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공원에 들렀다. 혼자지만 이렇게나 시끌벅적하고, 짐도 많지 않으니 괜찮겠지. 여름내내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따스한 햇살이 쌀쌀한 가을에는 새삼 소중하게 느껴져서, 사람들은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밖으로 나온다. 사실 오늘은 나도 딱히 살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바람을 좀 쐴 겸 해서 마켓에 다녀온 것이었다.
장을 본 물건들이 들어있는 봉투를 뒤적거려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캔커피를 꺼내 마신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디 푸른 쪽빛의 맑은 하늘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나로 하여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카라마츠의 색…….” 그렇게, 자신의 입으로 중얼거리고도 조금 당황스럽다. 여태껏 나는 단 한 번도 혼자 있을 때 돌연 카라마츠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예전부터 내 마음속에는 항상 알파인 그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좋아하게 되고나서도, 아니,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웬만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게 나를 위한 것임과 동시에 그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카라마츠를 지나치게 의식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 모습이 그의 눈에 어떤 식으로 비추었을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하다. “시스터.” “왓…” 가만히 사념에 잠겨 있노라면 문득 누군가의 차가운 손이 뺨에 닿아온다. 내 주변에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뭐,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카라마츠가 벤치 뒤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고개를 젖혀 그의 얼굴을 보다가 순간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생각에 다시 정면을 향한다.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어느덧 앞으로 돌아나온 카라마츠가 내 옆에 앉는다. ‘고민이 있다면 들어주마’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웃음이 언제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가끔은 설레기도 하고, 가끔은 위험할 정도로 심장이 크게 뛰기도 하지만, 뭐, 지금은 솔직하게 말해도 상관없겠지. “카라마츠를 생각했어. 오늘 하늘이 카라마츠의 색이니까.” 그는 내 말을 듣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금 놀라는 듯하다가도 곧 평소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런가.” 봉투 안에서 캔커피를 하나 더 꺼내 건네주자, 그도 커피를 마시며 주변의 풍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나도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 “왜?” 카라마츠는 뭐든지 파란색이니까 그렇다 쳐도, 내게는 오늘과 같은 날 나를 떠올릴 만한 것이 없다. 가을이면 단풍이 빨갛게,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드니까 오소마츠나 쥬시마츠를 떠올릴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딱히 특정 색을 좋아하거나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두드러지는 특징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유 같은 건 없다. 너는 내 색의 하늘을 봐야지만 내가 떠오를지 몰라도 나는 아니거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점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캔을 기울였다. “카라마츠는 가끔 내 생각 해?” 내가 지금 뭘 물어보는 거지……. 괜스레 또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댄다. “아니.” “…….” “항상 생각한다.” “…….” 일부러 뜸을 들여 말하다니, 위험하다. “처음엔 네게 미움받는 게 싫어서 될 수 있는대로 상냥하게 굴어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그게 지금은 훨씬 무거운 것이 되어 버렸다. 상냥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감정이다.” 두근거림이 괴롭다. 그런데 이 대사, 어딘가에서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뭐야, 그거 지난번에 연습했던 대본의 대사잖아.” “그렇다만,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무리 연습을 생활화해야 한다지만 갑자기 그런……. 멋대로 착각해서……. 나도 참 바보 같다……. “원한다면 진짜를 들려주마.” “…….” “진짜 대사도 여기 있다.” 그가 시선을 정면에 향한 채 캔을 기울인다. 무심하게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왠지 모르게 진지함이 느껴진다. 정말, 위험하다. “듣고싶나?” “…….” 위험……. 위험하다……. “나중에…….” 이 지경에 이르면 제대로 호흡을 할 수가 없다. 뜨거운 열 때문에 머리가 멍해져서 무심코 숨을 참아버린다. “나중에 들을게.”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지금은 궁금해도 참자……. “알았다.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외워두고 있으마.” 공원 한켠의 분수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가 다시 캔을 기울인다. 문득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휘날린다. 그를 보고, 하늘을 본다. 쪽빛의, 정말 깨끗한 쪽빛의 하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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