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서 오소마츠는 내가 멀리 시내에 나갈 때 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집이나 우물가에 다녀올 때에도 나와 꼭 동행해준다. 옆마을에 흉흉한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 집을 비웠을 때 누군가 은밀히 침임을 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소마츠가 그 말을 내게 해주기 전까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에 비친 방의 풍경은 우리가 집을 나섰을 때와 달라져 있지 않았다. 애당초 도둑이 근처의 부잣집을 놔두고 구태여 작은 오두막집을 선택할 이유가 없고, 딱히 없어진 물건도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뒤에는 정말 도둑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혹시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오소마츠는 그날 이후 잠시도 나를 혼자 두는 일이 없었고, 길을 걸을 때 마다 주변을 경계하곤 했다. 경계한다고 해도 겉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그와 함께 지내고 있는 나 정도였다. 그리고 그날도, 그는 나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주머니.” “어어, 그래. 우물가에 다녀오는 것이냐?” “네, 날씨가 좋으니 물맛도 좋은 것 같아요. 이제 막 떠와서 엄청 시원한데 조금 드시겠어요?” “좋지!” 내가 이웃집 어르신들게 물을 떠드리는 동안 내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오소마츠는 ‘잠시만 이분들과 함께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 … 이 마을은 첩첩산중에 둘러쌓여 사람이 살고 있다 해도 황무지처럼 조용하다. 그녀는 왜 하필이면 이런 곳을 선택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찼던 천선이었지만, 그는 풀벌레 우는 소리 조차 들려오지 않는 그 정적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발걸음소리를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새삼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태연하게 콧노래를 부르며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가 의문의 사내가 주춤거리며 몸을 감추는 사이 재빨리 샛길로 빠졌다. 잠시 후 사내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고, 천선은 그가 방심하는 사이 그 뒤로 다가가서 목을 강하게 졸랐다. ‘윽!’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아무도 사내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는 그대로 천선에 의해 골목길로 끌려갔다. “당신 말이야─, 내가 좋다면 사내답게 당당히 고백하고 차이라고─. 멋대로 집을 뒤지는 것도 모자라서 미행을 하다니, 사내에게 사랑받는 것만도 충분히 기분 나쁜데 이건 아니잖아─. 안 그래──?” “윽……! 으……! 커헉! 커헉!” 천선은 근처의 빈 곳간에 사내를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바닥에 내팽겨쳐진 사내는 부딪힌 곳에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여서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선은 사내가 완전히 의식을 되찾기 전에 그의 어깨에 거침없이 발길질을 하고, ‘억!’ 하고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진 그의 앞에 가서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창백한 피부, 파란 입술, 갈라진 손톱……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소름끼치게 생겼다니까─. 너, 마계에서 온 녀석이지─? 뭐야, 뭐야─? 숙부님께서 네게 인간계로 가서 나를 염탐하라고 지시하시든─? 응─?” “…….” “그래, 그래, 못생긴 것과 주군에 대한 충성심은 별개지─. 이해해─. 그러니까 입을 열기 쉽도록 내가 도와줄게──.” “으헉! 커헉! 으…… 으윽! 큭! 으아악!” 천선은 사내의 멱살을 붙잡고 그의 얼굴을 흠씬 두들겨 팼다. 어차피 얼굴이 곰보가 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사이 그에게 말을 할 여유 따위는 주지 않았다. 그저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기를 반복했다. 살아오면서 그다지 주먹을 쓸 일은 없었지만 때리는 힘 만큼은 둘째인 천기 못지 않게 강했던 천선이었다. 사내는 그런 천선에게 얼굴을 가격당할 때 마다 자신의 영혼이 저승의 끝에 다다르는 것을 느꼈고, 천선이 다시 주먹을 들어올리는 순간 불어터진 입술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ㅌ태, 태자마마…… 요, 요, 용서해주십……시오…….” 천선은 팔을 내리고 사내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의 매서운 눈빛은 결코 사내를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고백의 시간이야──. 딱 1분 줄 테니까 나에게 해야 할 말을 전부 털어놓도록 해──.” 사내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 “뭐야─, 방금 전까지 그렇게 뜨겁게 상대해줬는데 아직도 부끄러워하는 거야──? 정말 글러먹은 녀석이네──.” 천선이 다시 주먹을 들자, 사내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독단으로 자행한 일입니다!” “그 말을 날 더러 믿으라고─?” 퍽─!!! 사내는 또 다시 천선에게 얼굴을 가격당해 지푸라기 하나 깔려 있지 않은 딱딱한 바닥을 나뒹굴었다. 제 나름대로 무인출신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천선과 대적할 수도 있었지만, 정체가 발각된 시점에서 천국의 태자인 그에게 거스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니 도망칠 수 없다면 그저 맞는 수밖에 없었다. “있잖아──.” “크윽……!” 천선은 부서진 나무의 잔해 위에 널브러져 있는 사내의 머리털을 부여잡고 그가 자신과 마주보도록 했다. 천선이 상체를 숙여 가까이 다가가자,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였던 사내의 얼굴에 생생한 두려움이 급속도로 번졌다. 하지만 결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너도 관료라면 예전에 내가 지금처럼 폐위될 위기에 놓여 있었을 때를 기억하겠지─?” “…….” “몇몇의 신하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일어나서 아바마마께서 내게 철저히 조사를 하라고 명령하셨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전부 숙부님의 사람들이었으니, 그 중에 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자들이 한 명 쯤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유무죄를 가리지 않고 전부 참형에 처했지─. 아바마마께 들키는 바람에 결국 자신의 지위가 위험해졌지만 말이야─, 솔직히 그때 엄청 유쾌한 기분이었어─. 줄곧 나를 괴롭혀왔고 지금도 괴롭히고 있는 체증이 아주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었달까─? 이 녀석의 머리도 댕강, 저 녀석의 머리도 댕강─! 하하하하─! 전부 죽여 버리면 힘들여 조사할 필요도 없고 편할 텐데, 아바마마께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걸까─?” 천선은 사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내의 눈동자가 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너희를 버리지 않으셨을지 몰라도, 나는 진작에 버렸어─. 아니, 애당초 가진 적이 없다고 해야 맞으려나─?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숙부님께서 그토록 내 즉위를 반대하고 어떻게든 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시는 거지─. 형제들과 내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소신료들에게 나에 대해 온갖 질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말이야─.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황위를 잇는 순간 전부 끝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너희는 정말 나를 열받게 하는데 뭐가 있어─. 어째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보지 못하는 거지─? 어렸을 때 나는 황위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 차기 황제로 숙부님께서 되시든, 천기가 되든, 네가 되든, 누가 되든 간에 아무래도 좋았다고. 그저 어마마마와 형제들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했어. 그런데 그걸 너희가 망쳤어. 너희 때문에 내가 혼자가 된 거야, 알아? 그건…… 그건 나에게 있어서 네놈들의 목을 전부 베어도 보상받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으……크허억!!! 으으흐억……!!!” 꽈아아악─. 천선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며 목을 조르기 시작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는 마지막 발버둥을 치다가 낡은 헝겊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쓸데없이 위험한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천수를 누렸을 신선의 삶. 그것을 잔인하게 끊어 버린 것에 대해서 천선은 조금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말과 같이, 묵은 체증이 조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뿐이었다. “이번 만큼은…….” 천선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조금 전까지 사내의 목을 졸랐던 두 손을 닦은 뒤 바닥에 내던졌다. 아직 새 것이나 다름없는 깨끗한 손수건이었지만 그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하찮은 것들과 비교해도 가장 더러운 것이었다. “그녀 만큼은…… 절대로 너희에게 빼앗기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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