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겠습니다─.”

 이른 오후, 나는 장을 보러 가기 위해 현관의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그늘에서 벗어나 눈부신 백색의 햇살이 비추고 있는 길에 발을 내딛자 내 손과 발도 그 빛에 따라 하얗게 물들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얇은 카디건과 치맛자락이 물결을 그리며 나풀거리고, 발걸음이 굉장히 가벼웠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걸음을 딱 멈추었다. 바보같이, 장을 보는 데 가장 중요한 지갑을 집에 두고 온 것이었다. 그때 문득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의 진동이 울렸다. 액정에 비친 이름은 쵸로마츠. 나는 녹색의 통화버튼을 오른쪽으로 밀어서 전화를 받았다.

 「너 지갑 두고 갔잖아. 지금 어디야?」

 “이미 버스정류장 근처까지 와버렸는데……. 다시 돌아가야겠네.”

 「아니, 계속 가고 있어. 내가 가져다줄 테니까.」

 “에, 쵸로마츠가? 잠ㄲ…….”

 뚝─.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그와의 통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어느덧 홈화면으로 돌아온 액정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휴대전화기를 주머니에 돌려놓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의미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버스정류장과 집의 거리는 빠른 걸음걸이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 정도로, 멀다고 할 것까지는 없다지만 썩 가깝다고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다리고 있어’도 아니고 ‘계속 가고 있어’라니. 그렇게 한다면 그가 도착할 때 쯤 나는 이미 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어쨌든 쵸로마츠가 가라고 했으니 가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10분 쯤 지났을까.

 “어이, 거기 건망증 심한 아가씨.”

 “?!”

 나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마켓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왔을 리가 없는데, 거짓말처럼 그곳에 쵸로마츠가 있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온 쵸로마츠에게 지갑을 건네받은 뒤 그의 얼굴과 휴대전화기의 시간을 몇 번 번갈아 보다가 다시 멍해지고 말았다. 그를 눈앞에 두고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ㅊ쵸로마츠 발 엄청 빠르네…….”

 “뭘, 좀 더 노력했다면 5분은 더 빨리 왔을 거야.”

 그는 ‘가자’ 하고 웃으며 내 등을 두드리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기왕 따라 나온 것 나와 장을 보고 함께 돌아갈 요량인 듯했다. 그렇잖아도 짐이 무거워지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여전히 놀라움이 더 컸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있는 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는 쵸로마츠와 나란히 길을 걸으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육상부에 있었어. 난 체육에 그다지 흥미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것 만큼은 좋아했거든. 코치에게 제대로 훈련을 받아서 선수를 지향해보라는 말도 들었지만……. 글쎄, 형이 그만두고나서는 나도 별로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

 “오소마츠도 육상부였어?”

 “중학생 때까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로 갈라지고, 형이 반 강제로 선도부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더 이상 이어나갈 수가 없었어. 그렇게 싸움질을 하고 다녔으니, 학교 측에서 분명 불량아들을 단속하는데 이용하기 딱이라고 생각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반 강제라니, 너무해.”

 “뭐, 형도 아무 대가 없이 시키는대로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 대신 여러가지로 눈감아줬던 것 같아.”

 “그렇구나…….”

 적어도 내 앞에서 쵸로마츠는 언제나 여유롭게 다녔기 때문에 그의 발이 빠르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소마츠에 대해서도 그가 한때 싸움을 자주 했었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 설마하니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그렇게 형제들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을 하나 씩 알게 될 때 마다, 나는 그들에게 좀 더 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채로는 감히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들의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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