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토토코에게서 LINE으로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까페에서 만나지 않겠냐는. 그녀는 두 손을 깍지 끼고서 테이블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은 채 나를 향해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왠지 그녀의 분위기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곤란한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나에게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평소에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는데, 얼마 전 함께 수다를 떨다가 나한테 우성오메가인 친구가 있다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너를 꼭 보고싶다고 해서." "에… 나, 낯을 가려서 그다지 어울리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내가 있잖아. 절대로 쓸쓸하지 않게 할게. 싫다면 하는 수 없지만…"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갈게.' 하고 대답했다. 토토코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고, 친구란 것은 많이 생길 수록 좋은 것이니까. "고마워! 그런데 말이야… 네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게 있어." "뭔데?" "그 친구들이 전원…" … … … 설마 전원 알파일 줄이야. "꺄아아─. 귀여워──." 알파는 유니크 다음으로 가장 희귀한 젠더라고, 인구의 15% 밖에 되지 않는다고,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건만.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지금 무려 다섯 명이나 되는 여성체 알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애당초 알파끼리 모여서 만든 모임이라고 하니 딱히 이상하다 할 것까지는 없지만, 과연 알파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나라도 이 상황은 당황스럽다. 당황스럽달까, 곤란하다. "냄새 좋다──." "ooo짱, 초면에 실례잖아─. 당황하고 있다구─?" "그치만─, 이 아이 페로몬 엄─청 강하고, 사과향도 살짝 나는 걸──. 뭐야─? 바디샴푸──?" "네, 네…" 페로몬은 그렇다 쳐도 어째서 내 샴푸냄새까지? 역시 알파의 후각은 대단하다. 이따금씩 무서울 정도로. "있잖아, 있잖아─. 우리 같이 드라이브 가지 않을래─? 가자, 가자─. 부탁이니까 조수석에 앉아줘──. 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어오면 정말 좋을 거야───." 어떡하지, 오늘 처음 만난 예쁜 여자들이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오니 쑥스러워 미칠 것 같다. 점점 넋이 빠져나간다. "저기… 내 친구는 향기나는 포푸리 같은 게 아니니까." 결국 토토코의 도움을 받아 벗어났다. 그러나 알파들의 관심은 여전히 내게 집중되어 있다. "미안─. 무심코 편하게 대해버렸네──. 실은 내 남자친구도 오메가거든──. 열성이라서 너보다는 냄새가 약하지만──." "무서웠어─? 우리들 갑자기 물거나 하지 않으니까 안심해──." "……." 할 수 있을 리가. … … … 나는 토토코의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서 도시의 외곽으로 나갔다. 푸른 녹음과 정겨운 비포장도로가 지평선 너머까지 쭉 펼쳐진 넓디넓은 평지였다. 우리는 전망이 좋은 곳에 차를 세웠다. 매트를 깔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토토코의 친구들이 내게 팔을 두르거나 내 손을 잡는 등 가벼운 스킨십을 해왔다. 그리고 그녀들은 매트 위에 앉을 때도 너나 할 것 없이 내 옆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저녁은 내가 살게. 됐지─?" "다음 쇼핑 전부 내가 낼 테니까 양보해─." "둘 다 그렇게 나오는 거야? 그럼 나는─…" "저기, 저… 그냥 토토코짱의 옆에 앉을게요." 도대체 내 옆자리가 뭐길래. 그녀들은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있잖아─. 아까 드라이브 어땠어─? 이번에 새로 뽑은 차인데 불편하지 않았어─?" "네…" "어디 가는 거 좋아해─? 내가 데려가줄게──." "우와, ooo짱 지금 대놓고 바람피우는 거야─? 애인 있으면서──." "그 녀석 최근 페로몬이 약해져서 좀 별로야." 내 왼쪽에는 토토코가 있다. 내 오른 편에는 무리중 옷차림이라던가 액세서리 등이 가장 화려해 보이는 그녀의 친구가 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냄새를 한 번 맡는 듯하더니 자세를 고쳐잡으며 '이 정도는 돼야 귀엽지──.' 하고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일본에는 왜 왔어──?" "친구 만나러요…" "흐응─. 그렇구나─. 애인은? 있어─?" "아… 아뇨…"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대답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토토코의 친구가 내게 바짝 다가와 앉아서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럼 나는 어때─? 난 외국인도 상관없는데──. 한국의 여자아이는 솔직해서 귀엽지───. 가끔 보여주는 까칠한 면도 좋고──." 그리고 그녀는 보석과도 같은 큐빅이 반짝이는 기다란 손톱으로 내 스카프를 슬쩍 들추며 또 한 번 내 냄새를 맡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마치 와인의 향을 음미하듯이. 물론 나는 그 모든 행위가 끝날 때까지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 그 뒤. "뭔가 여러가지 선물을 엄청나게 받아버렸는데." 옷, 스카프, 브로치, 화장품, 향수 등등. 나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을이 진 거리를 토토코와 나란히 걸었다. "내 친구들 어땠어?" "너무 적극적이어서 조금 놀랐지만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 "아까 했던 말들은 전부 농담이었으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응." 역시 농담이었던 건가. 하긴 그게 전부 진심이라면 정말 위험하지. "나는 네가 알파라는 젠더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오늘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안심이야." 편견이라. . . . 사실 오메가인 내가 알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토토코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고, 현재 내 BF는 어디까지나 알파인 그녀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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