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이웃집에 잠시 다녀왔다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목욕물을 끓이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 나는 문을 열자 마자 나를 덮쳐오는 엄청난 위화감에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 집에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욕조 뿐인데, 어째서인가 부엌 한 가운데 두 사람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커다란 욕조가 놓여 있었다. 게다가 언제 준비된 것인지 욕조 안을 가득 채운 뜨거운 물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라 시야를 뒤덮었다.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에 그저 멍하니 서 있노라면, 문득 입구로부터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한 손에 작은 대야와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는 태연하게 내 옆을 지나 욕조로 향하더니 입고 있던 하얀 유카타의 끈을 풀었다. 새삼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노라면, 어느덧 옷을 벗은 오소마츠가 욕조 안으로 들어가서는 나른함이 느껴지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끔은 넓은 욕조에서 편하게 씻고 싶었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방으로 돌아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몸의 방향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오소마츠가 나를 불러세웠다.

 “어디 가는 거야? 너도 들어와.”

 “에…….”

 마치 품에 안길 때처럼, 그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커다란 욕조를 준비했다고 생각해? 같이 씻자─.”

 “돼, 됐어. 모처럼이니까 편하게 있다가 나와.”

 “얼른──.”

 오소마츠가 조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선뜻 그의 말에 따르지 못했다. 이에 오소마츠의 미간이 좁혀지는가 하면,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와 내 앞섬을 헤쳐놓았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옷을 추스렸으나 또 한 번 바람이 불어와 이번에는 내 옷자락을 휙 들추었다. 그러한 일이 몇 번인가 반복되고, 나는 머지않아 옷이 반쯤 벗겨진 상태가 되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동자에 어느덧 장난기가 가득 어려 있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나는 말없이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바라는 대로 욕조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리 가까이 와. 춥지 않게 안아줄게.”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등을 지고 앉았다. 이윽고 그의 두 팔이 뒤에서부터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왔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 나는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늘 아저씨네는 무슨 일로 간 거야? 설마 또 아직 미혼이라는 그 사촌 녀석에 대해 얘기한 건 아니겠지?”

 문득 오소마츠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냐, 아냐. 그냥 얼마 전에 옆 마을에 흉흉한 일이 일어났으니까 당분간 길을 다닐 때 조심하라는 말을 해주셨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질투라는 것을, 단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뜨겁고 매끈한 혀의 감촉이 목과 귀의 언저리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뛰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야릇한 긴장감이 온몸을 강하게 죄어왔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나를 꼬옥 끌어안은 채 물에 잠겨 있는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처음에는 거친 손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움직임은 곧 부드럽게, 상냥하게 변했다.

 “꼬맹이 같지만, 이걸 만지고 있으면 엄청 안심 돼─. 나 외에 누구에게도 허락해서는 안 돼─. 알았지─?”

 “허락할 리가 없잖아, 내 전부 오소마츠의 것이야…….”

 “응, 잘 대답했어─.”

 그는 내 어깨와 목에 입을 맞추었고, 내가 방심하는 사이 내 몸을 자신에게 바짝 밀착시켰다. 그가 욕조 바닥에 무릎을 대고 슬쩍 일어나자 내 허리를 붙잡은 그의 손에 의해 나도 함께 일으켜졌다. 몸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물이 계속 하얗게 피어오르며 수면 위로 떨어지면, 고요하면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에 더욱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오소마츠의 몸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미비한 저항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가 나의 이성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아, 안돼, 이런 곳에서 했다간 소리가 밖으로…….”

 “딱히 상관없어─. 그것으로 네가 내 것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준다면─. 너도 그렇지─?”

 “나는 상관없지 않아! 부끄러워! 놔 줘!”

 “으음─, 이번에는 틀린 대답──.”

 그 순간 내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이성이 툭- 하고 끊어졌다. 나는 오소마츠의 두 팔과 두 손에 완전히 속박되었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자신의 마음, 자신의 몸, 가슴속에 꼭꼭 감춰두었던 마지막 자존심과 최소한의 품위 마저도. 그렇게 그는 나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항상 그랬다. 내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실체’를 자신의 손에 쥐지 않는 이상, 그는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마치 예전부터 쭈욱 그래왔던 것처럼.

 …

 …

 …

 “있잖아…….”

 “응?”

 봄이라고 해도 밤이 되면 아직 추운데, 두 사람이 몸을 담그고 있는 물은 여전히 뜨거웠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신선과 함께 산다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편했다. 일일이 뜨거운 물을 붓지 않아도 계속 온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이 때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테니까.

 한순간 달아올랐던 몸이 편안해진 뒤로도 줄곧 나를 끌어안고 있던 오소마츠는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구름이 달을 지나갈 무렵 촛불에 의지한 어둠속에서 단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에게도 사생활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웬만하면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내가 없는 동안 쓸쓸했구나?”

 그는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에 보태기라도 하듯이 내 손을 감싸쥐었다. 문득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나를 간질이는가 하면, 그가 내 목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그 입맞춤에 넋을 빼앗기는 순간 나는 한 번 더 깨달았다. 이제 정말 나의 모든 것은 그 외에 다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네가 곁에 있어준다면, 나…… 내 동생들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린다 하더라도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동생들 모두와 행복했던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네가 없다면…… 그건 참을 수 없어…….”

 “네가 머물렀던 자리에 멈추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결국 또 다시 혼자 남게 될 거야…….”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그토록 강한 사람이, 울먹임이 섞인 나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놀라워서, 당황스러워서,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일생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에게 외로움 같은 보잘 것 없는 병을 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오소마츠는 인간이 아닌 신선이다. 외로움이란 초월적인 존재보다도 더 초월적인 감정이었던가. 그렇게나 강한 것이었던가. 단지 맞닿은 손의 떨림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강하게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소마츠의 불안감이 내게 그대로 옮겨져오는 듯했다.

 “너에게는 내 안의 내가 보이지……?”

 “너라면 나를 이해해줄 거지……?”

 나는 몸의 방향을 돌려 오소마츠와 마주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로부터 그를 끌어안았다.

 “…….”

 그는 내 몸을 두 팔로 감싼 채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다음에는 그도, 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없어서가 아닌, 무엇보다 그 의미가 깊은 침묵으로서 말을 대신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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