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페로몬수치를 기록하는 일은 단지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메가 개개인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알파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병원을 찾아왔다.

 …

 …

 …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한손에 서류를 들고 자신의 책상 앞에 앉은 의사는 펜으로 그래프를 가리키며 내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매번 보는 광경이라곤 하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별 수 없었다. 검사결과는 자신의 안정적인 생활과 바로 직결되기 때문에.

 "혹시 자택에 알파인 분이 계십니까?"

 "4명 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의사가 두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매일 백 명도 넘는 환자를 진료하는 그에게도 내 경우는 꽤나 놀랄 만한 일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많이… 계십니까? 아직 각인하지 않으셨지요?" 그는 놀란 얼굴 그대로 실소를 내뱉었다.

 "네."

 오메가가 알파와 산다는 것은 보통 각인을 한 경우 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되는 알파와 함께 살고 있는 내가 용감해 보일 수도,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분간 알파의 젠더를 가진 분들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 좋겠다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그건 무리가 있겠군요."

 "아무래도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까요…"

 의사는 펜끝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잠시 생각을 고르는 듯하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히트싸이클기간이 아닐 때는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좋으니, 함께 살고 계신 분들께 협조를 구하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검진이라고 해봤자, 실제로 하는 일이라곤 간단한 설문조사와 주사로 피를 빼는 일 밖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검사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지독한 피곤함을 느꼈다.

 "하아─…"

 커다란 건물을 빠져나오며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노라면, 문득 귀에 익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라? 우연이네. 너도 건강검진 받으러 왔어?"

 "쵸로마츠!"

 아침부터 어딘가 분주히 나가는 것을 보긴 했지만. . . . 줄곧 나와 같은 병원에 있었던 건가.

 검사결과가 좋지 않아서 기분이 우울했는데, 쵸로마츠의 얼굴을 보니 입가에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방금 전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데. 무슨 일이야?"

 "페로몬수치가 평소보다 조금 높게 나왔어."

 "그래? 큰일이네. 조금 있으면 오소마츠형의 러트고, 얼마 후면 카라마츠, 또 얼마 후면 이치마츠인데."

 "……."

 이 정도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려나.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달까, 실소가 터져나온다.

 최근 세 사람의 러트주기가 이런 식으로 맞물리게 되는 바람에, 조금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알파들에게는 더욱 괴롭겠지만 이럴 바에는 차라리 동시에 시작했다가 동시에 끝나는 편이 낫다. 그 기간 동안은 다른 장소로 피해 있으면 되니까.

 커다란 폭풍이 지나갔다 싶으면 또다른 폭풍이 불어오고, 또다른 폭풍이 불어오고… 그러한 생활에 내성이 생긴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분명 버티지 못할 것이다.

 "쵸로마츠는 어때?"

 "나?"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 병원 근처의 벤치에 앉아 조금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는 더운 날 고생했다며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최근 아침이 괴롭고 잠을 푹 자고 일어나도 계속 피곤해서… 건강검진을 받는 김에 그것에 대해 물어봤어.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신경이 예민해져 있으면 우리의 몸은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게 되어 있다고, 당분간 안정을 취하래."

 "뭔가 고민이라도 있어?"

 "고민이라면 언제나 있지. 하지만…"

 그는 무릎 위에 두 팔을 다소곳이 내려놓은 채 정면보다 조금 아래쪽에 시선을 두고, 그대로 사념에 잠겼다. 문득 그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려 바닥으로 뚝, 하고 떨어졌다.

 "왠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가 뭔가 도울 수 있는 일 없을까?" 나는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농담을 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쵸로마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넌 형이나 잘 챙겨. 요즘 냄새 때문에 힘든 모양이던데."

 "나는 두 사람다 걱정하고 있어. 쵸로마츠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인걸."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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