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모든 풍경이 따뜻한 붉은색으로 물들어도 가을의 저녁은 서늘하다. 오늘도 그 서늘함과 어울리는 파란색의 셔츠를 입은 카라마츠는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지금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마치 자신의 계절을 만난 듯이, 여름이 끝날 적부터 그의 얼굴은 생기가 넘쳐보인다. 다른 형제들이 그렇듯이 그도 본래 책읽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에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책은 평소보다 훨씬 두껍다.

 “그렇게 생각하나?”

 “응. 혹시 이런 말 한 사람 내가 처음이야?”

 “아아… 특이하다는 말은 몇 번인가 들었지만 예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남자의 이름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남자이름이 예쁘면 안 된다는 법 있나. 난 그래도 딱히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피식 웃음을 내뱉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카라마츠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운다. 갖잖은 상상력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지나간 과거가 신경쓰일까나. 적어도 카라마츠에 관해서는 그런 것 같다.

 “이름에 대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기… 예전에… 내가 카라마츠에게만 ‘군'을 붙이면서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거 말야… 서운하지 않았어?”

 “사람을 어떻게 부르건 그건 네 자유인데 서운함을 느껴서 어쩌겠냐.”

 “미안해.”

 “됐다.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너와 나란히 앉아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잖냐. 네가 그대로 계속 내게 마음을 닫고 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에는 나도 그다지 자신이 없거든. 상대방이 내게 두려움을 느끼는 오메가라면 더욱 그렇지. 넌 줄곧 나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줬다. 나는 그런 너에게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고, 시스터.”

 오, 신이시여───. 죄많은 인간으로 태어나 어쩜 이리도 상냥할 수 있는지. 그는 평소와 똑같이 말하고 있을 뿐인데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린다. 설마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평범하게 속이 좁고 평범하게 이기적인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럴 리 없다는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역시 카라마츠에게는 이것이 ‘평범’인 걸까? 그렇게 받아들이면 일일이 나를 동요시키는 이 울렁거림이 사라질까?

 “앞으로 너에게 이렇게 불릴 날이 그다지 남지 않았으니 '좀 더 일찍 호칭을 바꾸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은 든다만.”

 “…….”

 막연하게 설레임이라고 생각했던 울렁거림이 잦아들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신물처럼 올라온다. 확실히 우리는 언젠가 헤어지게 된다. 그야, 친구사이니까. 정말 편한 친구사이라면 이별을 생각하면서 새삼 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새삼 카라마츠가 내게 평범한 친구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분명 보고 싶고, 그립고, 가슴이 아프겠지. 하지만 나는 카라마츠와의 이별이 ‘그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를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카라마츠.”

 “?”

 “카라마츠, 카라마츠, 카라마츠…….”

 “아니, 아쉬운 기분이 든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계속 불러주지 않아도 된다.”

 그가 하하핫-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낡은 물건에 남은 자국처럼 내 몸에도 이 손길의 익숙함이 남아 있다. 그 만큼 가슴이 뭉클해진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야.”

 카라마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왜 그가 의아함을 느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설마 내가 자신과 떨어지게 되어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네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되는 건 나도 싫어. 그러니까 부를 수 있을 때 실컷 불러두려고.”

 내가 그동안 노력해왔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모르는 건지……. 아무런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사람의 복잡한 감정이 타인에게 제대로 전해질 리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터무니 없는 믿음에 의지를 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상냥하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하지만 이제와서 깨닫고보니 그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나에 대한 앙금이 있었다. 내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아마도 진심이겠지만, 그것은 별개의 감정이다. 내가 아무리 따뜻한 기분을 전하든 그 기분은 분명 카라마츠의 안에서 차갑게 식어버릴 것이다. 내가 그를 경계하는 동안 그 안에 쌓이고 쌓여온 앙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