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이 밝아 잠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오후가 될 때까지 집에서 내 나름대로의 일을 했다. 거기서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그래, 조금은 의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나는 카라마츠가 러트중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경우에는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때가 많지만, 카라마츠는 아직 페로몬이 불안정해서 솔직히 위험하다. 그래서 러트가 오기 전에는 누가 되었든지 간에 내게 반드시 미리 얘기를 해준다. 절대로, 절대로 녀석이(자신이) 있는 방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나도 그것을 줄곧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단지 그러한 상황에 일일이 동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스스로에게도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며 두려움과 불안함 등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생동안 모든 일이 원만하게 흘러간다면 애당초 사람은 두려움 따위를 느끼지 않는다. 그날 내가 세탁물을 가지고서 세탁실의 문을 열었을 때, 카라마츠는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진 좁은 공간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줄곧 방에 있다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내 방과 최대한 떨어지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가 그곳에 이르게 된 모양이었다. 쾅─. 그 후의 기억은 드문드문 까맣게 먹이 칠해져 있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야, 심장이 곤두박질을 칠 만큼 놀랐으니 무리도 아니다. 카라마츠는 나를 키가 낮은 드럼세탁기 위에 쓰러뜨리고는 내 목을 강하게 졸랐다. 내게 그의 안색을 살펴볼 여유 따위는 없었지만, 그는 분명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손에 힘이 더해질 때 마다 나는 기침을 토해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오소마츠가 상황을 정리해줄 때까지, 그 찰나의 순간에, 의식이 점점 멀어져가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이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대로 1분, 아니 30초만 더 있었다면 나는 분명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카라마츠.” 그로부터 며칠 뒤, 모든 인체의 시스템이 그러하듯이, 페로몬수치가 정점을 찍었다가 서서히 내려오면서 카라마츠의 상태는 점점 나아졌다. 하지만 그는 그날의 충격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고 단 한 걸음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치마츠는 자업자득이라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초췌해진 카라마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온종일 그를 걱정했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간단한 요깃거리를 만들어서 그의 방앞에 서 있었다. “들어갈게.” 앞서 그런 일을 당하고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아직 그의 러트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으니, 나는 또 그때와 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르게 카라마츠가 그러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그는 어두운 방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그는 나를 피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 어째서… 오, 오지 마라… 부탁이니까…!!!” 나는 내가 카라마츠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줄곧 고민해왔다. 딱히 그가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부터 그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나라는 존재가 그에게 얼마나 성가신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소마츠와 이치마츠의 이빨에 수차례 물리면서 알게 되었다. 반드시 목이 아니여도 된다. 단지 무는 행위만으로도 알파를 진정시킬 수 있다. 몸에 상처가 늘어나는 것은 싫지만 카라마츠를 위해서라면 그정도는 참을 수 있다. 아니, 한 집에 살고 있는 이상 참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에 참는 쪽은 카라마츠가 아닌 내 쪽일 뿐이다. 언제나 내가 카라마츠를 괴롭혀왔으니 불만 따위는 없다. 가끔은 그를 쉬게 해주지 않으면. 지독하고 끈질긴 유혹으로부터 해방시켜주지 않으면. 그런 생각이 점점 커져서 어느덧 내 안에 깊이 자리를 잡았다. 오소마츠에게도 이치마츠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유독 카라마츠에게 그러한 마음이 더 컸다. 카라마츠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인내를 해왔지만 그것에 대해서 내게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타인을 위한 양심이 아니라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신의 욕심이라고 말했지만, 사람으로서 단지 그러한 감정만으로 그 오랜시간을 견뎌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카라마츠는 상냥하니까, 분명 나를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카라마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나를 물어도 된다고. “후회할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해?” “자신의 일이니까 알 수 있다. 그런 짓을 했다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 네가 원하지 않을 때도 아마 개의치 않고 널 물겠지. 그게 자신을 얼마나 편안하게 하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말야. 널 고생시킬 바에는 그런 기분은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낫다.” “…….” 그는 나를 외면한 채 내게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있었다.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이다. 