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앞으로 성우를 목표로 노력해보려고 한다.”
“성우인가… 카라마츠에게 잘 어울리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연기해야 하는 거니까 쉽지 않겠다.” “그래서 매일 대본을 읽으며 연습하고 있다. 오디션처럼 정해진 대본 없이 어떠한 주제를 정해두고서 즉흥적으로 하기도 하고.” “즉흥연기도 가능한 거야? 대단해…” “말 나온 김에 네가 주제를 하나 던져주지 않겠나. 여기서 바로 연기해보겠다.” “저, 정말? 음…” 연기라는 건 인물의 성격에 관계없이 언제든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 하는 법. 여기서는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서, 평소의 카라마츠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말해보자. 그 편이 더 재밌고, 연습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음… 음… 얀데레는 어때?” “얀데레?” 지난번에도 한 번 카라마츠의 연기를 본 적이 있어서, 그라면 내가 어떤 주제를 던져도 무리없이 소화해낼 거라 믿는다. 하지만 역시, 이제 막 입문을 한 그에게 얀데레 같은 극단적인 성격의 인물은 상당히 벅찰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흔한 캐릭터도 아니고, 평범한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조금 더 숙련도를 높인 후에……. “해보겠다.” “에?” 조금 긴장되는 듯한,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내게 주먹을 쥐어보인다. 정말 하는 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곧 그의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연기가 시작된 것이다.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성우라 해도 감정이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그들은 연기를 하면서 실제 표정도 바꾸고, 제스츄어를 하기도 한다. 지금 카라마츠도 발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그의 눈이 나를 보고,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상대역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럼 상황을 봐서 이따금씩 대사를 맞받아쳐주도록 할까. #01 “Honey? 이제 아침이다. 어서 일어나서 밥 먹어라.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잔뜩 만들었으니까.” “지금 몇 시?” “AM5:00다만.” “아침 먹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아? 그보다 어째서 당신이 만든 거야? 내가 하겠다고 했잖아. 일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Honey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너는 내가 밥을 해주지 않으면 근처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하잖냐. 어디서 어떤 녀석이 뭘하다 와서 만들었는지 모르는 그런 더러운 것을 네가 먹게할 수는 없다. 너란 녀석은 길에서 나눠주는 음료나 과자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고 말이야. 정말 조심성이 없으니까. 너는 내가 만든 것만 먹으면 된다. 그 밖의 음식이 네 입에 들어가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 설령 너 자신이 만든 거라고 해도 말이야.” “아, 알았어…” “오늘 아침도 맛있게 먹어주길 바란다. 점심은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 이따 데워 먹어라.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저녁 먹지 말고, 만들지도 마. 알았지? Honey?” “…….” #02 「Honey? 지금 어디에 있지?」 “어디에 있냐니… 집인데…” 「역시 화장실에 있는 건가? 한 시간째 거기서 뭐하는 거냐?」 “손빨래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내가 여기 한 시간이나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Honey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걱정했다고? 혹시 또 바깥에 나가서 멋대로 누군가를 만나고,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야.」 “보이지 않았다니… 그건… 당연한 거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Honey, 그보다 좋은 뉴스가 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스케쥴이 다음으로 미뤄져서 집에 일찍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2시간 뒤면 Honey와 만날 수 있다고! 그때까지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오늘은 밤새도록 너를 품에 안고 놔주지 않을 거다.」 “모처럼이니까 바깥에 나가지 않을래? 가끔은 바람을 쐬는 것도…” 「Honey는 나와 단둘이 있는 게 싫은 걸까나?」 “에…” 「그렇잖냐. 나는 Honey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매일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너는 툭하면 외식이 하고 싶다던가, 까페에 가고 싶다던가, 영화를 보고 싶다던가, 그런 말을 하면서 바깥에 나가려고 해. 마치 어떻게든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두 사람만의 생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다.」 “다, 달라. 바깥에 나가려는 것 뿐이지, 난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카라마츠와 함께 있고 싶어.” 「그게 어떻게 마찬가지일 수가 있지?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Honey를 쳐다본다고? 네 얼굴을 보고, 너와 말을 섞고, 어쩌면 또 어깨가 스칠지 모른다고? Honey는 내 Honey인데!!! 나 외에 아무도 만질 수 없는데 말야!!! 그런 걸 내게 보게 하는 건 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아아?!!!」 “아… 알았어… 오늘도… 지… 집에… 있자…” 「좋아, 착한 아이다. Honey가 내 마음을 이해해줘서 다행이야. 너의 그런 상냥함도 정말 사랑한다.」 “그럼… 이따 보자…” 「아아. 오늘 기대하고 있겠다. Honey.」 #03 “다녀왔습니다─. Honey─? Honey─? 어째서 이렇게 조용하지? 달려나와서 반겨주지 않는 거냐? 남편이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너무하는군. 숨바꼭질이라도 할 셈─? 