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꽤나 아슬아슬했기 때문에, 올해는 일찍이 산에 오르면서 조금씩 뗄감을 모아두기로 했다. 지천이 산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살고 있다지만 그곳을 오르는 것이 간단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자칫했다간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사나운 짐승을 만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걸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적당한 길이의 단단한 지팡이가 있어야 한다. 나는 철저히 무장을 하고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어째서 오소마츠가 웃음을 터뜨렸는지,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악──!!!”

 나는 하늘을 날았다. 갑자기 날개가 달렸다던가, 구름 위에 올라탔다던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나의 목숨을 보장해줄만한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단지 오소마츠가 이따금씩 방향을 잃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주었을 뿐이었다.

 보통 하늘을 난다고 하면 설화속 영웅처럼 만세 자세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여기서 바람이 휙 하고 불면 이쪽으로 데굴데굴 구르고, 저기서 바람이 휙 하고 불면 저쪽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것은 생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참으로 굉장한 경험이었다.

 “어때, 생각보다 재밌었지─?”

 “우욱…… 우우욱……!”

 “어라, 괜찮아?”

 그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당연히 나는 괜찮지 않았다.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나무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고, 속이 울렁거려서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난생 처음으로 겪는 고속비행은 전장에 나서는 전사처럼 철저하게 무장을 하고 있던 나를 삽시간에 전투불능상태로 만들었다.

 …

 …

 …

 “오늘은 이 정도면 되려나.”

 “좀 더 가져가는 게 좋지 않아? 올겨울은 계속 따뜻하게 지내자구.”

 “한 번에 너무 많이 욕심을 부리면 안 돼. 산신령님께서 화내실지도 몰라.”

 “그런 녀석 알 게 뭐야. 기왕 온 거 이웃집에도 좀 가져다 드리자. 보나마나 아저씨 또 농땡이 부릴 텐데, 아주머니만 고생하시잖아.”

 “음…… 그럼 조금만 더…….”

 “맡겨 둬.”

 오소마츠가 검지와 엄지를 가볍게 부딪히자, 날카로운 바람이 대기를 찢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근처의 나무들이 웅성이기 시작하는가 하면, 저 마다 깔끔하게 허리가 잘려서 땅 위로 쓰러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의 턱은 밑으로 급하강했고, 나의 두 눈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날 듯이 크게 팽창했다.

 “오, 오, 오소마츠──!!! 그만둬──!!!”

 “응? 왜 그래? 지금 뗄감 모으고 있잖아.”

 “그건 뗄감을 모으는 게 아니야──!!! 마구잡이로 벌목하는 거지──!!!”

 나는 오소마츠를 멈추게 하려다가도 불어오는 바람에 털썩 주저앉으며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그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그 말대로임 쌈바─!!! 네녀석은 머릿속에 기본적인 상식도 박혀 있지 않은 최악의 생태파괴범임 쌈바─!!!”

 “에?”

 지진이 점점 강도를 높여가는가 하면 파릇파릇 풀이 돋아난 땅에 쩌억 쩌억 금이 가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솟구쳐올랐다. 반쯤 넋을 잃은 나에 비해, 오소마츠는 잠시도 당황하는 일 없이 내게 뛰어와서 나를 부축해주었다. 그것으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여전히 굉장했다.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오지 마! 이 녀석 심장이 약하다고!”

 내가 놀란 것은 애당초 오소마츠가 갑자기 벌목을 시작해서였지만, 나는 입을 뗄 여유도 없이 이어지는 놀라운 광경에 할말을 잃었다. 바람이 한 곳으로 모여들어 불투명한 형상을 만드는가 하면 그 형상이 사람으로 변해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휘리릭 다가왔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네녀석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임 쌈바──?!!! 이 산의 모든 것은 나 이야미님의 것이니 멋대로 손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쌈바──!!!”

 “겨우 나무 몇 그루 벤 거 가지고 쩨쩨하게 왜 이래!!!”

