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소리 조차 들려오지 않는 유독 고요한 밤이었다. 나는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채 잠들어 버린 오소마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방이 조금 어두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덧 불씨가 약해져 있었고, 나는 조심스레 오소마츠의 머리에 베개를 베어준 뒤 뗄감을 가지러 부엌으로 향했다.

 뗄감은 대부분 딱딱하게 말라 있었는데, 그것을 꺼내려다 날카로운 껍질에 손등을 긁혔다. 그것이 생각보다 아팠기에, 나는 부엌을 나와서 의자 위에 잠시 뗄감을 내려놓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그때, 무언가 가냘픈 소리가 바람에 실려와 나의 귀를 상냥하게 간질였다.

 “피리 소리…….”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토록 고요했던 밤 영롱한 달빛 아래, 누군가 홀로 피리를 불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발걸음을 옮겨 소리를 쫓아갔다. 문득 야옹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어둠속에서 녹색으로 번쩍이는 두 개의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검은 털, 하얀 털, 얼룩무늬, 온갖 생김새의 고양이가 나와 같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고양의 수는 점점 늘어갔고, 내가 마침내 그곳에 다다랐다고 느꼈을 때는 모든 고양이들이 한 곳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낡은 기와집의 지붕 위에서, 어떤 사내가 고양이들에게 둘러쌓인 채 피리를 불고 있었다. 검은 기모노에 하얀 천을 목과 어깨에 두른 모습이 자연스레 시선을 이끌고, 소매 밖으로 드러난 팔의 새하얀 피부와 매끄러운 곡선이 매우 아름다웠다.

 혹시 카라마츠씨가 말했던 신기한 광경이란 것이 이것인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사내는 달빛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그가 피리 부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비로소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또 다시 깜짝 놀랐고, 오소마츠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카라마츠씨 말고도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리카락의 모양이 조금 달랐지만 일순간 본인과 착각할 정도로 닮은 그 얼굴은 형제이면서 쌍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여인 혼자서 밤길을 걷다니, 위험하지 않나.”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멍하니 서 있던 내게 사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사내는 차가운 듯하면서도 온화하고 흐릿한 듯하면서도 선명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잠시 후 그가 지붕 위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상처를 입었군.”

 그는 내 손을 붙잡았다.

 “괜찮다. 낫게 해주려는 것 뿐이야.”

 움찔- 하는 내게, 그는 나지막이 말한 뒤 살며시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내 손등에 난 상처를 핥았다. 뜨겁고 미끈한 느낌이 났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고, 어느덧 자신의 상처가 깨끗하게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사내의 말대로 그가 내 상처를 낫게 해준 것이었다.

 “너에게서 마른 나무의 냄새가 나는군. 그리고 상당히 익숙한 사내의 냄새도…….”

 휙─!

 순식간에 내 시야를 훑고 지나간 것은 사내의 기다란 팔소매, 그 다음으로 내가 본 것은 사내의 뒷모습과 가로로 곧게 뻗어 있는 그의 팔, 그리고 피리였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지만 사내가 돌아본 방향으로부터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의 모습이 보였을 때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오소마츠의 손에 작은 돌멩이가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 그가 사내에게 돌을 던졌고, 그것을 알아차린 사내가 그 돌을 베어버린 같았다. 날은커녕 그것과 비슷하게 생기지도 않은 뭉툭한 피리로 어떻게 돌을 벨 수 있었을까. 나는 놀라움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변함없이 알아차리는 게 빠르네.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거 아니야?”

 오소마츠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하자, 사내의 피리가 그의 손가락을 축으로 휘릭- 하고 두어 바퀴 돌더니 허리띠에 끼워졌다. 그리고 사내는 오소마츠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예의 차릴 거 없어. 형제잖아.”

 역시 그런 것인가.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오소마츠와 사내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직접 눈으로 비교해보니 두 남자의 얼굴이 완전히 똑같이 생겼음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내의 태도로 미루어보아, 그는 카라마츠씨와 마찬가지로 오소마츠의 동생인 것 같았다.

 “둘째에게 대충 얘기는 들었다만, 인간계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아버지의 명령으로 오늘부터 형님의 호위를 맡게 되었습니다.”