정말이지 귀엽다니까, 허니는─.” “하아─… 무거웠다… 어라, 당신 벌써 왔어?” “Honey… 어딜 갔다 오는 거지?” “아랫층에 택배를 맡기고 갔다는 문자를 받아서 그걸 가지러 갔다 왔어. 갔더니 왠지 엄청 친절해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먹을 걸 주지 뭐야. 앞으로는 이웃들과 자주 소통해야겠…” “이리 내.” “에?” “이리 내놓으라고. 버리게.” “뭐, 뭐하는 거야!” “분명 말했을 텐데? 내가 만든 것 외의 음식이 Honey의 입으로 들어가는 건 용서할 수 없다고. 게다가 아래층이라면 젊은 남자 혼자서 살고 있다. 그녀석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했나? 앞으로 잘 지내자며 웃는 얼굴을 보였나? 나만의… 내 전부인 그 얼굴을… 그런 역겨운 자식에게 아무렇지 않게 보였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너는.” “커헉! 지… 진정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같은 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 놔 줘…” “앞으로 2주간 외출금지다. 그렇게 알고, 집에서 얌전히 반성해라.” “…….” “확실하게 말해두겠다만, 내가 없는 사이에 몰래- 는 불가능한 일이니 쓸데없는 잔머리는 굴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또다시 바보처럼 굴면… 그땐 정말 진심으로 화낼 테니까.” “응…” #04 “Honey, 이제 밤이다. 캄캄하고 고요해서 너 외의 성가신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너와 나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자,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사랑을 나누자.” “아… 잠깐… 전화가…” “Honey는 정말 짓궂군. 내가 이렇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데 다른 것에 한눈을 팔고. 안기기 전에는 꺼놓으라고 말했을 텐데?” “미안… 이… 이렇게 될줄 몰랐으니까…” “몰랐다? 그 말은 즉 내게 안기는 것 따위는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는 거로군? 나는 단 1초도 쉬지 않고 널 생각하고, 널 원했는데 말야. 아무래도 Honey의 머릿속은 내가 아닌 다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다.” “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하! 너희들은 정말 일생 나를 괴롭힐 셈인가보군. 잊을만 하면 내 삶에 비집고 들어와서는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Honey, 네 입으로 직접 말해봐라. 넌 아직 형을 잊어버리지 못한 거냐?” “…….” “어째서 대답하지 못하지? 역시 처음부터 나는 안 됐던 거냐?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이렇게 괴로운데, 너에게는 내 사랑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던 거냐? 아아? 윽…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와 동시에 나를 가장 슬프고 화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너희를 내 삶에서 지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잖냐. 너희가 사라지면 내 삶도 끝나는 거니까.” “카… 카라마츠… 저기…” “난 줄곧 고민했었다. 어떡하면 Honey가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바라봐줄지… 그리고 최근 깨달았다. 사람은 사랑보다도 공포와 고통에 약하고, 간단히 정신을 지배당한다는 것을. 괴로우면 괴로운 만큼 상대방을 두려워하고, 원망하게 되지. 지금 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상처입히는 것에 더 익숙하다. 한 달 정도면 나를 네 삶의 전부로 만들 자신이 있다. 널 이 집에 감금하고, 네가 내 말을 들을 때까지 세뇌와 고문을 반복하는 거지. 사실 머릿속으로 몇 번인가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백 배는 더 편할 것 같더군. 그런데도 왜 내가 지금까지 참아왔는지 아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점점 한계가 오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앞으로 1년, 한 달만이라도 너와 좀 더 평범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에게 그 사랑을 돌려받고 싶었다. 널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내가 바랐던 것은 오로지 그것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 짧은 시간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Honey… 이대로 영원히 나와 함께 있어주지 않겠나. 잠시만 편히 잠들어 있어라… 다음에 눈을 떴을 때 네 세상에는… 나 외에 아무도 없을 거다.” … … … 입술을 닫은 채 침묵속에서 남자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자신의 사색이 된 얼굴을. 이윽고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며 어깨에 경련이 일어난다. 저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카라마츠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웃고 있다. 그의 웃음도, 그의 분위기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치 어떤 스위치가 켜졌다가 꺼진 것처럼. 그게 너무 신기해서 무심코 넋을 잃어버렸다. “어땠냐?” 내게서 아무 말이 없자, 그가 먼저 내게 물었다. “대단한 연기였어… 언제나와 같은 풍경에 소품이라던가 아무것도 없는데도 엄청 리얼하게 느껴져서…” 그나마 목소리 뿐이었기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정도로 끝난 거지, 행동연기까지 했더라면 심장이 멎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도중에 그가 소리를 지를 때는 가슴속에서 우글거리는 두려움을 토해낼 뻔했다. “다행이군. 네가 상대역을 해준 덕분에 평소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새부터인가 연기가 아닌 빙의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맞아… 만약 카라마츠의 하얀 마음이 검게 물든다면 실제로도 이런 느낌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 흠잡을 곳은 없었나?” “전혀.”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문제랄까……. 아까 봤던 그의 눈빛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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