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스스로 읽지 않고?"
"오늘까지 읽고 반납해야 하는데 어제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했더니 눈이 욱씬욱씬 아파서 집중을 못 하겠어. 겨우 120p 남은 걸 또 빌리기도 그렇고…" "곤란하다면 좀 더 빨리 말하지 그랬냐. 이리 와서 앉아라." 내가 옆으로 다가가자, 카라마츠는 곧 그와 반대방향으로 다리를 바꿔꼬았다.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언제나 볼 수 있는 소소한 배려였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디보자… 여기까지 읽은 거냐?"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었던 부분은 그보다 뒷쪽이었지만, 카라마츠의 곁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시침을 떼기로 했다. 그는 평소보다 부드러운 톤으로 이따금씩 인물의 대사나 묘사부분에 감정을 실으며 빠르게, 하지만 리드미컬하게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것은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온갖 정적인 이미지들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주었고, 나로하여금 점점 결말에 가까워져가는 이야기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했다. … … … "아침 햇살에 취한 사람처럼 일리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해변에 당도해 보니 어떤 남자가 물가를 따라 걷고 있었다.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일리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그가 거기에 있었다. . . ." 나는 이야기가 끝난 뒤 여운에 잠겨서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가 내 얼굴 앞에 손을 흔들어 보여도, 가슴이 먹먹해서 좀처럼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보통 로맨스소설을 삼류로 보고 나 역시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여태껏 느껴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었다. 책이 훌륭한 건지 아니면 카라마츠의 목소리와 연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 기분은 한편의 낭만적인 꿈을 꾼 것 같았다. "카라마츠… 라디오DJ라던가, 내레이션 전문 성우라던가, 그런 거 해볼 생각 없어?" "글쎄, 미래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너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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