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저녁.
 거울 앞에 서서 새로 장만한 스커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에 만족한 듯이 웃다가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지난번 오소마츠와 계단을 오를 때 그가 앞서가던 여성의 보일듯 말듯한 하의를 보고서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일이 떠올랐다. 낯선 사람에 의해서도 미간을 찌푸릴 정도인데 내가 그런 차림을 한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떨까. 역시 오소마츠에게는 보이지 않는 편이 좋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웃음이 나왔다. 예뻐. 예뻐.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방의 문이 열렸다. 복도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하지만 낮에 토토코에게 들었던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다음에는, 곧 얼굴에서 당혹스러움을 지웠다. 그래. 오소마츠가 내 패션 같은 것에 간섭할 이유는. . . .

 "벗어."

 "뭐?"

 "벗으라고."

 성큼성큼, 그는 방안으로 걸어 들어와 나를 안쪽으로 몰아넣었다. 쿵─. 책상에 허리를 부딪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아픔을 호소했다. 불평을 할 새도 없이 몸이 휘청 하고 기우는가 하면, 나의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몸이 책상 위로 눕혀지는 순간 무심코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가슴이 콱 막혀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잠ㄲ… 뭐하는 거야…!"

 오소마츠는 스커트를 벗기기 위해 방해가 되는 내 다리를 붙잡아 자신의 뒤로 보내고는 내게 바짝 다가섰다. 그렇게 되니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다음의 방어수단인 내 손을 낚아채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아예 깍지를 껴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로 스커트의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너 미쳤어?!"

 나는 끝내 가슴속에 들끓고 있던 외침을 입밖에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이러고 어딜 나가려고? 응?"

 오소마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의 스커트를 다리로 끌어내렸다.

 "바람만 불어도 다 보이겠구만! 누구한테 보여줄 셈이야? 굶주린 알파놈들?"

 "그만해!"

 "벗어!"

 …

 …

 …

 결국 강제로 스커트를 벗고 헐렁한 바지로 갈아입게 된 나는 친구에게 속옷차림을 보였다는 것에 대한 수치와 그에 대한 모욕감으로 형제들의 방에서 모두와 밤참을 먹을 때 최대한 오소마츠와 떨어진 곳에 앉아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두 사람 사이에 맴도는 묘한 한기를 느꼈는지, 나머지 형제들은 하나같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형… 뭔가 나쁜 짓이라도 했어?" 토토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속삭였다.

 오소마츠는 태연하게 차를 홀짝이고는 '몰라' 하고, 얼어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보!!!"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

 …

 다음날 오소마츠에게 사과를 받긴 했지만, 그 날의 일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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