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공기가 서늘해지기 시작하니 묘하게 허전한 기분이 들어서 요즘 여가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는다. 여름에는 더위가 정신을 마비시키고 겨울에는 추위가 몸을 마비시킨다. 봄에는 봄기운이 스며들어 괜스레 기분이 부풀어 오르니, 실제로 가을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에게는 한 해 동안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한 계절이랄까. 독서란 마음에 쌓이는 교양.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책을 읽을 때는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읽는다.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요즘 내가 읽는 책이란 것이 대부분 흥미위주라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누구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을 수 있을 만큼(오소마츠) 시야가 넓지 않고 , 누구처럼 한 자리에 같은 자세로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을 만큼(쵸로마츠) 인내심이 강하지 않다. 집중력에 다소 문제가 있는 보통의 인간처럼, 자신의 관심을 끌만한 재미가 충분히 느껴지지 않으면 그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 어렸을 때는 종종 자신의 수준보다 어려운 책이나 비인기 장르의 책을 읽는 등의 과감한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어서인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때면 딱 내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오게 되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과자를 먹고 다리를 긁으며 실없이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따금씩 한숨을 자아낸다. 하지만 뭐 어떠랴, 독서에는 딱히 공부의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휴식의 목적 또한 있는 것이다. 그 책벌레 쵸로마츠도 가끔은 만화나 잡지를 읽을 정도니까, 때로는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오소마츠." "네─?" "너 예전에 카리스마 레전드였나, 그런 말을 자주 했었잖아." "제가요─? 기억 안 나는데요─?" 방 한편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있던 오소마츠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답한다. 능청스런 말투하곤,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철부지 티는 벗었지만 그와 동시에 점점 더 능글맞아지는 것 같다. "그 '카리스마'라는 단어 말이야,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건 아니야." "음─?" 비로소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정말 의외인 부분이지만 그는 경제/경영/정치 등의 비인기 장르의 책을 곧잘 읽는다.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쓰기만 하고 모으지는 않는다는 점이 걸리고, 혹시 나중에 사업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뭐, 쵸로마츠가 물리/화학 따위의 머리 아픈 책을 좋아하듯이, 사람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는 거겠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인류의 진화라는 책에 의하면 말이야……." "또 그 책이야? 대체 같은 책을 언제까지 읽는 거냐, 너." "시끄러워, 난 아직 독서가 습관화 되지 않았다고. 어쨌든 이 책에 의하면 말이야,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알파가 가지고 있는 성향으로 알려진 정복욕이나 소유욕, 폭력성, 지나친 성욕 등을 통틀어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는데, 그것을 최근에 어떤 학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카리스마'라고 일컬었대." "푸훕─. " 오소마츠의 저 웃음은 재밌거나 웃겨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일명 '알파 우월론'에 대한 그의 회의와 혐오감이 섞여 나오는 비웃음이다. 딱히 오메가인 내가 앞에 있다고 해서 내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국적, 인종, 종교, 성별 등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주의다. 그것은 오소마츠 본인의 성격과도 연결되는데, 내가 아는 그는 가족/친구 등의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성격답게 '분열'이라는 개념을 아주 싫어한다. 어쩌면 알파가 자신들을 유독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 또한 젠더 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정말, 겉은 종잇장 같아도 속은 의외로 깊은 녀석이라니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응." "네가 가진 카리스마 좀 보여줘봐."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눈동자를 모로 굴리며 고민하는 척, 그가 나의 비아냥에 어울려준다. 사실 내가 진짜 비아냥거려야 할 사람은 이 책을 쓴 녀석이지만 하는 수 없다. 나에게는 그나마 만만한 알파가 이 녀석이니까. "얼른, 뭔가 팟!!! 하는 걸 보여줘." "팟!!! 하는 거? 알았어─." 이윽고 그가 책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위아래로 팔을 뻗었다가 접었다가 하며 요란을 떨더니, 두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나를 가리키며 '팟!!!' 하고 외친다. 내가 시작했지만, 책 읽다가 이게 뭐하는 거냐……. 에휴……. 그래도 진지하게, 나도 장풍을 맞고 뒤로 자빠지는 연기를 한다. "으억, 어떡하지! 정복 당하고 싶어! 소유물이 되고 싶어! 지금 당장 오소마츠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싶어!" "대단하네, 나─. 이제 다시 책 읽어도 돼─?" "한 번 더 해봐." "팟!!!" "꺄아─!" 역시 유치한 것 만큼 유쾌한 장난도 없구나. 이제 정말 이 책을 끝내볼까.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