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로마츠, 뭐해?”
시간은 많은데 딱히 할 일은 없고. 별 생각 없이 형제들의 방으로 향했다. 모두 1층에 내려가 있는지, 방에는 쵸로마츠 한 사람 뿐이었다. 그는 탁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그 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쵸로마츠가 그렇게 흩트러진 자세를 취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기에,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눈썹을 찌푸린 채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커다란 책이 펼쳐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언가 알 수 없는 기호와 숫자들이 빼곡이 적힌 문제집이었다. “뭐야, 그거?” “고교수학.” 나는 수학이라는 말에 일단 인상부터 찡그리고는 지독한 냄새를 맡은 것처럼 저도 모르게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짚었다. 구리다. 확실히 수학이란 나에게 있어서 구린 과목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숫자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그것을 티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어째서 고교수학 문제를 풀고 있어?” “서점에 갔다가 오랜만에 펼쳐보았더니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뭐야. 충격을 받아서 그대로 사와 버렸어. 그렇잖아도 점점 머리가 굳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쵸로마츠는 객관식 문제의 답을 선택하는 부분을 샤프펜의 끄트머리로 툭툭 두드리며 이전보다 눈썹을 더욱 강하게 찌푸렸다. 그가 고민하는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이번에 그는 고민을 하면서 유독 더 답답한 듯한, 상당히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부분 풀렸는데, 하나가 죽어도 기억이 안 나. 분명 별 것 아닌 공식일 텐데.” “헤에…….” 나는 쵸로마츠에게 살며시 기대어 그가 풀고 있는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풀 수 없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다못해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방의 문이 열렸고, 쵸로마츠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까지 1층에서 tv를 보고 있던 오소마츠였다. 그는 내가 그랬듯이 ‘뭐해?’ 하고 물으며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바닥에 앉았다. 그 순간 어째서인가 쵸로마츠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는 듯했다. “고교수학이잖아? 이걸 왜 풀고 있는 거야?” “한 번쯤은 다시 보지 않으면 잊어버리잖아. 형은 상관 마.” “…….” 오소마츠는 조금 전의 나와 똑같은 질문을 했을 뿐인데, 이번에 쵸로마츠의 대답은 왠지 조금 날카로웠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가 아닌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인 듯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린 채 문제집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오소마츠는 묘한 표정으로 그런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정적이 맴도는 방안에 쵸로마츠가 책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후. 줄곧 말이 없던 오소마츠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냥 해답지 보지 그래. 그 다음부터 직접 풀면 되잖아.” “시끄러워! 방해되니까 저리가!” “…….”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이상하리 만큼 날카로운 반응에도 여전히 무덤덤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무덤덤한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면서 그의 입꼬리가 위태로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조용했던 방안에 그의 웃음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핫─! 쵸로마츠, 쵸로마츠으─…” 그는 배꼽을 붙잡고 웃다가 그것으로 모자라 손바닥으로 바닥을 탁탁 내리쳤다. 이에 참고 있던 분노가 폭발한 듯 쵸로마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멱살을 홱 낚아챘다. “죽어, 썩을 장남─! 똥꼬털 불타버려─!” 나는 그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치만 네가─… 너무─… 아, 정말─, 내 동생 진짜 귀여워──.” 오소마츠는 연신 웃음을 삼켜가며 말하고는 숨을 쉬기가 곤란해진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어떻게든 심호흡을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다시 웃음이 터져나오는 바람에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가뜩이나 괴로운데 쵸로마츠가 멱살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으니, 그대로 두었다간 아예 숨이 넘어가버릴 것 같았다. “자, 형이 그때 가르쳐줬었잖아─… 으헉!” “닥쳐─! 네 도움 따위 필요없으니까─!!!” “또 그런다, 또─. 괜찮아─. 형이니까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우으으으으으으──!!!” 쵸로마츠는 뭔가 트라우마라도 일어난 듯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서 필사적으로 분노를 억눌렀다. 보아하니 그러한 상황이 예전부터 빈번히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오소마츠가 웃음을 그치고 쵸로마츠가 진정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문을 알게 되었다. 고교시절, 쵸로마츠는 언제나 형제들중에서 성적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수학점수만은 단 한 번도 오소마츠보다 높았던 적이 없었다. 항상 평균선을 웃도는 오소마츠가 어째서인가 수학에만은 강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고 매번 자기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오니, 쵸로마츠로서는 분할 수 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는 그것을 알면서도 매번 능청스럽게 다가와서는 형이 가르쳐주겠다는 둥 모르겠으면 해답지를 보라는 둥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러한 기억 때문에 오소마츠가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사정을 알게 된 나는 얄쌍한 눈으로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내 눈은 분명 재수없는 놈이라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소마츠는 화가 난 쵸로마츠를 상대하느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싫으면 이녀석에게 물어봐. 그럼 되잖아.” 오소마츠가 내 쪽을 돌아보기에,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그 문제 풀 줄 몰라.” “에… 그래?” 그제서야 분위기를 파악한 오소마츠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은근슬쩍 내 시선을 피했다. 쵸로마츠는 말 없이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눈동자를 모로 굴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너희 둘 다 이과였나보구나.” 내 말에 쵸로마츠가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다른 형제들은?” “우리 빼고는 전부 문과였어.” 이번에는 오소마츠가 대답했다. 그는 어느덧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토도마츠가 사회, 역사, 영어 같은 인문학계열 과목을 좋아했고, 이치마츠는 문학부인가 하는 동아리에 들어갈 정도로 그쪽에 관심이 많았거든. 요즘에는 그다지 책을 읽지 않는 것 같지만.” 그의 말대로, 나는 이치마츠가 독서를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다른 형제들이 모두 책을 좋아하는데 이치마츠만 그렇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그는 형제들이 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그다지 원치 않는다 해도 그냥 따를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내 안에 또 하나의 의문점이 생겨났다. 하지만 구태여 두 사람에게 그것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소마츠 넌 어떻게 매번 수학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었던 거야?” 그다지 탐탁치 않았지만 궁금한 것은 참을 수 없었기에, 나는 조금 전과 같이 얄쌍한 눈으로 오소마츠를 쳐다보며 그에게 물었다. “음…….” 그는 시선을 모로 돌리며 잠시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수학은 시험범위에 들어가는 공식을 몇 개 외우는 거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잖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 순간 나는 자신의 얼굴에서 모든 인간의 감정이 깨끗이 증발하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나와 함께 오소마츠의 말을 듣고 있던 쵸로마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소마츠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당황하면서도 어색하게나마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왜 그렇게 나를 노려보는 거야?” “…….”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쵸로마츠가 입을 떼는 순간, 그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밟아! 뜨거운 맛을 보여줘!” 쿠당탕─. “다시는 그 잔망스러운 입을 함부로 나불거리지 못하게 해주마, 썩을 장남!” “자, 잠ㄲ?! 이럴 거면 물어보지를 말던가! 기, 기다려! 점잖은 쵸로마츠씨? 귀여운 아가씨? 아픕니다만? 그 이상 했다간 형아 죽을지도 모릅니다만? 커헉!!! 자, 자… 잘못했어요!!!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찍은 게 전부 답이었습니다!!! 전 수학의 ㅅ자도 모릅니다!!! 그만둬어어어어!!!” … … …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과 명예를 스스로 깎아내릴 수 있는 존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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