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를 위한 변명을 조금 하자면 절대로 그런 욕구가 쌓여 있었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사일을 끝낸 뒤 지루함의 극치를 달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문득 작은 DVD케이스가 눈에 들어왔을 뿐. 그저 사소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 DVD라도 보지 않으면 대낮부터 하릴없이 잠을 자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

 모두 외출을 하고 나 혼자 집에 남게 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기에 이 참에 조금 봐두어도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정말, 정말, 그 뿐이었다. 내가 브라운관에 비치는 영상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누군가 집에 돌아와서 방의 문을 열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나는 이치마츠 같이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 따위에 조금도 흥미가 없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카라마츠가 내 당황한 표정의 얼굴과 브라운관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되돌렸을 때, 그때는 그냥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뭐, 여자도 사람이고, AV정도는 볼 수 있다. 남자만 되고 여자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말이 좋아 평등이지, 여자라서 더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미지관리 따위 모르는 나도 그동안 카라마츠의 앞에서 만큼은 나름대로 조숙하게 행동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인 척 했었는데! 그러한 내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카라마츠, 분명 놀랐겠지. 나한테 실망했겠지. 응, 그럴 거야. 틀림없이 그럴 거야. 카라마츠는 그런 여자가 이상형이잖아. 굉장히 여성스럽고, 온화하고, 조신하고… 하여간 기품있는 걸 좋아하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나 지금 무슨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야. 아, 정말 모르겠다.

 앞으로 카라마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빤히 그려진다. 그의 성격상 아마 “미, 미안하다!” 하면서 문을 닫아버리겠지. 아니면 아무것도 못본 척 그냥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장소를 떠나거나. 어느 쪽도 부끄러운 것은 마찬지다. 그런데…….

 “AV 보는 중이었나. 괜찮다면 같이 봐도 될까?”

 “에.”

 “실은 전부터 궁금했었다. 여자들은 남자의 어떤 부분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지. 그걸 보면 조금은 공부가 되겠지.”

 그가 너무나도 태연하게 방안으로 걸어들어와 내 옆에 앉는다. 평소와 같이 편안하게 팔짱을 끼고서 브라운관을 쳐다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너무 예상 밖이라서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 됐는지 모르겠다. 츳코미를 걸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얼 진짜로 같이 보고 있는 거야, 나는. 카라마츠잖아. 오소마츠도 아니고, 이치마츠도 아니고, 카라마츠잖아. 이성친구와 이런 건 이상하잖아. 어떻게 생각해도 상식 밖이잖아. 일단 자기자신에게 츳코미를 걸어야 한다고!!!

 태초의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한 아담과 이브가 침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여자는 베개를 베고서 누워 있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다리맡에 앉아 있다. 남자가 여자의 다리를 휘어잡아 그녀의 허벅지에 다정하게 뺨을 부비적거린다. 마치 실제 연인처럼 자연스럽다. 이윽고 남자는 ‘예뻐…’ 그렇게 속삭이며 살며시 뺨을 떼고 같은 자리에 키스를 한다. 그러자 내 곁에서 들려오는 카라마츠의 목소리.

 “그런가. 다리에 키스하는 게 좋은 건가.”

 무얼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걸까, 이 남자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

 “저기, 시스터.”

 “응?”

 “여자들은 역시 그… MAIN보다 SUB가 긴 편이 좋은가?”

 “SUB…?”

 “조금 전과 같은, 키스라던가.”

 아아, 애무를 말하는 건가. 그래도 여자인 나를 조금은 의식해주는구나……. 이제와서이지만…….

 “글쎄, 그건 사람 마다 다르지 않을까?”

 “너는 어떠냐?”

 “나는 SUB가 긴 편이 좋아… 응… 아무래도 그 쪽이 좀 더… 뭐랄까… 사랑받는 기분이 들거든.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가.”

 물어봤으니 일단 대답은 했는데, 어째서 즐거운 듯이 싱글벙글 웃는 거야. 누가 보면 평범하게 일상대화를 하고 있는 줄 알겠네.

 “하지만 정말 프레퍼레이션이 길군─. 15분째 키스만 하고 있다니.”

 프레…는 뭐야. 그냥 평범하게 애무라고 말해. 이제 정말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렇게 돌려 말하는 게 더 부끄럽다고.

 “남자들 것은 달라?”

 그 와중에 궁금한 건 바로바로 물어보는 나도 참…….

 “뭐, 그렇지. 우리가 AV를 보는 건 대체로 클라이막스를 보기 위해서니까.”

 잠ㄲ… 굳이 손가락을 O과 I모양으로 만들어서 그런 민망한 제스츄어를 취하지 않아도 뭘 ‘클라이막스’라고 하는 건지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준비가 길어지면 남자와 여자가 침대 위에서 사이좋게 노닥거리는 걸 구경하는 거나 다름없잖냐. 그럴 바에는 그냥 TV에 나오는 멜로영화를 한 편 보는 게 낫지.”

 묘하게 설득력 있어!!! 적어도 딴지를 걸 수 있게 해달라고!!! 점점 동화되어 가잖아!!!