 “호위? 아버지께서도 참, 그런 거 필요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당분간 이 근처에 머물 것입니다. 항상 예의 주시하며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동생들의 보살핌이 너무 극진해서 형아 부담스러운데─. 이렇게 갑자기 말이야─. 진작부터 좀 그러지 그랬어─?”

 “저기…….”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아’ 하며 오소마츠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넷째 동생이야. 인사해.”

 “안녕하세요.”

 “마츠노 이치마츠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놀랐지만, 사내는 차가운 표정이나 차분한 목소리에 비해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기 때문이 아닌 ‘오소마츠의 여자’이기 때문이었겠지만, 그와 같은 신선에게 정중히 인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그런데 이치마츠, 이 고양이들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전부 야생에서 온 녀석들이라 냄새가 엄청 나는데.”

 “인간계에 내려오는 것이 오랜만이다보니…… 송구합니다. 지금 모두 원래의 곳으로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놀러왔던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한…… 200년 됐나?”

 “이번 해로서 정확히 204년 째입니다.”

 “흐응─.”

 고양이들은 사내의 피리 소리에 제 각각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오소마츠는 천천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벌써 그렇게…….’ 문득 그러한 중얼거림이 그의 어깨 너머로부터 들려왔다.

 오소마츠의 중얼거림에 그리움이 담겨 있었듯이, 내 가슴에는 그와 같은 씁쓸한 감정이 있었다. 인간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신선에게 1년과 같다. 문득 오소마츠와 술을 마셨을 때 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라, 새삼 놀랍기도 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백발 할머니가 되었을 때 오소마츠는 기껏해야 인간 나이로 30대 중반 정도가 되어 있겠지. 애당초, 젊음을 잃지 않은 그가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 당연한 것은 신선인 그와 관계를 가졌던 날부터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을 터인데, 사람으로서, 여인으로서, 별 수 없이 가슴이 죄어왔다.

 그 후 오소마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육체의 피로 때문이 아닌, 마음의 피로 때문이었다. 잠결에 문득 내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던 오소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서는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굳이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저 계속, 계속, 꿈속을 헤메었다.

 …

 …

 …

 “망할 천기가 인간계에 왔을 때 겨루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나와는 하지 않는 거야?”

 어둠이 점점 옅어지며 서서히 새벽이 다가오고 어느덧 청록색으로 물든 하늘에 샛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지붕 위에 걸터앉은 두 사내의 머리 위로 두어 마리의 새가 분주히 일어나 날아다녔다. 어느 때라도 될 수 있는대로 군신(君臣)의 예를 다 하려고 노력하는 셋째 천권과 달리, 넷째 옥형은 종종 천선에게 자연스레 말을 놓곤 했다. 그날도 신(臣)의 위치에 있는 그는 군(君)의 위치에 올라 있는 형 천선과 둘만 남게 되자 그를 어렸을 때와 다름 없이 대했다. 그 점에 대해서 만큼은 그의 등장을 석연찮아 했던 천선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애당초 그는 천선에게 ‘신하’가 아닌 ‘동생’이기 때문이었다.

 “아까 내 아내의 손등을 핥았던 것에 대해서는 이미 응징했고, 딱히 그럴 생각은 없는데. 왜, 너도 하고 싶어?”

 옥형은 자신의 정수리에 난 혹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까 천선에게 꿀밤을 맞은 곳이었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지. 망할 천기와 내가 무신을 하고 있다 해도, 원래 형제들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천선형이잖아. ……내가 여기에 온 것이 단지 호위 때문은 아닐 것이라는 걸 형이 모를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말이야.”

 천선은 곰방대를 쥔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후우- 하고 하얀 연기를 뱉었다.

 “천기가 온 이래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너희가 받은 지령이란 것은 역시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어.”

 연기는 하늘의 옥색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며 피어올랐다.

 “너희, 나와 그녀를 갈라놓기 위해 온 거지?”

 옥형은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천선을 돌아보았다가 말 없이 시선을 되돌렸다.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면서도 나와 싸울 생각을 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아?”

 “죽는 건 아무래도 좋지만, 형이 나를 죽일 수 있을 리…….”

 그가 말을 끝마치기 전, 천선이 하하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천기도 똑같은 말을 했어, 겨루기 도중에.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니…….”

 천선은 기와에 손을 짚고 몸을 옆으로 기울여 옥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와 그녀 중 한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면 난 널 버릴 거야.”