나는 카라마츠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에게 바짝 다가가서 그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위로하고,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카라마츠는 이를 악 물고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좁혀진 거리 만큼,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만큼, 그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머지않아 그의 두 팔이 나를 감싸고, 강한 힘이 나를 죄어왔다. 그 순간 나는 카라마츠가 곧 내 어깨에 자신의 날카로운 이빨을 찔러넣을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의 왼쪽 어깨에 그의 뜨거운 숨결이 떨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심코 카라마츠의 옷깃을 꽉 움켜쥐니 전신에 긴장이 바짝 들어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것을 느꼈는지, 카라마츠가 내게서 조금 멀어졌다. “역시 됐다…….” “왜 그래?” “됐으니까 혼자 있게 해줘…….”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됐다고 몇 번을 말하냐!!! 돌아가!!!” “…….” 그는 여전히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 나를 보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무섭고 나 또한 괴로웠지만, 나는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피했다간, 고개를 떨어뜨렸다간, 그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건……. 정말 짐승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오소마츠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잖냐. 네가 나 때문에 희생할 이유 같은 건 없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나는 여기 있지 않아.” “…….” “카라마츠를 위해서라면 난 괜찮아.” “안 된다. 형님을 볼 면목이 없어져…….” 그의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과 그의 붉어진 눈시울로 카라마츠가 얼마나 인내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나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카라마츠를 내버려둘 수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려웠고, 아픈 건 싫었다. 러트중에는 알파의 이빨이 평소보다 훨씬 커지고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나는 두려운 만큼이나 불안했다. 카라마츠가 앞으로 계속 나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사실 그것은 이미 어느정도 진행되어 있는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내 냄새가 자신의 이성을 자극해올 때 마다 눈썹을 찌푸렸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오소마츠가 방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는 내 뒤에 멈추어서서 카라마츠를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오른팔로 내 등을 감싸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한 번 부탁해도 될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곧 이해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뒤에서 나를 살며시 감싸안으며 내 옷을 끌어내려 어깨가 드러나도록 했다. “형님……. 지금 대체 무슨…….” “물어.” “하?” “이대로는 안 돼. 너도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잖아.” “나, 난 이런 짓 못…….” “나는 뭐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할 만큼 싫다고!!! 하지만 현실을 봐!!! 너 언제 또 이성이 끊길지 모르잖아!!! 그렇게 되면 가장 가까이 있는 이녀석이 위험해질 게 뻔하잖아!!! 닥치고 물어!!! 이렇게 하고도 참지 못하면 그때야말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패줄 테니까!!!” 카라마츠는 괴로운 눈빛으로 내 어깨를 보더니 고개를 모로 돌려 나를 외면했다. 하지만 나는 곧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인내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시선 다시 내게 돌아왔을 때 그가 내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미안……. 미안하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허리를 감싸오는 것이 느껴지는가 하면 카라마츠가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오소마츠에게 기대어 그의 셔츠를 꽉 움켜쥐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것으로 카라마츠가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은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오소마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오소마츠가 내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난 계속 네 옆에 있을 거니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그는 조심스런 손길로 내 얼굴이 자신을 향하도록 한 뒤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은 부드럽고 차가웠지만 그 안의 감각은 매우 날카롭고 뜨거웠다. 부드러움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가 하면, 혀의 매끄러움에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한 데 뒤섞여, 어지롭고도 몽롱했다. 그러나 카라마츠의 이빨이 가장 깊숙한 곳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자신이 꽤나 무모한 생각을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라마츠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어준 것이 딱히 후회되지는 않았지만 무심코 비명을 질렀을 만큼 그가 주는 아픔이 생각이상으로 컸기 때문이었다. 오소마츠가 뒤에서 나를 안아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 아픔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카라마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을 수도, 그대로 정신을 잃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그날 저녁 카라마츠는 안정을 되찾았고, 평소의 상냥한 남자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카라마츠를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째서인가 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카라마츠가 이전의 그와는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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