 카라마츠를 돌아보며 속으로 외치는 찰나 TV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추세웠다.

 “오, 드디어 시작하는 건가.”

 여자가 남자의 목에 팔을 두르자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곧 하나가 될 거야’ 라던가, ‘아프겠지만 엄청 기쁠 테니까’ 라던가, ‘나를 전부 받아줬구나’, ‘정말 행복해’, ‘사랑해’ 등등(얼굴이 폭발할 것 같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난 한참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사랑해 같은 진지한 말을 꺼내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만, 여자들은 그게 좋은 건가?”

 카라마츠가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묻는다. 그 부분에 대해서 분명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말 좋아한다면 아무래도 그렇겠지.”

 덕분에 꽤나 침착하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질문은 내게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고 나를 당황시켰다.

 “남자들의 AV에 나오는 ‘좀 더-’, ‘깊숙이-’ 같은 것과 같은 맥락인 거냐? 상대방을 부추기기 위한…”

 달라!!! 비슷한 작용을 할지는 몰라도 결코 같은 게 아냐!!! 여자는 몸보다 마음으로 상대방을 느낀다고!!! 사람 마다 정도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후자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 말야!!! …라고, 이번에는 정말 육성으로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고 있으면 할말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실제 관계중에는 그다지 말할 여유가 없다고 들었다만, 역시 AV배우는 프로군.”

 더 이상은 무리……. 이번에야 말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자……. 어차피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왠지 점점 격렬해지는 것 같은데. 겉으로는 상냥한 것을 원하는 척하지만 실은 거친 게 좋다던가?”

 “아니, 처음에는 상냥하게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남자는 조금 와일드한 면이 있어야 더 매력적으로 보이니까 AV에서 그렇게 연출하는 것 뿐이지.”

 “과연.”

 아아……. 정말 평범하게 대화를 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건 이상하다고,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머리가 아팠는데, 다 내려놓고 보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그보다 카라마츠가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왠지 내 안의 카라마츠에 대한 젠틀맨이미지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너는 아까부터 왜 눈을 가리고 있는 거냐?”

 카라마츠의 말에 움찔- 하고 고개를 들어 무심코 그를 바라본다. 브라운관을 향해있어야 할 카라마츠의 시선이 어째서인가 내 쪽을 향해 있다. 여전히 웃고 있지만, 이전의 싱글벙글한 웃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부끄럽나?”

 그의 목소리도, 돌연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제 그의 웃음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평소보다 선명하게 빛나는 그의 검은 눈동자에 ‘짓궂음’이라는 감정이 비치고 있다. 설마……. 아까부터 내게 이것저것 계속 무언가를 물어봤던 게 일부러였던 건가!!!

 “내 눈을 보면서 말해봐라.”

 카라마츠가 나를 향해 앉아 반대쪽 소파등받이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그대로 내 시야를 가리며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옆에 있을 때도 위험했는데 정면으로, 그것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귀까지 빨갛게 돼서는… 더는 숨기는 의미가 없잖냐.”

 뜨겁게 달아오른 뺨에 카라마츠의 차가운 손이 닿아온다. 그 차가움에 눈을 떠보니 그의 멋드러진 목과 쇄골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선을 조금 높은 곳으로 옮기면 그의 빨간 입술이 보인다. 곤란한데, 위험한데, 그가 씨익 웃으니 하얗고 깨끗한 치아가 금새 내 눈길을 끈다. 짙은 긴장감이 주변을 애워싸고 있지만 어째서인가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듯한, 달콤한 기분이 든다. 깨닫고보니 얼굴 뿐만 아니라 전신이 뜨겁다. AV를 보고 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녹아내릴 듯이 열이 난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격렬한 고동은 이제 아무래도 좋다. 이 묘하게 짜릿한 괴로움으로부터 얼른 벗어나고 싶다.

 “괜찮으니까 얼굴을 보여줘.”

 다시 눈을 질끈 감으니 곧 소파가 삐걱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카라마츠의 향수냄새로, 그가 내게 더욱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라마츠가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긴다. 아마 자신이 원하는대로 내 얼굴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도 모르게 눈을 뜨니 그의 얼굴이 보인다.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는 그의 눈이 보인다. 내가 시선을 피하면, 그의 시선도 나를 따라온다. 그렇게 몇 번인가 더 나를 쫓더니, 그가 내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슥 쓸어넘기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말한다.

 “난 이만 나가볼 테니까 마저 보도록 해라. 무심코 장난끼가 발동해서… 미안했다.”

 누군가 미안했다라고 말할 때는 그 사람에게 화를 내도 괜찮은 거겠지. 나도 원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흩트러진 소매를 만져서 다시 반듯하게 만드는 카라마츠의 모습을 보고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가 방을 나간 후에도, 작은 한탄 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리모콘을 집어서 TV를 껐을 뿐.

 조용한 방에 홀로 남아 무릎을 끌어안으니 서서히 열기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내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어대고, 그 소리가 마치 시곗바늘의 소리처럼 내 주변으로 울려 퍼진다.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더 크게 들려온다. 역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걸까. 이 소란이 저절로 잦아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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