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와 따뜻한 방에 눌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 한국으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국제전화란 말이 거창할 뿐이지, 딱히 중요한 얘기랄 것도 없다. 그저 언제나와 같이 안부를 묻는 것뿐.

 어쨌든, 나는 여태껏 가족과의 통화를 언제나 혼자 있을 때 했었다. 내가 일본에 살면서 갖게 된 습관 중 하나다.

 이따금씩 한국어를 할 때, 주변 사람들이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씩 기피하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방에는 나 외에 오소마츠 한 명 뿐이고, 어차피 오소마츠는 한국어를 알아듣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상관없겠지.

 …

 …

 …

 그래, 이제 슬슬 나도 그럴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다. 가족과의 통화가 불편해지는 시기… 그 이유… 바로 연애/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에 남기 위해 온갖 핑곗거리란 핑곗거리는 다 만들어냈는데, 여태 남자친구 하나 못 사귀었다고 말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쩍─. 쩍─.

 하아, 깊은 한숨을 삼키며, 힘겹게 말을 잇는다.

 "사귀는 사람은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도……."

 말끝을 흐리며, 나는 저도 모르게 오소마츠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무표정의 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페이지를 넘기며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묘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사실,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의 장남이예요. 아직 여러가지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많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본인 앞에서, 본인을, 부모님께 소개하다니. 아무리 못 알아듣는다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것은 참으로 대담한 발상이었다.

 망설임은 없었지만,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제 입으로 말하고도 얼굴이 조금 화끈거리는 듯했다.

 다시 고개를 모로 돌려보면 오소마츠는 여전히 책 위에 시선을 꽂은 채였다.

 "당장 한국으로 오라고요? (…) 얼마나요? (…) 이, 일주일이나요?"

 아, 자존심 좀 챙기자고 좋아하는 사람 얘길 꺼낸 것이 실수였다.

 이대로 본가에 가면, 밑바닥까지 탈탈 털릴 것은 안 봐도 비디오가 아닌가.

 "알았어요, 알았어. 가면 되잖아요."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을 어쩌랴. 결국 수긍을 해버린 나는 통화를 끝낸 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를 돌아보았다. 어째서인지 오소마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토록 열심히 읽고 있던 책은 그의 무릎 위에 엎어져 있었다.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 그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책을 펴들고 조금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뭐지, 방금 그 표정은?

 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반강제적 한국행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바로 내일 비행기라니, 너무 갑작스러운 것 아니야?"

 "사정이 좀 있어."

 "어쨌든 알았으니까 가서 짐 챙겨. 본가라고 해도 네 물건은 대부분 창고에 쌓여 있다면서. 일주일 동안 있다가 올 거면 여러가지로 필요할 것 아냐."

 "응, 미안한데 이따가 빨래 좀 대신 널어줘."

 좀 더 투덜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태연한 모습의 오소마츠를 뒤로한 채, 나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내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것은, 차갑고 어두운 복도 위를 걷던 중이었다.

 "근데……. 일주일 동안 있다 온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불과 몇 분 전의 일이라지만, 나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내가 오소마츠에게 전한 사실은 한국에 간다는 것, 내일 출발한다는 것, 그 두 가지 뿐. 일주일이라는 말은 통화할 때 말고는 꺼낸 적도 없었다.

 설마 알아들은 거…….

 그야 뭐,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한자 영향권의 언어다. 비슷한 발음으로 대충 알아들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일주일이나 잇슈칸(いっしゅうかん)이나 크게 다를 것 없은 없다. 어쩌면 통화를 할 때 그 점을 감안해야 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왠지 모를 피곤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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