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적이 드문 조금 후미진 길목에서 우연히 카라마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어느 담장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기에 잠시 기다려야겠다 싶어서 손을 내리고 몸을 숨겼다. 나를 보면 그의 성격상 담배 피우는 것을 포기하고 내게 걸어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카라마츠가 막 심지에 불을 붙이려 하는 찰나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토토코였다.
"피워도 돼." "됐다." 그녀는 담장 위에 걸터 앉아 아랫쪽의 카라마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꽤나 높은 곳이었는데, 담장 뒷쪽에 그녀가 발을 딛고 올라설만한 무언가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으니까 펴. 얼마 전에 러트가 끝나서 지쳐있을 거 아냐?" "레이디의 앞에서는 피우지 않는다." "여전히 매너가 훌륭하네. 나한테까지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가 아니다. 여자라면 누구든지 몸에 해로운 것을 ㅍ…" "이거라도 먹을래?" 토토코가 카라마츠에게 내민 것은 작은 막대사탕이었다. "애도 아니고…" "싫어?" "아니, 받아두도록 하지." 카라마츠는 토토코에게 사탕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토토코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부쉈어?" "응?" "방 말이야.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냐고." 토토코의 물음에,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남아나는 게 없었다." "치우느라 고생했겠네." "이제 그런 건 문제도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토토코는 다리를 다소곳이 모은 채로 가볍게 휘적거리던 발을 멈추고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너도 알파니까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지독한 열… 더러운 생각… 그로인한 미친 짓들." "글쎄, 카라마츠군이 열성치고 페로몬수치가 높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난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어." "……." 카라마츠는 줄곧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던 왼손을 꺼내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그의 손에는 지난 러트 때 생긴 상처가 있었고, 그로인해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는 내게 그 상처에 대해서 정신이 혼미할 때 어딘가에 부딪힌 것이라고 말했다. 설마하니 그것이 일부러 낸 상처라고는, 나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놀랍고,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가 없었다." "너무 그렇게 무리하지마.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현실…" "난 어렸을 때부터 카라마츠군을 봐왔으니까 잘 알아. 카라마츠군… 실은 그렇게 상냥한 사람 아니잖아. 자신이 짐승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연기하고 있는 것 뿐이잖아. 안 그래?" 카라마츠는 말없이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제 막 알파가 된 이치마츠도 인정했는데, 왜 넌 그렇게 못해? 자기혐오도 정도가 있지." "모두에게 미움받게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면 차라리 그 편이 낫지 않겠나." 카라마츠가 나지막이 말했다. 토토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알고 있어?" "?" "너희 집에 그녀가 살게 된 이후로 너의 자기혐오가 더 심해졌다는 거." "알고 있다." "난 네가 자기 감정과 알파로서의 욕구를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 돼." 그녀는 한쪽 다리를 살며시 들어서 담장에 발을 딛고 두 손으로 무릎을 감쌌다. "알파도 사람이고, 감정이 있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닿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카라마츠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끄러운 이야기다만… 난 어렸을 때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꿨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정말 진실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이야. 그런데… 얼마전 그녀와 엘레베이터에 갇히게 되었을 때 난…" 그는 붕대가 감긴 손으로 자신의 반대쪽 팔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무의식중의 행동인 것 같았다. "난 오로지 육체적인 쾌락만을 원하고 있었다. 물고 싶다, 범하고 싶다, 이 손으로 목을 졸라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그녀의 의사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내가 원하는대로,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고 싶었어. 그런 건 정상이 아니잖냐." "확실히…" 토토코는 담장 아래의 지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전부 더러운 욕구로 치부할 필요는 없어. 그중의 일부는 네 진심일 수도 있는 거야. 순수하게 상대방을 원하는 마음 말이야." "……." "뭐가 어쨌든 너는 그 지옥을 견뎌냈잖아. 그건 네가 상대방을 진심으로 소중히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지마, 카라마츠군." 카라마츠는 말없이 사념에 잠겨 있다가 눈썹을 찌푸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담배를 넣어두었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그가 꺼내든 것은 담배가 아닌… 막대사탕이었다. "푸훗!!! 잠깐, 왜 갑자기 그걸 꺼내는 거야?"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네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아하하하하하핫!!! 웃겨!!!" "시끄럽다. 누구 탓이냐." 토토코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웃음이 멈출 때까지 어깨를 들썩이다가 눈물을 닦으며 카라마츠를 돌아보았다. "하여간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여전히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토토코를 얄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카라마츠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고맙다." "아니, 별말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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