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로마츠, 지난번에 내줬던 숙제 해왔어."
"어디 보자." 이것은 내가 지난 날 쵸로마츠의 앞에서 문법을 틀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나는 쵸로마츠에게 왜 그렇게 일본어실력이 늘지 않느냐며 폭풍잔소리를 들었고, 그 날로 그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수준을 잔인하리 만큼 잘 알고 있는 쵸로마츠이기에, 그가 내준 숙제를 푸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조금 어려웠지만 오소마츠에게 몰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끝낼 수가 있었다. … … … 하지만 설마하니 받아쓰기까지 시킬 줄이야… 그것도 20장이나… 초등학생도 아닌데, 확실히 이건 조금 부끄럽다. "잘 썼네. 덕분에 글씨체도 좀 나아졌어." "그럼 합격?" "아니." 쵸로마츠는 종이뭉치에서 받아쓰기한 부분을 밑으로 내려보내고 자신이 내어주었던 문제를 위로 가져와 다시 한 번 슥 훑어보았다. "형이 도와준 거 다 알아. 어디서 잔머리를 굴려." 딱콩─! 그는 내 이마에 딱밤을 먹인 뒤 종이뭉치를 내게 돌려주고서 탁상 앞에 앉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오소마츠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역시 들켰어?" "형이 그러는 거 하나도 도움 안 돼. 알고 있지?" "그치만 불쌍하잖아─. 언제나 솰라솰라 말은 잘 해도 이제 겨우 N3정도 수준이라고, 그 녀석─. 너무 혹독하게 굴지마─."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확 들었다. 문득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느덧 내 옆으로 다가온 오소마츠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언어는 종이만 들여다보는 것보다 사람과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해.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좀 더 잘 해주자. 응─? 쵸로마츠─." "시끄러워. 이렇게 된 데는 형에게도 책임이 있어. 틀리면 지적하고, 고쳐줘야지. 언제까지 애교로 봐줄 거야? 방해할 거면 저리 가 있어!" "알았어, 알았어─. 나도 도울게─." 오소마츠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능청스레 말했다. 쵸로마츠는 못미더운 듯이 콧방귀를 뀌더니 자신이 새로 가져온 프린트물을 각자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내 것은 사지선다문제집이었고, 두 사람의 것은 그보다 글씨가 빼곡한 대본 같아 보였다. "중학교 국어 문제야. 네 수준에 맞게 조금 바꿨어." "……." 나는 일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두 사람의 손에 쥐고 있는 얇은 종이에 빛이 내려앉아 안쪽의 글씨가 살짝 비쳐보였다. 척 봐도 어려운 한자가 많았다. 물론 그것은 내 앞에 놓인 시험지도 마찬가지였다. JLPT로 따지면 N2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시작부터 겁을 먹으면 안 되지만, 도저히 자신감이 생겨나지 않았다. "이걸 읽어주면 되는 거야─? 간단하네─." "대충 할 생각 하지 말고 성우처럼 또박또박 읽어." "네, 네─." … … … "자, 시간 됐어. 채점할 테니까 이리줘." "응…" 문제는 총 20개. 처음 1~10번은 뭐, 나름 괜찮았다. 모르는 한자가 몇 개 나와서 당황스러웠지만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1번부터 20번까지는… 결과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고,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한 마디로 처참, 그 자체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시험지를 훑어본 뒤 쵸로마츠가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움찔─ 하고 말았다. "너, 내가 함정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아주 기가 막히게 걸려주었구나." 그는 잔소리를 하기 앞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반은 맞았네─. 이정도면 잘 한 거지, 뭐." 오소마츠가 탁상 위의 시험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엉뚱한 답에 체크를 해놓은 문제를 본 건지, 그는 슬그머니 입을 가리며 웃음을 내뱉었다. 결국 소꿉친구에게 마저 비웃음을 사버린 나는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자존심을 곧바로 회복하지 못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탁상 위에 널브러졌다. "있잖아, 쵸로마츠─. 난 역시 빠질래─. 도저히 이 녀석한테는 너처럼 엄하게 못 굴겠어." 오소마츠는 여전히 웃음기가 어린 얼굴로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정말이지…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고." 쵸로마츠가 이를 악 물며 중얼거렸다. 내 시험결과보다는 오소마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이거 내가 작성한 해설. 어려운 한자에는 요미가나를 써 놓았으니까 크게 어렵지 않을 거야." 그는 내게 새로운 프린트물을 건네주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풀었던 문제에 그가 직접 펜으로 적어놓은 요미가나가 눈에 띄었다. 친절하게 부연설명도 적혀 있었다. '누군가 이 정도로 신경써준다면 따로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될지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세심한 손길이 느껴졌다. "고마워.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할게." "당연하지. 난 내 친구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꼴 절대 못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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