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장터의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나는 그곳에 무언가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음을 알고 곁에 있던 오소마츠의 팔을 잡아끌었다. 항상 텅 비어 있어 사람들이 나다니기만 했던 광장은 커다란 무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쫙 둘러서서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오소마츠와 함께 무대에 가까이 다가갔다. 앞을 막고 있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자, 비로소 무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챙─! 챙챙─!

 단단한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연신 내 귀를 두드렸다. 무대에는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한 명은 덩치가 아주 컸고, 다른 한 명은 비교적 가느다란 체형이었다. 「제 34회 무술대회」라는 팻말 아래 두 사내는 각각 창과 검으로 서로를 상대했다. 그 중에서 내 눈길을 끈 사람은 가느다란 체형에 검을 든 사내였다. 검은 기모노에 남색 하오리를 걸친 그 사내는 움직일 때 마다 옷자락이 부드럽게 나풀거렸고, 몸을 움직임에 있어서 바람처럼 민첩하면서도 한 마리의 나비처럼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두려운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그의 검법은 나로 하여금 넋을 잃게 했다.

 무대가 높아서 사내의 몸짓만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그의 얼굴이 궁금해져서 무대에 딱 달라붙어 있는 힘껏 까치발을 들었다. 어째서인가 오소마츠가 내 팔을 붙잡고 계속 돌아가자는 말을 했지만,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말하며 무대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대가 크게 진동했다. 덩치 큰 사내가 쓰러진 것이었다. 그때 즈음 가느다란 체형을 가진 사내의 얼굴을 본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내가 사랑하는 사내와 정말이지 똑같은, 다른 구석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마치 쌍둥이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쓰, 쓰러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잠깐!”

 사내는 하늘을 향해 칼을 들어 올리며 사회자의 진행을 끊었다. 대결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흥분되어 함성을 지르기보다는 놀라움에 저 마다 옆사람을 돌아보며 웅성웅성 술렁이고 있었다.

 “모처럼 대회를 열었는데 이렇게 끝내는 것은 구경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모두 쓰러져서 이제 더는 남아 있는 참가자가…….”

 “상대는 찾아내면 되네. 이 안에서 내 눈에 띄는 자가 한 명 있네만, 어떤가?”

 사내가 천천히 팔을 내리자 하늘을 향해 있던 그의 칼날이 가로로 기울며 무대 밖 군중 사이의 한 곳을 가리켰다. 정확히 나와 오소마츠가 서 있는 지점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둘로 갈라졌고, 그들의 시선은 우리에게로 집중되었다.

 “형님.”

 그가 지목한 사람은 역시 내 옆에 서 있던 오소마츠였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오소마츠를 돌아보았다. 무대 위의 사내와 그의 얼굴이 완전히 똑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 역시 전보다 더욱 크게 술렁였다.

 “가자.”

 오소마츠는 내 팔을 붙잡고 그대로 사람들의 무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홱- 돌아보았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어느덧 그의 손에는 조금 전까지 무대 위의 사내가 들고 있던 검이 쥐어져 있었다. 사내가 오소마츠에게 던진 것이었다.

 “여기서 내게 대적할 자는 너밖에 없다. 무거운 마음은 잠시 내려 두고 놀아보자고, 예전처럼.”

 사내는 무대 위에서 뛰어내려 지면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자 오소마츠가 내쪽으로 팔을 뻗어 나를 뒤로 보냈다. 나는 그대로 몇 걸음 더 물러나다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피했다.

 “놀아주면 오늘은 얌전히 돌아가는 거다─?”

 사내를 노려보던 오소마츠가 말했다. 이윽고 그가 두 손으로 검을 바로잡으니, 그것을 신호탄으로 사내가 날아오르듯 빠르게 도약해 그에게 달려갔다. 챙! 하고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뇌리에 날아와 깊이 박히는가 하면, 검과 검이 연달아 서로 부딪히며 그 주변에 바람이 일었다. 굉장히 치열하고 아찔하면서도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하여금 지켜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그들의 움직임은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유쾌함에 함성을 지르는 대신 놀라움에 마른침을 삼키게 했다. 나 역시 형제 간의 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넋을 놓은 채 눈앞의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챙─! 끼기기긱──.

 검이 크게 부딪히며 두 사내가 서로에게 바짝 다가섰다.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네가 아바마마께 무슨 지령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내게 해가 되는 일을 하려거든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재밌군. 어째서 내가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지금 네 눈동자, 아바마마를 향한 충성심과 나와의 의리를 두고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 게 빤히 보이거든.”

 “아바마마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다 너를 위해서다. 설령 앞으로 네가 어떠한 해를 입게 된다 하더라도 그건 네가 부족한 탓이지 결코 아바마마의 잘못이 아냐.”

 “무언가를 지키려고 할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상처입히게 되는 법이지. 난 이미 과거에 한 번 아바마마께 상처를 받았어.”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나 또한 머지않아 너를 상처입히게 되겠군.”

 “그래서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야. 지금 여기서 너를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너는 형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녀석이 아니냐.”

 “예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와 그녀 중 한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면 난 널 버리겠어.”


 챙─!

