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가사일은 전부 끝냈고… 이제 남은 일은 손빨래 뿐인가.
며칠동안 옷장 안에 감춰놓았던 속옷이 들어있는 검은 파우치를 끌어안고서, 나는 빨래를 하기 위해 언제나와 같이 욕실로 향했다. 내 속옷은 그다지 비싼 것이 아니라서 굳이 손으로 빨 필요가 없지만 남자들로 가득한 집에서 생활하는 내게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오소마츠나 이치마츠가 세탁기 안이나 빨래통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내 속옷을 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집의 여성이라면 나 말고 아주머니도 계시지만 가족과 친구는 설령 함께 살고 있다고 해도 다르다. 그러니 이 정도의 수고는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 … … 똑똑똑─. "누구 있어?" 닫혀 있는 욕실의 문을 두드리자, 곧 대답이 돌아온다. "나 있는데. 왜?" 이것은 쵸로마츠의 목소리다. "손빨래 하려고 하는데, 오래 걸려?" "들어와." "에?" "들어오라고. 괜찮으니까." 괜찮다는 것은 볼일을 보는 중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러고보니 안쪽에서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문을 열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는 쵸로마츠의 모습이 보인다. 쵸로마츠도 손빨래중이었구나. "그거야?" "응?" "그거 빨거냐고." "아, 응. 그런데." "이리줘." "네?" "빨아줄 테니까 이리 달라고. 너 보나마나 대충 비누칠만 하고 물로 헹굴 거 아냐. 시작한 김에 해치우게." "돼, 됐어. 내가 할게." 손에 쥐고 있던 파우치를 꼭 끌어안으며 시선을 모로 돌린다. 이것이 남에게 보여도 괜찮은 세탁물이었다면, 구태여 검은 파우치 안에 넣어서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을 눈치 빠른 쵸로마츠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얼른 내놓으라는 듯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내 속옷을 보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설령 편한 친구사이라고 해도 부끄러운 것은 부끄럽다. 예전의 나였다면 딱히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날 쵸로마츠가 노크 후 바로 문을 여는 바람에 그에게 속옷차림을 보였던 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쵸로마츠를 어엿한 이성으로 보고 있고, 그런 내게는 그에 대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우리 사이에도 이성간의 묘한 긴장감 정도는 있는 것이다. 나는 결코 그 긴장감을 잃고 싶지 않다. 내 속옷을 아무렇지 않게 빨고 있는 쵸로마츠의 모습 같은 건 보고 싶지 않다. 입술을 잘근거리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노라면, 문득 쵸로마츠가 빨래를 멈추고 작게 한숨을 내쉰다. "내가 만지는 게 기분 나빠?" 역시 쵸로마츠는 이 파우치 안에 든 것이 속옷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딱히 쵸로마츠가 내 속옷을 보면서 이상한 상상 따위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입장을 바꾸어서 내가 쵸로마츠의 속옷을 빨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속옷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심코 쵸로마츠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무언가 내 앞에 휙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가슴이 허전해졌다. 쵸로마츠가 내 파우치를 가져갔다. "뭐, 뭐하는 거야!" "잔말 말고 나한테 맡겨." "싫어!" 자신의 속옷을 돌려받기 위해 파우치에 손을 뻗자 쵸로마츠가 홱 하고 손을 뒤로 뺀다. 어째서 내 물건을, 그것도 프라이버시가 담겨 있는 물건을 그가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설마……. "너는, 씻는 것 만큼이나 빨래도 더럽게 못한다고! 알아? 지난번에 봤던 네 속옷의 얼룩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아요, 당최!" 역시……. "그걸 줄곧 기억하고 있었어?" "그냥 기억하는 정도가 아냐! 매일매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밥을 먹을 때, 책을 읽을 때, 길을 걸을 때, 씻을 때, 청소를 할 때, 잠자리에 들 때 마다 떠오른다고!" "거짓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새것처럼 빨아줄게! 야한 생각 같은 거 안 해! 못 믿겠으면 이걸 전부 빤 뒤에 날 죽여도 좋아! 더는 못 참아!" "저기요!!! 경찰아저씨!!! 여기 결벽증환자가 있어요!!! 제 속옷을 멋대로 빨으려고 해요!!! 도와주세요!!!" 파우치의 지퍼를 열려고 하는 쵸로마츠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보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다. 그가 내 속옷을 꺼내 빨래판 위에 올려놓고는 손에 불이 나도록 비누칠을 해대기 시작한다. 혹시 냐짱의 은퇴에 대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건가. 그렇다고 해도 너무하다. 최근들어 쵸로마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원래부터 그렇긴 했지만, 이것은 애당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것 같다. 결벽이란 생각보다 무서운 거구나…….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