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러니까, 내가 일본남자에게 고백을 하려고 하는데."

 나는 얼굴을 붉힌 채 가슴 아래 다소곳이 모은 두손을 꼼지락거리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스키─ 라고 해야 하는지, 다이스키─ 라고 해야 하는지, 아이시떼루─ 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한국을 떠나 이곳에 살게 된 뒤로 몇 년이 흘렀던가. 어렸을 때 투병생활을 했던 것까지 합하면 더 오래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들이 가진 미세한 차이, 뉘앙스의 차이에 대해 잘 모른다. 모르는 것은 바로바로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라지만, 여태껏 쑥스러워서 좀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오늘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가히 놀라울만한 일이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 글쎄."

 카라마츠가 습관처럼 팔짱을 끼며 눈동자를 모로 굴린다. 내 갑작스러운 질문이 그를 꽤나 당황하게 만든 모양이다.

 "너와 그 남자는 잘 아는 사이냐?"

 "그게…"

 "아니, 질문을 정정하지. 그 남자도 너를 좋아하냐?"

 "모르겠어."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방 한편에 놓여 있는 커다란 손모양의 의자에 나를 데려다 앉혔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스키라고 하는 게 좋을 거다."

 "왜?"

 내 머릿속에 좋아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세 개의 말은 好き(스키) < 大好き(다이스키) < 愛してる(아이시떼루)의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냥 스키─라고 말하는 것은, 뭐랄까, 임팩트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친구끼리도 종종 하는 말이니까.

 "고백할 때 아이시떼루라고 하면 상대방은 분명 너를 스토커라고 생각할 거다."

 "그래?"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도 사귀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딱히 아이시떼루 = 사랑해 라고 딱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라면 딱히 사랑이란 말을 써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이스키도 상황에 따라서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니 관계가 조금 발전한 후에 하는 것이 좋다."

 "알았어. 그럼 네 말대로 스키로 갈게."

 두 손을 꽉 쥐고 파이팅자세를 하며 전신에 기합을 넣는다. 그러자 카라마츠가 "힘내라." 하고 짧은 응원의 한 마디를 들려주고는 부드럽게 웃어보인다.

 그리고 나는. . . .

 "카라마츠."

 "뭐냐."

 "好きだよ。(좋아해)"

 그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그렇게 말했다.

 …

 …

 …

 카라마츠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팟─ 하고 깨어나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손을 가슴높이로 올리며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 딱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정해. 그냥 장난친 거야."

 나는 그런 그에게 아까 전부터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펼쳐서 미리 접어놓았던 부분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나와있거든. '남자를 심쿵하게 만드는 방법' 이라고."

 "자…"

 내 목소리는 자신의 귀에도 아주 태연하게 들려왔다. 그러한 나의 태도가 카라마츠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장난칠 게 따로 있지!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우습게 보이지 않으니까 해보고 싶었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카라마츠의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없잖아."

 나는 당당했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런 식의 장난에 대해서는 오히려 내쪽에 할 말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는 친구사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카라마츠 본인은 언제나 나를 아무렇지 않게 끌어안거나, 내 머리를 쓰다듬곤 한다. 쓸데없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뿐이지, 그런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과 다름없다. 말로 장난을 치는 것과 행동으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당연히 후자가 더 나쁘다. 카라마츠가 본래 누구에게나 잘 해주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기에 여태껏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 . . 역시 당하기만 하는 것은 분하다. 한 번쯤은 복수하고 싶다.

 "내가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장난이든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카라마츠는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려다가 멈칫 하고서 잠시 망설이더니 평소보다 차가운 느낌의 실소를 내뱉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가버렸다.

 …

 …

 …

 사실 고백에 대해서 상담을 받았을 때는 나도 진심이었다.

 카라마츠는 그것 조차 장난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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