 오소마츠는 자신을 이야미라고 말한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소리치는 것도 잠시 ‘아’ 하고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품속에 안겨 있는 나를 내려다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친구야. 생긴 건 이래도 일단 여기서 산신령을 하고 있으니까 무서워할 것 없어.”

 “생긴 건 이래도라니 그게 무슨 뜻임 쌈바──!!!”

 “네 무지막지한 앞니로 정해져 있잖아!!!”

 “이건 차밍포인트라고 하는 거임 쌈바──!!!”

 “자신의 매력을 스스로 결정하다니 웃기지도 않아!!!”

 “크으으──!!! 진짜로 건방진 꼬맹이임 쌈바──!!! 운 좋게 천국의 태자로 태어나ㅅ…….”

 퍽─!!!

 “시끄러우니까 좀 닥치고 있어!!!”

 오소마츠의 발에 얼굴이 처참하게 뭉개진 산신령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면서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발이 떨어졌을 때 감았던 눈을 뜨고서 나를 슬쩍 훑어보았을 뿐이었다. 짧은 순간에 마치 나를 관찰하는 듯한 그의 눈빛이 나를 조금 긴장케 했지만 그 뿐, 오소마츠가 뒤에서 안아주고 있었기에 딱히 무섭지 않았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나서 깨달은 것이지만 그는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날카로운 성격에 비해 의외로 좋은 사람, 아니, 신선이었다.

 …

 …

 …

 “그래서, 천기와 옥형의 소식은 뭐 들은 것 없어?”

 “망자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인간계에 와 있는 것 같쌈바.”

 “인간계에? 어째서?”

 “그건 모름 쌈바. 뭐가 어쨌든 두 사람이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임 쌈바.”

 “흐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코 자신에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천선은 생각했다. 자신이 남들의 눈을 속이고 인간계로 오기 위해 꾸몄던 일들을 옥황상제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다. 그가 여기까지 속은 척을 해주었던 것에는 무언가 목적이 있음에 분명했다. 어쩌면 자신이 그녀와 만난 것 조차 모두 그가 의도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을 관장하는 신이니까, 적어도 목적 이전의 수단은 예상할 수 있었다.

 “미가 당신에게 협조하는 이유는 결코 우정 따위가 아님 쌈바. 이건 어디까지나 미의 삶의 터전인 인간계를 위해서…….”

 “알아, 알아─. 나 너의 그런 점 싫지 않아─. 오히려 좋아하려나─?”

 “남자에게까지 추파 던지는 건 그만두셈 쌈바. 기분 나쁨 쌈바.”

 “너에겐 자각이 없겠지만 가끔 통할 때가 있거든─.”

 “웃기지 마셈 쌈바─!!! 누가 네놈 따위에게─!!!”

 이야미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치자, 천선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재밌는 반응 그만둬─. 또 셋째가 보고 싶어지잖아─.”

 이야미는 천선의 웃음에 씁쓸함이 담겨있음을 깨닫고 조용히 시선을 모로 돌렸다.

 “무엇을 하든 간에 두 사람 모두 실수가 없도록 하셈 쌈바. 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또 부탁하러 와도 좋쌈바.”

 “응, 고마워.”

 오소마츠는 그만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때 이야미가 말했다.

 “형제들과 하루만 떨어져 있어도 초조해하던 녀석이 잘도 지금까지 버텼쌈바.”

 “그야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고, 더 이상 외롭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당신의 취향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였쌈바.”

 이야미의 말에 오소마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취향이라…… 확실히 엄청난 미인은 아니지. 가슴도 작고.”

 “정말 그것으로 좋은 것임 쌈바?”

 “어떨까나─.”

 문득 바람이 불어오고, 오소마츠는 검지로 뺨을 긁적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고 눈부신 봄볕 만큼이나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 지금 무지 행복해─.”

 이야미는 오소마츠의 표정을 보고 배가 아픈 듯,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듯 눈동자를 모로 굴렸다.

 “확실히 지금 네 녀석은 역대 최고의 바보 얼굴을 하고 있쌈바.”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