고, 살짝 벌어진 옷의 여밈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손이 맨살에 닿는 순간 나는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설령 단둘이 있다고 해도, 그 손길에는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뭐하는 거야, 오소마츠?”

 “이참에 너에게도 녀석들에게도 확실히 알게 해주려고.”

 “뭐, 뭐를?”

 “그런 거, 뻔하잖아.”

 오소마츠는 내 팔을 홱 잡아당겨 나를 자신과 마주보게 했다. 그대로 그에게 밀려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친 나는 어느 커다란 나무기둥에 등을 부딪혔다. 아픔을 호소할 새도 없이 오소마츠가 내게 바짝 다가서더니 내 목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는 관계없이 그 행위는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이었다. 단지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굳게 닫혀 있는 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손길이 상당히 거칠었다.

 “이, 이런 곳에서…… 안 돼……!”

 “이미 하고 있는데─?”

 “그만둬……!”

 “오늘은 상냥한 남편 안 할래─.”

 …

 …

 …
 바람소리 조차 들려오지 않는 고요한 밤. 하늘에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깨끗한 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듯 파르르 떨리는 몸은 진작부터 스스로 가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이 사내의 단단한 팔에 의지한 채 그가 갈망하는 사랑과 욕구를 전부 채울 때까지 버텨야만 했다. 그의 기분이 만족에 가까워지는 순간이 아니면 제대로 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픔이 쾌감으로 변해서 그가 내게 느끼게 해주는 것 외에 다른 감각을 모두 잊어 버리게 되고, 야릇한 숨소리와 낮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시야가 흐릿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저히 이성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있잖아, 잠깐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을래?”

 오소마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즈음에는 그도 숨이 꽤나 거칠어져 있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턱을 살며시 들어올렸고, 나는 그가 말했던 대로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되었다. 눈물에 의해 엉망진창으로 뭉개져 있던 시야가 선명함을 되찾은 뒤 내가 보았던 하늘에는 여전히 달을 중심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저기서 북두칠성을 찾아 봐. 할 수 있지?”

 대답을 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던 나는 그 대신 아이처럼 울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나 오소마츠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 그가 원하는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도 입술을 꽉 깨물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은하수를 이루고 있는 별들은 말 그대로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 안에서 별자리를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을 끌면 힘들어지는 것은 나였기 때문에 어려워도 찾아야만 했다. 몇 번인가 하늘을 훑어보니 유달리 밝게 빛나는 별이 눈에 띄었다. 어쩌면 저게 북극성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 별을 기점으로 천천히 선을 그어보았다. 지팡이 같기도 하고 갈고리 같기도 한 모양의 별자리. 다행히도 그것은 북두칠성이 맞았다.

 “찾았어…….”

 어째서 오소마츠가 내게 그런 일을 하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일단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그곳에 일곱 명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네 얼굴을 그들에게 보여줘.”

 “내 얼굴……?”

 나의 중얼거림이 입에서 흘러나오기 무섭게,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던 오소마츠가 내 허리를 꽉 붙잡고 몸을 움직였다. 갑작스레 다시 찾아드는 쾌감에 아우성을 치며,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늘은 내게 언제나와 같은 광경을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 오소마츠의 말을 듣고나니 정말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로 인해 쾌감 만큼이나 커다란 수치심이 느껴졌다.

 “오소마츠는 부끄럽지 않아……?”

 “딱히─.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잖아─. 우리가 이렇게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인 받는 것 뿐이니까─.”

 만약 저 별들이 정말 살아 있다면 그들은 누구일까. 누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걸까. 그러한 의문은 머지않아 나의 수치심에 의해 지워졌다. 오소마츠에게 그만둘 생각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움이 더 커지지 않도록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을 버리는 것 뿐이었다. 그에게 몸을 맡긴 채 쾌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며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는, 자장가처럼 울려 퍼지던 잔잔한 피리 소리가 사라진 후로도 저마다 야옹 하고 울어대는 작은 짐승들이 밤길을 산책하고 있는 두 무신을 뒤따르고 있었다. 천선은 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렸지만 언제나 옥형과 함께 다니는 천기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옥형이 물었다.

 천기는 널찍한 팔 소매에 두 손을 찔러넣고서 어느덧 조금 차가워진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상쾌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뻔하지 않냐. 형님에게 황위를 물려주기 전에 그 입지를 보다 견고히 해두시려는 거다.”

 “그게 이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데?”

 옥형이 또 한 번 묻자, 천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정말 정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군. 아바마마께서 무엇보다 크게 고민하셨던 것이 바로 형님의 배우자를 찾는 일이었잖냐.”

 “아아……. 황후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는 이유로 대소신료들이 아바마마를 달달 볶았지만 아바마마께서는 새 여인을 원치 않으셨고, 첫째 형이 그 일을 대신 하길 바라셨지.”

 “시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일,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형님은 지금 정후를 들이는 것은 물론이요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어야 할 거다. 그래야 종국에 쓸데없이 입을 나불거리는 자들이 없을 테니까.”

 옥형은 자신의 형제에게 아무렇지 않게 불구덩이에 뛰어든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천기에게 새삼 경악했지만 늘 그렇듯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만약 자신이 차남으로 태어났다면 자기도 똑같은 말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바마마께서는 처음부터 그녀를 눈여겨 보고 계셨던 걸까?”

 “이제 와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아바마마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형님은 이미 그 여자에게 푹 빠져 있지 않냐.”

 “아까 천선성이 빛을 잃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느끼긴 했어. 어마마마께서 살아 계셨을 때도 질투 따위는 하지 않았던 녀석인데…….”

 “뭐가 어쨌든 나는 나의 일을 할 것이다. 넷째 너도 괜한 곳에 눈 돌리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임무만을 바라보도록 해라.”

 언제나와 같이 여유로이 웃고 있는 천기의 모습, 그의 눈동자와 웃음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옥형은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천선도 천기도 모두 같은 형제였고 형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천기는 항상 함께 다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어려운 존재였다.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천선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유일하게 황위에 욕심이 있는 사람.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결코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천기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위세를 보여왔고,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옥형은 그의 곁에 있는 것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피를 불러올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이 마치 정해진 미래와도 같이 분명하게 느껴져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며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이 순탄히 흘러가기만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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