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소마츠의 얼굴이 묘하게 불그스름하고 목소리가 조금 거칠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그가 감기로 병져 눕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틀 전 지하철을 탔을 때 누군가로부터 옮은 것 같다. 평소에 얼마나 면역력이 약하면 단 한 번으로 감기에 걸릴 수가 있을까. 나에게 일찍 다녀라, 끼니 거르지 마라 잔소리를 해대면서, 정작 자기 몸은 제대로 챙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언제나 능청스럽게 웃고 있으니 몸상태가 안 좋아지더라도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 그것이 나에게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가끔은 솔직하게 힘들다, 괴롭다, 아프다라는 말을 해줬으면 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나는 쵸로마츠가 내게 말을 해줄 때까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평소처럼 늦잠을 자느라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오소마츠, 들어갈게."

 나는 죽과 수저를 받치고 있는 쟁반을 한쪽 손으로 붙잡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언제나 여섯명이 사용하는 넓은 이불에, 오소마츠가 홀로 덩그러니 누워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다. 그제서야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작게 신음하며 눈을 떴다.

 "괜찮아? 죽 끓여왔는데 먹을 수 있겠어?"

 "먹을 수 있어─."

 조금 전까지 괴로워하고 있던 주제. 그는 나를 향해 어린아이처럼 웃어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편하게 양반다리를 하고서 나와 마주앉았다.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일부러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후우─. 후우─."

 아직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죽을 한 숟갈 떠서 살짝 식힌 다음 오소마츠에게 내밀자, 그가 아─ 하고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고는 머리를 쓸어넘기려는 척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것인지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는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음을 되찾았다.

 "너, 손이 차갑네."

 "별로… 오소마츠가 열이 나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 아니야?"

 오소마츠는 붙잡고 있던 내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대었다. 피부를 통해 전해져오는 뜨거움. 정말 뜨거운 열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까 설거지를 할 때 찬물에 계속 손을 담그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내 손에 감도는 한기를 느끼다가 천천히 내게서 멀어졌다. 그러나 꼭 잡은 손만은 놓지 않았다.

 "조금만 만져주라."

 "만져달라니, 어디를?"

 "네가 원하는 곳, 어디라도 상관없어."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조금 당황했지만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뜨거운 눈빛으로 날 탐색하고 있어… 야해─.♡"

 그럼 그렇지. 오소마츠의 능글맞은 말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또 당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딱히 이상한 생각 같은 거 안 했거든!"

 "농담이야, 농담─."

 "정말이지…"

 나는 슬슬 얼음주머니를 갈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죽을 한 숟갈 떠서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자, 아─."

 "아─."

 아픈 와중에도 내가 만든 음식을 행복한 듯이 먹고있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보니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후, 어째서인가 오소마츠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그냥, 우리는 항상 네가 환자고 내가 돌봐주는 입장이었잖아. 가끔은 그 반대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

 나는 과거에 내가 쓰러질 때 마다 오소마츠가 나를 돌봐주었던 수많은 나날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동시에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 말이 없는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오소마츠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니, 그 모습이 이전보다 더 사랑스럽고 안타까워 보였다.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오늘은 계속 상냥하게 대해주는 거야?"

 "물론이지. 그리고 뭐… 난 언제나 상냥하잖아."

 "평소의 2배, 3배로 응석부려도 되는 걸까나─?"

 오소마츠가 그렇다고 대답해달라는 듯이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나는 그가 원하는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기뻐하며 이불을 치우고 자리에 눕더니 내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빼앗아 쟁반으로 돌려놓았다.

 "죽 더 안 먹어?"

 "여기 누워봐."

 그는 옆으로 살짝 몸을 빼고서 빈자리를 탁탁 두드렸다.

 "왜? 내가 옆에 있어봤자 불편하기만 할 텐데."

 "얼른─."

 나는 그보다 얼음주머니를 갈아오겠다고 말하려다가 응석을 부려도 된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조용히 오소마츠의 옆에 누웠다. 그런데 오소마츠가 거긴 쵸로마츠의 자리니까 좀 더 가까이 오라면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다보니 그와 딱 붙은 채로 그의 팔을 베게 되었다. 아픈 사람의 팔을 벤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조금 떨어지려 했지만, 오소마츠가 나를 꼭 끌어안고 있는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붙어있는데 이불에서 오소마츠의 냄새가 나서 얼굴이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눈치채면 안 되는데, 그러기엔 그가 나를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매일 보고 있는 얼굴을 마치 내일이면 볼 수 없게 될 것처럼. 잠시도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네가 내꺼 된 것 같다?"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조심스레 몸을 틀어 그와 마주보고, 조금 전까지 그가 좋아했던 차가운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난 원래 네 거야, 바보야."

 "……."

 이미 뜨거운 열로 달아오른 얼굴이 더 붉어졌다. 조금 위험할 정도로 새빨갛게.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쓴웃음을 짓는 것으로 끝내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오빠 못 참는다구─? 못 참는달까,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버리는데 말이지──."

 나는 그가 인내하고 있음을 알고 먼저 그에게 다가가 어깨 위에 살며시 손을 얹으며 입을 맞추었다.

 "응…"

 기분이 몽롱해지는 달콤한 키스는 너무나도 짧게, 찰나의 순간처럼 끝이 났다.

 "아, 안 돼. 감기 옮잖아."

 오소마츠는 나를 떼어놓은 뒤 내 시선을 외면한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것 같았다.

 "상관없어, 그런 거… 감기는 금방 낫는걸."

 하지만 내 가슴의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오소마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좀 더… 키스하자…"

 단지 몸이 닿는 순간의 짜릿함을 원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어느때보다 자신이 오소마츠와 가까워졌다는 기분을 느꼈고, 그 순간만큼은 그와 내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눈으로 키스를 조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마음이 통했는지, 오소마츠가 내 어깨를 가볍게 짓누르며 내 몸에 올라탔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괴로운 듯 작게 신음하더니 이전처럼 숨을 한 번 고른 뒤 내 가슴 위로 쓰러졌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 안의 위태로이 흔들리는 욕망이, 피부를 타고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왔다.

 "너무하잖아… 내가 하지 못할 거란 거 알면서… 이렇게 불끈불끈하게 만들다니……."

 그의 목소리가 상당히 피곤하게 들려왔다. 나는 심장이 거칠게 뛰어대는 와중에도 문득 장난이 치고싶어져서 일부러 교태가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하면 안 되는 거야?"

 나의 그 한 마디는 다른 곳으로 빗겨가지 않고 곧장 오소마츠의 이성을 향해 날아가 깊이 박혔다. 그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렸기에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속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을 터였다.

 "일단 감기가 나아야지."

 그래도 끝까지 인내심을 잃지 않는 그가 기특해서, 나는 장난을 그만두기로 했다. 단 이것만 빼고.

 "치이…"

 "치이─? 걱정 마, 그때는 니가 싫다고 해도 할 거니까─."

 감기는 확실히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언제나 내 머릿꼭대기에 서있는 오소마츠이건만. 그는 내가 의도했던대로 일일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 문득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두 팔이 욱씬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뼈가 찌릿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는 그 아픔이 결코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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