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도 저질렀구만.”

 방과후 쵸로마츠는 평소처럼 집으로 향하지 않고 온갖 상가가 즐비해 있는 거리로 나갔다. 약 한 시간 전 장남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수업 끝나면 잠깐 와줘. 형아가 사랑하는 거 알지?」

 거기엔 정확히 어디로 오라는 말이 쓰여있지 않았으나 쵸로마츠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형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과거에 그러한 일이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났었기에 그는 이미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으윽…….”

 높은 상가들을 지나 몇 번인가 모퉁이를 돌아가면 인적이 드문 후미진 골목이 나왔다. 거기서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쵸로마츠는 익숙하게 골목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문득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남자가 그의 발에 걸렸다. 그는 남자의 어깨를 발로 슬쩍 밀어내서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의 예상대로, 말이 아니게 쥐어터진 상태였다.

 “쵸로마츠가 있으니까 자꾸만 저질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버린단 말이지─.”

 “난 넌덜머리가 난다고 썩을 장남XX야.”

 골목 한편에는 누군가 바닥에 쌓아놓은 커다란 박스가 있었다. 쵸로마츠를 기다리고 있던 오소마츠는 그곳에 편하게 걸터앉은 채 동생에게 선물받았던 손수건으로 옷과 뺨 등에 묻은 피를 닦았다. 나중에 세탁하기 어려우니 대충이라도 닦아놓으라고 누군가에게 몇 번이나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쵸로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지나쳐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그 근처에 쌓여 있던 박스를 밟고 올라가, 높은 곳에 부착된 카메라를 능숙하게 해체하기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려오는가 하면 덮개가 바닥에 툭 떨어지고, 전선이 후두둑 끊어졌다.

 “쵸로마츠 나쁜아이네─.”

 “닥쳐. 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내 입장을 조금은 생각하라고. 난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날카롭게 쏘아붙인 쵸로마츠는 손에 쥐고 있던 드라이버를 주머니에 돌려놓은 뒤 가볍게 뛰어서 지면에 착지했다. 그는 카메라를 발로 짓이겨 완전히 부숴뜨렸고, 바닥에 뒹굴고 있는 남자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그가 남자의 머리털을 쥐고서 고개를 들어올리게 하자 남자의 입에서 ‘으윽’ 하고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 한심한 형을 대신해서 사과할게. 오늘 일 입다물어주지 않을래?”

 남자는 눈덩이가 새빨갛게 부어올라서 쵸로마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전신의 뼈와 살이 욱씬거리는 듯한 통증에 그의 말도 뒷부분만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그는 얼굴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겨우 눈을 떴고, 아까 자신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쵸로마츠를 오소마츠와 착각한 것이었다. 그는 불어터진 입술로 ‘응…’ 하고 힘겹게 대답하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황이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가 시선을 잠시 모로 돌렸다가 다시 쵸로마츠에게 향했을 때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남자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 쵸로마츠가 그의 머리털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는 다시 신음소리를 내뱉는 남자의 얼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

 “하…?”

 “방금 대답, 거짓말이지? 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꼰질러서 정학 먹게 해주마!’라고 생각하고 있지?”

 남자는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쵸로마츠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고, 겁에 질려 더 이상 그에게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움직이지도 못했다.

 “난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도 질릴 만큼 예민했어. 누군가 내게 거짓말을 하면 싫어도 알아차리게 됐지. 그런 일이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사람의 검은 속내가 보일 때 마다 헛구역질이 나와. 상대방을 속였다고 생각하며 오만하게 웃는 그 모습이 저쪽 하수구 안에서 흐르고 있는 물보다 더럽다고 생각한다고. 알아들어?”

 퍽─!!! 쵸로마츠가 주먹을 휘두르자 남자는 고개가 홱 꺾였다가 바닥에 고여 있던 흙탕물에 얼굴을 처박았다.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오소마츠는 ‘우와…’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형제로서, 파트너로서 동생의 돌변을 몇 번이고 봐온 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번 속으로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다고 생각했다. 싸움을 싫어하는 쵸로마츠는 웬만해서는 주먹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 만큼은 자신의 형제라 해도 가차가 없었다.

 쵸로마츠는 남자의 머리털을 다시 움켜쥐고 그가 자신을 바라보도록 했다.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이하라 고등학교 1학년 A-3 스즈무라 에리카. 네 여동생이지?”

 남자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두 눈을 번뜩 떴다. 이윽고 쵸로마츠가 말을 이었다.

 “함부러 입을 나불거렸다간 평범한 학교생활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줄 테니까, 잘- 생각해.”

 …

 …

 …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잡한 중심가 한복판에서, 손수건으로 피를 깨끗하게 닦은 오소마츠와 말끔한 교복차림의 쵸로마츠는 어느덧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게 하교를 하는 남학생들이 되어 있었다. 오소마츠는 뒤늦게 소매의 단추가 떨어진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 하고 탄식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자신과 나란히 걸으며 딱딱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쵸로마츠의 어깨에 능청스레 팔을 두르며 그에게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네놈부터 죽일 거야.”

 쵸로마츠의 목소리는 상당히 차가웠지만 그것이 평상시 그의 모습임을 알고 있는 오소마츠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그의 팔을 탁탁 두드렸다.

 “아까 그 녀석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형네 학교 신문부에 친구가 있어. 웬만한 녀석들의 정보는 녀석에게 물어보면 돼.”

 “그래서 아까 녀석들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던 거구나. 혹시 일부러 친해진 거야? 우리 학교 녀석이랑.”

 “중학교 때부터 아무데서나 주먹털고 다니던 형이 혼자 떨어져 있으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어차피 말해도 안 들어쳐먹을 거고, 내 나름대로 수를 쓴 거야. 간단한 정보만 있으면 저런 바보녀석들 입다물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무서워─. 완전히 조직폭력배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이 사람─. 형아 동생이 위험한 길로 빠질까 봐 걱정 되는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두르고 있던 팔을 거두고 두 손을 가슴앞으로 모으며 말하자, 쵸로마츠는 무언가 빠직 하고 끊어진 것처럼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홱 돌아보았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네놈이 성실하게 공부하고 사고 안 치면 나한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엄마가 학교에 불려나가서 허리굽혀 사과하셔야 정신차릴래?!”

 “그치만 어제 저녁 먹을 때 토도마츠가 한 말 너도 들었잖아. 녀석들이 자꾸 괴롭혀서 최근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형은 그렇게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애도 아닌데 알아서 하겠지! 이번 일로 문제가 더 커질지 어떻게 알아?”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련다─. 뭐가 어찌 되든 간에 나는 내 동생을 괴롭힌 녀석들을 패주기만 하면 돼─.”

 “야 이 망할 장남XX야─!!! 사람 말을 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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