 그의 목소리는 옥형에게 매우 부드럽고 차분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옥형은 결코 옆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천선의 눈동자에 비친 살기를 마주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덜컥 겁을 먹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형이 거기까지 진심일 줄은…….”

 “이제는 알겠지? 알았다면 어리석은 짓 하지 마.”

 천선은 곰방대를 다시 입에 물고 그것이 주는 미력한 괴로움과 몽롱함을 느꼈다가 또 한 번 연기를 뱉었다.

 “명령은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어.”

 옥형이 말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톡 까놓고 말해서 너는 순진한 녀석이니까 별로 걱정 안 돼.”

 “…….”

 옥형은 천선이 문득 밉살스럽게 느껴져서 미간을 좁힌 채 그를 노려보았다.

 “문제는 천기지. 그 녀석은 인간의 목숨 따위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는 녀석이야.”

 “아무리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해, 녀석은. 내 동생이니까 그다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닮았거든.”

 “닮았다니, 누구와?”

 천선은 팔을 살며시 앞으로 뻗고서 곰방대를 뒤집었다. 까만 재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 뒤, 그는 옥형의 물음에 대답했다.

 “숙부님.”

 그의 얼어붙은 목소리,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에 옥형은 또 한 번 살기를 느꼈다. 그것은 조금 전에 자신에게 향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짙으며, 무심코 마른침을 삼키게 될 정도로 두려운 것이었다.

 “최근 천권형이랑 은밀히 조사하고 있던 게…… 혹시…….”

 “아아, 어마마마의 죽음에 관련된 거야.”

 “그만 둬, 아바마마께 알려지면…….”

 “정말 폐위될지도 모르지. 그땐 주종자로 의심되는 녀석들을 전부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

 옥형은 저 멀리 산 너머로 조금씩 멀어져가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찾아오는 그리움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비슷하더라.”

 “뭐가?”

 “형의 여자 말이야.”

 이제 몇 년이나 지났을까. 옥형에게는 언제나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그 시간 만큼은 그의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망각 되어 있었다. 간단히 떠올리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아련한 추억들.

 “생김새는 다르지만 분위기가 꽤 비슷한 것 같았어. 어마마마와.”

 “여태껏 그렇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는데,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형이 그녀에게 반했던 이유는 어차피 그거 아니야? 너, 언제나 막내에게 여자 좀 소개시켜달라는 둥 농담을 하긴 했어도 여태껏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던 적이 없었잖아. 황실에서 만날 수 있는 여자라봤자 전부 권력과 사치에 물든 속물들 뿐이니까.”

 “…….”

 옥형은 문득 말이 없는 천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조금 놀랐다. 무신(武神)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할 정도로 끔찍한 살기를 가슴에 품은 자가, 단지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토록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 그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충성심이 그의 마음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뒤로도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애쓸 뿐이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난 분명 둘째를 제외한 다른 동생들에게 그녀를 소개시켜주었을 거야. 그 만큼 좋은 여자니까.”

 “그 둘째가 지금 이 마을에 있어. 만에 하나 망할 천기가 형으로부터 그녀를 빼앗으면 그땐 어떡할 거야?”

 “난 아바마마처럼 그리 너그럽지 않아. 아마도 마계에 유폐시키는 것만으로는 끝내지 않겠지.”

 천선은 이전과 같이 불어오는 바람에 까맣게 탄 담뱃재를 버렸다.

 “내 것이 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재가 되어 사라지거라…….”

 그 순간 천선의 말과 옥형의 눈에 비치는 형상이 일치했다. 그것은 정말로 공중을 떠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마마마께서 돌아가셨던 날, 숙부님께서는 마계의 저택에 갇혀계셨어. 그날 숙부님의 시중을 들었던 하녀가 지필묵을 정리하면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시 한구를 읽었는데, 이게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야.”

 “그럼 어마마마를 해친 사람은 역시…….”

 옥형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차례 바람이 지나간 뒤 다시 들려온 것은 그가 아닌 천선의 목소리였다.

 “숙부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분명 천기도 같은 일을 할 거야. 가둬두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

 천선이 곰방대를 꽉 움켜쥐자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고, 대나무로 만들어진 견고한 막대가 와직 부숴졌다.

 “그때는 내가 태워주겠어……. 바람에 조차 의지할 수 없도록 흔적도 없이…….”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