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과거에든지 미래에든지 언젠가 한 번쯤 겪게 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홀로 방에 앉아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갑자기 바닥이 좌우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몸도 그 흔들림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였다.

 "아아악!!!"

 그때까지 지진이라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재난영화를 볼때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공황이 아닌, 현실로서 내게 닥쳐온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렇게 반쯤 넋을 놓고 있던 나는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괜찮은가, 시스터?"

 "카라마츠…"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지, 그는 허리에 앞치마를 맨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앉았다. 듬직한 팔이 몸을 감싸왔고, 그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즈음 잠시 잦아드는가 싶었던 지진이 다시 강해졌다. 나는 '어어…' 하고 카라마츠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안심해라. 아까 올라오면서 속보를 봤는데, 이번 것은 그다지…"

 "어떡하지? 책상 밑에 들어가야 하나? 뭔가 머리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내 떨리는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나와 달리 그다지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금방 지나갈 테니 걱정 말고 얌전히 있어라."

 "응…"

 그로부터 잠시후, 바닥의 흔들림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괜찮은 것 같군."

 카라마츠는 자신의 품에서 나를 살며시 떼어내고 내 안색을 살폈다.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며 내 손이 그의 파란색 셔츠를 타고 스르륵 흘러내렸다.

 "많이 놀랐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안 놀랐어?"

 "나도 놀랐다. 지진이 아니라 너 때문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집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니까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잖냐."

 그의 손이 떨어지고, 늘어났던 볼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나… 이런 건 처음이라서…"

 이윽고 그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그래도 바로 대처하는 법을 떠올리더군. 훌륭하다."

 그가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냐?"

 "침착한 모습의 카라마츠, 멋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무심코 봐버렸다고 하면 될 것을. 괜히 본심을 말해서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 정도의 지진은 어렸을 때부터 수차례 겪었으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는 또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엄청 의지가 됐어."

 넓은 어깨에, 단단한 팔로 감싸주고 있었으니까. 처음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함이 나중에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말했던 대로, 가만히 있으면 지진이든 무엇이든 금방 지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그가 곁에 없었더라면, 나는 우왕좌왕 하다가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부딪혀서 다쳤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전처럼 침착하게 대처법을 떠올릴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다행이군."

 내 정수리에 머물러 있던 카라마츠의 손이 천천히 흘러내려, 이번에는 뒤통수를 감쌌다. 문득 나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이 멈추는가 하면, 그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나와 이마를 맞대었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다시 천천히 내게서 멀어졌다.

 "배고프지 않나? 적당히 먹을 것을 만들었으니까 괜찮으면 밑으로 내려와라."

 "응."

 마지막 카라마츠의 그 행동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날 계속 고민을 해봤지만 이렇다할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 마저, 단지 나를 안심시켜주기 위한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그러한 안도감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두려움이라기에는 너무 약하고, 설렘이라기에는 너무 강한 떨림. 나는 그것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날이 저물었지만 그 떨림은 계속 내 가슴에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 밤은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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