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온 것인가. 이제 그럴 나이는 지났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아침부터 어쩐지 기분이 꿀꿀하더니만 저녁이 되자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마구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외출을 감행, 밤이 깊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무려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고오오오오오)"

 "어, 뭐지-? 집안에서 검은색 아지랑이가 보이네-. 내 눈이 어떻게 됐나-. 얼른 들어가서 자야지-."

 "거기 멈춰."

 "(움찔)"

 "아가씨, 지금 이 상황이 농담으로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아? 그렇게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

 순간 진짜로 겁을 먹었지만 서둘러 그런 감정을 얼굴에서 지우고는 딱딱하게 굳은 안면근육을 최대한 당겨서 웃음을 짓고 그대로 뒤를 돌아본다. 그야말로 검은 아지랑이를 대방출하며 오소마츠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무섭다. 역시 은근슬쩍 도망이라는 것은 무리였나. 그래봤자 같은 집에 살고 있고. 하아-.

 탁탁탁-. 아까부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오소마츠가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멈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 오소마츠. 아, 뭔가 엄청난 게 올 것 같다. 저번처럼 담배연기는 아닐 것 같고, 뭐지. 불안한데.

 "오랜만에 그걸 해야겠다."

 "응?"

 "생각하는 자세. 기억 나지?"

 "응…? 으응…?"

 그러고보니 어렸을 때 그런 놀이를 했던 것도 같은 기억이─. 그런데 왜 즐거웠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지─?

 "지금 당장…?"

 "아아, 지금 당장."

 오소마츠가 카펫이 깔려 있는 바닥을 손으로 가리킨다. 왜 바닥을 가리키지. 바닥에서 하는 놀이였나. 그러고보니 이름부터가 왠지 좀 이상하다. 생각하는 자세라니. 왠지 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아─. 알겠다. 놀이가 아니라 벌이었구나. 벌을 서는 방법이었어.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훈육할 때 종종 들리던 말인데 어린 시절에 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던지라 단순히 놀이인 줄로만 알았다.

 "나 이제 어린애 아닌데……."

 "지금 네가 이 상황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야."

 "네……."

 …

 …

 …

 생각하는 자세라고 하면 보통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로댕의 조각상을 떠올리겠지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것은 그런 것과 전혀 다르다.

 일단 나는 바닥을 향해 몸을 웅크린 채 엎드려야 한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카펫과 오소마츠의 두 손. 오소마츠는 무릎을 바닥에 딛고 위에서부터 나를 감싼다. 감싼달까, 덮는달까, 이를 테면 거북이 등껍질처럼.

 이제 오소마츠가 상체를 숙여 내 머리맡으로 다가온다. 그런 다음에는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잔소리를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생각하는 자세'다.

 "외출할 때는 뭐라고 했지?"

 "미리 말하라고 했어."

 "그리고?"

 "술은 마시면 안 된다고 했어."

 "왜?"

 "건강이 다시 나빠질지도 모르니까."

 "네 건강이 나빠지면?"

 "오소마츠가 슬퍼."

 "그래, 잘 대답했어. 일단은."

 이제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어서 다시 해보니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자세다. 애당초 그런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과연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달까, 대체 어린 시절의 오소마츠는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낸 건지 모르겠다. 무서운 녀석.

 "난 말이야. 아직도 네가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 그리고 슬퍼. 이렇게 너를 걱정해주고 있는데 나를 슬프게 하면 안 되겠지?"

 "네."

 슬슬 허리를 펴고 싶다. 그리고 무섭다. 여기서는 괜히 꾀부리지 말고 오소마츠가 듣고 싶은 대답을 바로바로 내주도록 하자. 그게 내 신상에도 좋을 것 같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지?"

 "두 번 다시 술 마시지 않아요."

 "그리고?"

 "오소마츠가 하는 말 들어요."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

 여기까지 정해져 있는 패턴대로 잘 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에 뭐였는지가 기억나질 않는다. 앞으로 한 마디만 더 하면 끝인데. 마지막에 항상 하던 말이 있었는데. 뭐였지? 뭐였지!

 "오… 오소마츠가 뽀뽀해 버릴 거야…?"

 아, 이거구나. 어렸을 때도 이것 만큼은 정말 말하기 부끄러웠지. 그래서 일부러 마지막에 말하도록 한 건가. 점점 더 오소마츠가 무서워진다.

 "아니지, 이제 우리 둘 다 어른이잖아."

 오소마츠가 거의 기대듯이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쪽 팔로 나를 감싸안는다.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 있어서 조금 괴롭다.

 "듣지 않으면 H하는 거야… 어때…?"

 "(후덜덜)"

 "자, 다시.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

 "대답."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타박해도 말이야, 이건 좀 너무하잖아. 내게도 인격이라는 게 있는데.

 …라고 따지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보다는 얼른 벗어나고 싶다.

 "오… 오… 오소마츠랑… 에… 에에… 으으응……."

 "뭐야? 제대로 말해."

 "에… H해요……."

 "좋아."

 쪽─. 그가 내 귀에 입을 맞춘다. 조금 진한 느낌으로.

 "착하다."

 그리고 비로소 내게서 물러나는 오소마츠. 허리를 펴고 일어나려는데 힘이 빠져서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 짧은 시간에 기운이 쫙 빠져나간 기분이다.

 도대체가 내 친구라는 놈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하는 생각도 하는 짓도 일일이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형제인데다 쌍둥이니까 닮은 것은 당연한가. 그런 거면 진짜 빼도박도 못하겠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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