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장마가 끝나고 다시 화창한 날씨로 돌아가는가 싶더니만 때아닌 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쓰르라미가 울어대지 않을 뿐, 이 정도면 여름이나 다름 없다. 모두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고, 나와 쵸로마츠만이 그동안 날씨를 핑계로 미뤄두었던 이불빨래를 하기 위해 뒷마당으로 나왔다.
미리 옷을 걷어붙이고 대야에 물이 차는 것을 기다린다. 그늘진 마루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한 마디씩 불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 벚꽃도 채 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더운 걸까. 어째서 하필이면 내가 가위바위보에서 진 걸까. 그런 와중에도 분홍의 잎이 점점 소복이 쌓여가서, 달콤쌉싸름한 향기가 괜스레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발 깨끗하게 씻었지?" "네가 하도 잔소리를 해서 백 번도 더 씻었어." "그럼 얼른 들어와." 첨벙거리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대야 안으로 들어간다. 발목에서 짜릿한 한기가 느껴진다. 차가움에 몸을 움츠리는 내 모습이 비눗물에 미끌어져 넘어질 뻔한 것 처럼 보였는지, 쵸로마츠가 내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붙잡고, 단단히 깍지를 낀다. 동시에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이 내딛는 힘에는 차이가 있다. 쵸로마츠가 이불을 밟을 때 마다 내 몸이 위로 쑥─ 솟아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이마에 땀이 흐르고, 아지랑이를 흩트리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문득 근처의 벚나무에서 꽃잎이 하르르 쏟아져내려 두사람의 머리와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러고보니 쵸로마츠와 똑바로 마주선 것은 처음인가. . . . 본디 키가 큰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고개를 뒤로 젖혀야지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쵸로마츠, 이거 봐. 비눗방울이야." "세제를 넣었으니까 당연히 비눗방울이 생기지." 가끔은 당연한 사실에도 실없이 웃어버리면 좋을 텐데. . . . 이 남자는 도무지 그러는 법이 없다.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매번 쵸크를 걸어대니 숨이 막힌다. 하지만 뭐, 그게 쵸로마츠의 성격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쵸로마츠는 쵸로마츠답게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당최 그의 그런 점이 싫었다면 지금과 같은 친구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 … … 이불을 다 밟고난 뒤 힘을 합쳐 대야를 들고 마당 한켠의 수돗가에 비눗물을 버린다. 이제 깨끗한 물로 헹군 다음 베란다에 널어놓기만 하면 된다. 쵸로마츠가 이불을 주물럭거려서 비눗물을 빼내는 동안, 호스를 손에 쥐고 물을 뿌린다. 그는 청결과 관련된 일에 언제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장난을 치고 싶어서 옆구리가 근질거린다. "쵸로마츠." 호스의 끝부분을 살짝 누르자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빠르게 뻗어나간다. "으앗!" 얼굴에 정면으로 쏠 생각은 없었는데─… 손이 미끌어졌다. "그새를 못 참고 또 장난질이야? 방해할 것 같으면 그냥 들어가 있어!" "쵸로마츠가 너무 열심히 하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너란 녀석은, 가사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모르고 있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결혼할 생각 있긴 해?" "열심히 했으니까 조금은 놀아도 되잖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쵸로마츠가 이렇게 눈썹을 찌푸리며 내게 쓴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몇 번은 빈정상하더라도 머지않아 속으로 흐뭇한 웃음을 지어버린다. 그와 알게 되고 나서 세상에 듣기 좋은 잔소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좀 더 곁에 있고 싶다고. . . . 무심코 생각해버린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