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잠깐 여기 앉아봐."
줄곧 TV를 보고 있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쵸로마츠가 불러세웠다. 평소보다 조금 더 좁혀진 미간, 단단히 팔짱을 낀 팔. 보아하니 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도 모른다. (…) 어쨌든 나는 발걸음을 돌려 그의 앞에 앉았다. 언제부터인가 쵸로마츠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자신의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개 그의 말을 들어서 나쁠 것은 없었기에 그것이 특별히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쵸로마츠는 어떠한 말을 꺼내기에 앞서 내가 걸치고 있던 카디건의 단추를 풀었다. 내가 흠칫 놀라며 쭈뼛거리는 동안에도 그의 손은 거침이 없었고, 머지않아 내 카디건을 확─ 하고 벌렸다. 얇은 카디건 안에 내가 입은 것은 소매가 없는 나시 뿐. 나는 무심코 두 손으로 자신의 맨살을 가렸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그것 조차 허락하지 않고 내 손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옷에 가려져 있던 상처를 찾아냈다. "그럼 그렇지. 제대로 약도 안 발랐구만." "……." 나는 쵸로마츠가 약상자를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흘러내린 옷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궁리를 했다. 내 몸에 상처가 있다는 걸 쵸로마츠가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그보다 어떻게 변명하면 좋을까. 그러나 찰나의 순간 고민을 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고, 한다고 해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와 더불어 형제들중에서 눈치가 가장 빠르다. 그와 동시에 결코 '내게 편한 쪽으로' 묵묵이 그냥 넘어가주는 타입의 남자가 아니다. (그건 카라마츠) 내가 부정하면 할 수록, 저항하면 할 수록, 그는 오히려 나를 더욱 엄하게 대할 것이다. "소독할 테니까 잠깐 소매 걷어 봐." "응…" 아무리 내가 둔하다고 해도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과 그것이 남긴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물릴 때도 아팠지만 그 뒤의 욱씬거림을 견디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사실, 진작 치료를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층에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약상자를 방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좀처럼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피가 굳었다가 다시 터지는 순간까지도 그저 보이지 않도록 가리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린 건 둘째치고 왜 피멍이 든 거야? 꼭 뭐에 얻어맞은 것 마냥…"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얼핏 질문처럼 들려왔지만 그저 쵸로마츠의 중얼거림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멍은 맞은 것이 아니라 부딪혀서 생긴 것이었다.) 그는 내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의 소독을 끝낸 뒤 밴드를 붙였다. 밴드는 반드시 물이 스며들지 않는 방수밴드를 사용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처가 곪을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치료라는 것은 아무래도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보니…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쵸로마츠에게 맡기는 편이 확실히 안심이 되었다. "아무리 봐도 형 혼자서 한 건 아닌데. 누구야?" "그, 그게…" 이번에는 중얼거림이 아니다. 확실한 질문이다. 알고 있었지만, 나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쵸로마츠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이치마츠지? 그 녀석 밖에 없어." 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 뒤 걷어올린 내 소매를 자신의 두손으로 직접 내려주었다. "카라마츠가 이런 짓을 할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덧붙일 때는 약간의 한기까지 느껴졌다. 나는 자신의 입으로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쵸로마츠가 소름끼칠 정도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 의사와 상관이 없는 상처라고 해도 그로인해 이치마츠가 쵸로마츠에게 폭풍잔소리를 듣거나 서로 말다툼을 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이치마츠는 내가 저항을 하면 도중에 멈춰주었을 것이다. 분명 오소마츠와 차별을 한다고 투덜거렸겠지만. "하여간 이 망할 알파들은 지들 욕구만 해소할 줄 알았지 언제나 뒤처리는 나 몰라라 한다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물린 다음 날에는 평소보다 훨씬 잘해주는 걸…"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쵸로마츠는 답답하다 못해 울화가 치민다는 듯이 고개를 모로 돌리며 실소를 터뜨렸다. "싫을 때는 싫다고 말해! 마지못해 받아주지 말고!" 언제나 잔소리를 하긴 해도 그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기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그 녀석들 너를 좋아하니까, 설령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네가 딱 잘라 거절하지 않는 이상 참지 못할 거야. 앞으로 이런 상처가 계속 늘어나겠지." "……." 실은… 실은 무서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물 때의 기쁜 듯한 두 남자와 물고난 뒤 편안해진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무서워졌다. 아직 지난 번의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았는데 또 물리는 건가… 이번에는 아프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싫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왜냐면… "미움받을까봐 그랬어?" 문득 쵸로마츠가 내게 물었다. "싫다고 하면 미움받을까봐 그랬냐고." 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바보녀석이라고 핀잔을 받으며 머리에 꿀밤을 맞았지만,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쵸로마츠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그 정도로 아무도 널 미워하지 않으니까 다음부터는 네가 원하는대로 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알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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