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 막 집을 나서려는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신발을 신고 일어나며 몰라도 된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나도 갈래."

 "안 돼."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다간 심심해 죽을 것 같다. ──나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리고 오소마츠는 그런 내게 결국 두 손을 들었다.

 …

 …

 …

 DVD라는 커다란 간판을 보면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소. 깔끔한 가게 내부에는 실로 다양한 DVD들이 장르에 따라서 분류되어 있었다.

 "뭔가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여기서 찾아봐."

 "잠깐, 나 혼자 낯선 데 두고 가지마. 나도 너랑 같이 갈래."

 오소마츠는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정말?' 하고 물으며 엄지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남자들의 욕망이 집결되어있는… 가 아니라, 확실히 여자인 내가 당당히 들어가기는 조금 곤란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나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그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수납장을 정리하고 있던 남자점원은 나를 보고 잠시 당황하는 듯 하더니 이내 상냥하게 웃으며 내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당당히 입장을 하면서도 내심 긴장하고 있던 나는 저도 모르게 그 점원과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오소마츠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네가 예쁜 여자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아?" 그가 내게 물었다.

 "AV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나는 수납장에서 아무 케이스나 하나 꺼내 살펴보며 대답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케이스에 인쇄되어 있는 사진은 집에서 훔쳐보던 성인잡지에 비해 수위가 훨씬 높았다.

 "그렇다고 해도, 여자를 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내가 조금 전 수납장에 돌려놓은 케이스를 다시 꺼내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함께 AV를 고르고 있는 그러한 상황이, 그에게는 그저 우습기만 한 모양이었다.

 "여성을 위한 것 말인가요? 있습니다." 그때 나에게 인사를 건넸던 남자점원이 말했다.

 그는 같은 시각 스타버에서 일하고 있는 토도마츠에게나 어울릴 법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와 조금 떨어진 수납장에서 핑크색의 케이스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확실히 비교적 여성스러운 디자인이었고, 앞면에 여자가 아닌 남자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사실 오소마츠에게 했던 말은 반쯤 농담이었고, 설마하니 정말로 그런 물건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뒷면의 사진과 문구들을 읽고난 뒤에도, 어떤 욕구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크게 자극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소마츠가 들고 있던 바구니에 과감히 케이스를 넣었다. 그 순간 오소마츠가 웃음을 터뜨린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너 정말 이거 볼 거야?"

 "응."

 "눈 밑이 새카맣게 변할 때까지 잠을 못 자게 되어도 난 모른다."

 "그래, 너한테 책임지라고 안 할 테니까 얼른 고르고 집에 가자."

 내가 계속 재촉하는 바람에 결국 오소마츠는 그 날 자신을 위한 것을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고, 마침 텅 비어 있는 형제들의 방에 들어가 빌려온 DVD를 기기 안에 넣고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리모콘의 재생버튼을 누르자 묘하게 귀여우면서 관능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화면에 반짝이는 로고가 지나간 뒤, 하얀 연기가 걷히며,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남자의 얼굴이 나왔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중요부위만 가린 채 샤워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뭐. ──내게는 아직 콧방귀를 뀔 정도였지만, 그 시점에서 나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오소마츠가 걱정이었다. 아무리 AV배우들의 알몸(?)에 익숙해져 있다고는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남자였고, 그러한 장면을 보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를까 그는 사색이 된 얼굴에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는 말 없이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굳이 나랑 같이 볼 필요는 없어."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내 손이 허벅지에 닿는 순간 그의 몸이 움찔, 하는 듯했다.

 "아, 아니. 나도 볼 거야."

 "왜?"

 "네가 혼자 AV를 보는 건 싫으니까."

 그 순간 어째서 오소마츠가 귀여워보였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대여점에서 그가 그랬듯이 조용히 웃음을 내뱉었다. 그 무렵 브라운관 안에서는 남자배우가 샤워실에서 나와 침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여성의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그런 다음에는 손등에 키스를 하고, 손가락의 끝을 천천히 핥더니, 가장 긴 손가락 세 개를 입에 머금고 애무를 시작했다. 무엇이 대상이 되었던지 간에 그것은 영락없는 구강성교였다. 내 얼굴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고, 오소마츠는 난생처음 게이무비를 본 남자처럼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소마츠."

 "응?"

 어른이라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의 자세를 능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고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는, 목을 깔끔하게 가다듬은 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저거 해줘."

 "하?"

 최악의 경우에는 경멸의 눈초리를 하며 방을 나가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오소마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지 너무 놀라서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다. 이에 나는 그의 손을 더욱 꼭 붙잡고 자신의 가슴앞으로 가져갔다.

 "부탁이야."

 "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는 점점 뜨거워지는 내 시선에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우왕좌왕하더니 도망치듯 엉덩이를 들썩여 내게서 한뼘 멀어졌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그를 굴복시켰다.

 "저거 끄고… 더이상 안 본다고 하면 생각해볼게."

 오소마츠는 기본적으로 이런 부탁을 쉽게 들어줄 만큼 만만한 남자가 아니지만, 나에게 한해서 그 정도의 대답은 거의 OK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DVD를 끄고, 리모콘을 내려놓았다. 내 시선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순간의 오소마츠는 꽤 기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며 마른침을 삼킨 뒤 소파 아래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딱히 AV와 똑같이 그런 불편한 자세로 앉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하고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오소마츠의 얼굴은 브라운관 속의 남자배우처럼 예쁘장하지는 않고,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남자다운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어린시절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내게는 그런 그의 얼굴도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정말 변태처럼 느껴져서 일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어쨌든 내게 있어서 그는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AV속 만인의 이상형보다 훨씬 훌륭한 상대였다. 거기에 내가 오소마츠를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왜 그래, 엄청 빨갛네." 나는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 하면 이성을 붙잡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하다가 문득 시야에 들어온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고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네 냄새가…" 오소마츠는 말끝을 흐리며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잠시 소홀히 했던 내 손가락을 입술로, 하얀 치아로, 매끄러운 혀로 감쌌다. 그의 뜨거운 숨결 또한, 물론 내 피부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숨이 가빠졌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평소 오소마츠나 다른 형제들이 보는 AV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저 손을 애무하고 있을 뿐인데, 그 감촉은 나로 하여금 전신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이제 됐어. 고마워."

 그 시점에서 더 참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자신이 호수처럼 맑은 정신을 가진 성인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위태로이 팽창하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소마츠는 그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응석을 부리는 아이처럼 내 손에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뺨을 부비적거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금만 더…'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내 한계였다.

 "더이상은 안 돼!!!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거야!!!"

 나는 그대로 방에서 뛰쳐나가 차가운 복도의 벽에 기대어 몸을 식혔다. 아니, 식히려고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오소마츠의 모습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내 손과 내 모든 것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숨결, 간간히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목소리… 부드러운, 정말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 문득 눈 밑이 까맣게 변할 때까지 잠을 못 자게 되어도 모른다고 했던 오소마츠의 농담이 떠올랐다. 실제로 그 순간의 나는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내일부터 오소마츠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어떻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과 마음이 진정되도록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자신에 대해서 놀란 것은,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오소마츠에게 그런 터무니 없는 부탁을 했던 것을 결코 후회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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