 칼날을 집어삼킬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오소마츠와 사내가 떨어졌다. 사내는 뒤로 물러나는 순간부터 자세를 다시 고쳐잡는 순간까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잠시 시선을 아래로 향했을 때 그의 팔소매는 깔끔하게 잘려 있었고, 검은 천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피부에 가로로 길게 베인 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오소마츠의 칼날에 그와 같은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내는 잠시 공격태세를 풀고서 상처입은 자신의 팔을 살며시 들어 피를 핥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상처가 그 자리에서 바로 아물었다. 너무 짧은 순간이었던 터라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구경꾼의 무리 중에서 나를 포함해 몇 명 되지 않는 듯했다.

 “신선이 상처를 핥으면 낫는다…… 저쪽 세상에서는 당연한 거지만 다른 녀석이 하는 걸 보면 역시 기분 나쁘네…….”

 “관능적이라고 칭찬해주는 여성도 많다고─. 넷째 아우는 상처가 나지 않아도 항상 하고 있고 말이야─.”

 “그거하고 이건 좀 다르달까, 뭐랄까……. 어쨌든 핥는 건 나중에 여자들 앞에서 하던지 해. 내게 보여주지 마.”

 “뭐, 좋아. 슬슬 이 ‘놀이’의 결착을 내볼까, 형제.”

 “바라는 바야. 덤벼.”

 …

 …

 …

 격전 끝에 두 개의 날이 서로의 목을 향하게 되면서 그날의 시합은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다만 오소마츠는 정식으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명목적인 우승자는 사내 쪽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마츠노 카라마츠라고 소개한 사내는 우리와 저녁을 먹을 만큼만 자신이 갖고 남은 상금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주도록 했다. 대회는 예년에 비해 너무나도 빨리 끝나 버렸지만 그것이 끝난 뒤의 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우리가 객잔에서 식사를 할 때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보았던 광경에 대해 떠들어댔다. 따로 방을 잡았는데도 바깥이 워낙 시끌벅적 했기에 그 소리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들려왔다. 그들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이른 무예였다며 끝도 없이 두 남자를 칭송하고 있었다.

 “그럼 당분간 우리 마을에서 살게 되시는 건가요?”

 “아아, 앞으로 가까운 이웃으로서 잘 부탁한다.”

 어느덧 노을이 내려앉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함께 걸었다. 오소마츠는 우물을 이용해 빨리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나는 모처럼 형제끼리 만났으니 좀 더 이야기를 나눠야지 않겠냐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집으로 향하는 내내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정작 카라마츠씨와 대화를 제대로 나눈 사람은 나 뿐이었다.

 “이웃 이상의 관계가 되어도 나는 딱히 상관 없다만.”

 “어이, 나쁜 농담은 그만둬. 형의 여자에게 무얼 아무렇지 않게 치근덕대는 거야, 이 호색한.”

 카라마츠씨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뒤에서 걷고 있던 오소마츠를 슬쩍 돌아보더니 무엇이 재밌는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

 “벌써 자신의 여자로 만든 건가? 역시 형님은 하면 되는 사내로군. 조금 더 빨리 왔더라면 좋았을 뻔했어.”

 문득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나는 고개를 숙였다.

 “좋았을 뻔했다니 무슨 뜻이야? 혹시라도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정말로 죽여 버릴 거야.”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평범하게 말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평소와는 상당히 다른 묵직한 중저음으로 들려왔다.

 “또 그런 소릴.”

 그러나 카라마츠씨는 처음부터 그랬듯이 조금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싱글벙글 웃으며 그를 대했다.

 “아, 그렇지. 셋째 아우 말이다만, 아버지께서 내리신 임무 때문에 바빠서 당분간 여기로 오지 못할 거다.”

 “하아─?!”

 오소마츠는 적잖이 놀란 듯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소리치더니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인상을 찡그리며 카라마츠씨의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야미는? 설마 이야미 녀석도 뭔가……!”

 “난 잘 모르겠다만, 넷째가 그리로 향했으니 아무래도 그렇게 되지 않겠나. 너도 알고 있다시피 한 번 천계로 불려가면 금방 돌아오는 것은 무리다.”

 “으으으으!!! 망할 영감탱이!!! 그렇게 나오시겠다?!!! 진짜 열받아!!!”

 카라마츠씨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고 슬쩍 다시 아래로 내렸다. 그저 이야기의 흐름으로 짐작컨대 그는 아버지를 굉장히 존경하고 있는 사람이고, 오소마츠는 아버지와 약간의 갈등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물론 거기서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길을 걷기로 했다. 문득 오소마츠의 얼굴을 돌아보았을 때 그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궁금하더라도 참고, 나중에 이것 저것 천천히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고양이를 좋아하는가?”

 그때 카라마츠씨가 내게 물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만약 밤중에 피리소리를 듣게 되면 그 소리를 따라가보도록 해라.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될 테니까.”

 나는 카라마츠씨의 웃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다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서 내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오소마츠의 무서운 표정을 보고 곧 자신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카라마츠씨의 말을 듣고 미간이 더욱 좁혀진 것으로 보아, 오소마츠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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