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가 드물게 손을 이끌고 어딜 좀 가자고 해서 따라나오긴 했는데… 여기가 어디지?
건물 입구에서부터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더니 지금은 뭐랄까, 두 사람의 주변으로부터 엄청난 위화감이 풍겨온다. 은은한 주홍색 조명으로 물든 방에 침대 하나, TV 하나,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밖의 여러가지 물건들. 아, 왠지 알 것 같다. 여긴──. '호텔?!!' 자, 자, 자, 잠깐. 진정하자. 진정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지 고민하자. 이런 대낮부터 호텔에 끌고 온 것을 트집 잡아야 하나? 그 전에 아직 우리가 사귀는 사이가 아님을 꼬집어야 하나? 물론 나는 오소마츠를 좋아한다. 솔직히 말해서 야한 상상도 한 적 있다. 하지만 어떤 상상을 했던지 간에 모든 관계에는 절차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그래, 일단, 일단은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어필해야 한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냥 돌아가자고 할까? 대놓고 이런 것은 안 된다고 할까? 그러면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고 기죽은 오소마츠가 다시는 이런 일을 할 엄두도 못내게 될까? 아아, 그건 싫다! 완전 엉망진창에 제멋대로인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싫다! "저, 저기… 오소마츠… 일단 묻겠는데… 여긴 뭐하러 온 거야…?" "집에서는 네가 언제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까, 여기서 푹 자라고 온 거야." 엥? 잠? 잠만 자러 온 거야? 뭐야, 괜히 놀랐잖아. 다행이다-. 아니, 다행인 건가?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도 생각해보니까 좀-. "자, 이리 와." 오소마츠가 먼저 침대 위로 뛰어들어 팔을 가로뻗고는 내게 누우라는 듯 탁탁 두드린다. 같은 방에서 잔 것은 물론 같은 이불속에서 잔 적도 있으니 딱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괜스레 긴장이 된다. 내가 머뭇거리자 오소마츠가 손을 쭉 뻗어 내 팔을 잡아당긴다. 그리하야 엉겁결에 눕기는 했다. 무려 오소마츠의 팔을 베고. 쓰담쓰담-. 오소마츠가 손끝을 살짝 세워서 머리를 만져주니 그래도 긴장감은 점점 풀리는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잘 뿐이라면 긴장할 필요도 없겠지. 며칠째 제대로 못 자서 피곤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오소마츠의 말대로 푹 자기로 할까. "……." 두 눈을 감은 채 침대의 안락함과 오소마츠의 손길을 느낀다. 이대로 잠이 들기만 하면 되는데, 어째서인지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든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건가? 정말? 아무것도? 오소마츠? 자냐? 잠깐, 생각을 좀 달리 해보자 나 자신. 어차피 오소마츠도 내 마음을 알고, 나도 오소마츠의 마음을 알고 있잖아. 그냥 이대로 사귀기만 하면 되는 건데 꼭 일반적인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 밀어붙이면… 어쩌면 연인 관계, 어쩌면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쭉 진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섭긴 하지만 조금 용기를 내면 못할 것도 없다. 나도 여자이고 이런 상황에서 유혹 쯤은! "어디 불편한 곳 없어─?" "아, 응……." 아아, 잠깐이었지만 재밌는 상상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했으면야 진작에 사귀었겠지. 내가 그렇지 뭐.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하나. 속으로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나와 달리 오소마츠가 뜻밖에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지금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가 않아졌다. 지난 날 아츠시군은 상대방이 내게 확신을 주지 않을 때 그 관계가 거기까지가 아닐지 의심해봐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오소마츠로부터 좋아한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오랜 시간 동안 연락 조차 되지 않는 나를 기다려줬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증명된 것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좋아하지만, 원하지만, 그렇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오소마츠는 어떤 형태로든 내가 편해지길 바라는 것 같으니까. 그 마음을 애써 거스르지는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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