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쵸로마츠는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몇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새삼스럽지만 가히 놀라울 정도의 대단한 집중력이랄까. 대체로 쉬운 내용의 만화책도 조금 읽다보면 질리고 좀이 쑤시기 마련인데,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 두꺼운 비문학서적을 읽으면서도 그는 잠시도 자세가 흩트러지는 법이 없다. 언제나 같은 팔과 허리 목 등의 완벽한 각도가 조금 소름끼칠 정도. "으음……."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인가 다르다. 아까부터 책을 읽다가도 잠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조금 전처럼 작게 탄식을 하거나 하더니, 지금은 집게손가락으로 미간을 누르거나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있다. 어딘가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지친 것 같기도 하다. 몇 시간 씩이나 책을 읽으면 보통 피곤해지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쵸로마츠에 한해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은 일이다. "혹시 눈이 아파?" "응." "그만 쉬지 그래?" "이제 조금 남았거든. 결론이 궁금해서 도중에 끊을 수가 없어." 그가 책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는 입을 가리며 하품을 한다. 소설도 아니고 사전처럼 온갖 지식을 늘어놓은 비문학서적인데, 그것을 도중에 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쵸로마츠는 무엇이든지 똑부러지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어쩌면 그에게는 글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고민해야 하는 소설보다 글쓴이가 읽는이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비문학서적이 훨씬 쉽고 즐겁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 … … "부정의 부정은 변증법적 운동이 상향발전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법칙이다. 즉 A가 부정되면 그것은 B, C 그 밖에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하지 않고 비(非) A가 되고, 이 비 A가 재부정되면 다시 A'로 자기 복귀하는 것이다. 다시 회복된 A'는 A와 비 A를 지양한 것, 즉 양자의 긍정적인 것을 보존하여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A가 부정되고 그래서 비 A가 나오면……." 눈이 아프다면 내가 대신 봐줄게. 아니, 대신 읽어줄게. 그렇게 생각했지만 도대체가 이게 무슨 내용인지 쥐똥 만큼도 모르겠다. 분명 내가 읽고 있는데, 실제로 읽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 쵸로마츠 뿐이다. 그는 지금 내 무릎을 베고 누워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그만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 뭐가 재밌는 건지, 뭐에 흥미를 느끼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쵸로마츠가 나중에 나에게 너도 재밌었지? 라고 묻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후훗……." 진작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더니 어느덧 책을 읽는 목소리가 기계처럼 딱딱하게 들려온다. 쵸로마츠의 가벼운 웃음소리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책을 치우니, 아니나다를까 그가 웃고 있다. 왠지 모르게 온화하게 느껴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계속 읽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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