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을 때도 이따금씩 곤란한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 … … 몸살기운인지 아침부터 머리가 멍하고 온몸에 기운이 쫙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입맛이 없어서 식사도 걸렀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당으로 나가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쌔한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조금만 더 하면 돼 하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옷가지를 땅에 내팽겨치고 서둘러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지럽다. 시야가 흐릿하다. 속이 메스껍다. 역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방으로 돌아가 누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은 다음 문턱을 넘으려는데, 마음만 앞설 뿐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순간 사고가 정지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째서인가 나는 자신의 방에 누워 있었다. 몸이 뜨겁고 전신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문득 머리맡에서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양동이를 가져다 수건에 물을 적시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토도마츠였다. 내게 히트싸이클이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외출중이었고, 아직 돌아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고개를 돌아보았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티셔츠의 색깔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파란색. . . . "카라마츠?!"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무언가 나의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두통이 밀려오더니 또 한번 눈앞이 캄캄해지며 사고가 멈추었다. 몸이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열기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뒤늦게 상황파악을 해보니, 집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나와 카라마츠 뿐. 그 밖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숨이 멎을 만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요동을 쳐댔다. "현관에 쓰러져 있던 너를 발견하고 여기로 옮겼다. 토도마츠에게 전화해서 얘기했으니… 곧 돌아올 거다." 평소보다 낮고, 거칠고, 갈라지는 목소리에서 극도의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굳이 어두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눈앞의 남자가 필사적으로 인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에서 위협을 느꼈다던가, 무서웠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불안했다. 지난번 카라마츠와 엘레베이터에 갇힌 상태에서 그에게 러트가 왔을 때는 내가 맑은 정신이었고, 그를 믿었기에 괜찮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달랐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말을 입에 담을지, 어떤 추저분한 짓을 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저리가…" 나는 무심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 대한 불안감이었고, 나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러나 카라마츠의 눈에는 그것이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조금 아픈 듯한,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마음이 아팠다. "하는 수 없잖냐. 지금 집에는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안 돼… 가까이 오지마…" 정신과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그토록 우습게 느껴질 때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몸은 개의치 않고 눈앞의 남자에게 거친 손길과 짜릿한 쾌감을 애원하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 끈적하고 불쾌한 느낌이 드는 순간 자괴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숨을 수 없다면 차라리 증기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넌 지금 도움이 필요해. 열을 내리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거다. 차가운 수건을 얹어줄 테니… 얼른 누워라." 카라마츠는 괴로워하면서도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나의 팔을 붙잡았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그를 붙잡아두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았다. "안 돼…! 이거 놔…!"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카라마츠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그가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를 강제로 이불 위에 눕혔다. 이불 위라 해도 등이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에는 상체에서 꽤나 큰 충격이 느껴졌다. "그러고 있으면 냄새만 더 날 뿐이야… 얌전히 있어…" 그는 숨을 꾹 삼켰다가 토해내더니 그것 마저 괴롭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 식은땀이 맺힌 이마, 매마른 입술 등이 그의 위태로운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내 한 번 더 저항하자, 이전보다 더욱 강한 힘이 나의 팔을 죄어왔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문득 머리맡에서 탄식에 가까운, 약간의 회의가 담긴, 실소가 들려왔다. "어째서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거냐? 너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언제나 자기 자신이 우선이군." 나는 금방이라도 그릇 밖으로 넘쳐흐를 것만 같은 감정과 욕구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카라마츠와 마주보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가 상체를 숙여 내게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고, 내 목에 바짝 붙어서 그 위에 뜨거운 숨결을 떨어뜨렸다. "생각해봐… 난 언제라도 널 물 수 있었어….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 찢길 듯한 정막, 그리고 어둠속.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한 사람의 것은 거칠지만 일관적이고 무게감이 실려 있는 반면, 한 사람의 것은 들숨과 날숨이 불규칙하고, 가벼우며, 커다란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나는 왜 그토록 참았던 걸까? 널 좋아하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서? 아니, 이건 그런 양심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 세상의 알파란 녀석들이 왜 하나 같이 자신이 월등하게 뛰어난 존재라도 되는 것 마냥 우습게 떠들어대는지, 넌 그 이유를 알고 있냐?" "우리는 사실 평범한 인간에 못 미치는… 그저 끝내주게 냄새를 잘 맡는 짐승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다른 무리를 힘으로 옭아매려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거지." 그는 괴로운 듯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의 두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이건 욕심이다.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몇번이고 너에게 자신을 믿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내게 실망했다고 해도 좋아… 중요한 건 내가 널 해치지 않는다는 거야.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아." "그러니 날 믿어라… 내가 널 도울 수 있게 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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