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은 뒤 자신의 방에서 홀로 탁상 앞에 앉아 마켓의 전단지를 보고 있노라면, 며칠 전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나베를 먹고싶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때마침 마켓에서도 고기와 해산물이 세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짐이 꽤 무거워질 것 같았지만 형제들이 전부 외출을 해서 아무도 부탁할 사람이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혼자 집을 나섰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우연히 카라마츠와 마주쳤다. 그는 내 차림새를 보고서 내가 마켓에 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기꺼이 나와 동행을 해주었다. 마켓에서 볼일을 끝낸 뒤, 나는 주자창 부근에서 화장실에 간 카라마츠를 기다렸다. 태양이 워낙 뜨거워서 모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건물의 그늘이 진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후미진 곳이었지만 카라마츠가 나올 때 나를 바로 찾을 수 있는 방향이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멍하니 하늘과 땅의 경계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서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왜 혼자 있는 거야?" 단지 그렇게 물었을 뿐이었는데, 그 낮은 음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둔하기 짝이 없는 나의 직감이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위험을 감지한 것이었다. 나는 낯선 남자 셋에게 붙잡혀 제대로 발버둥을 치지도 못하고 어딘가로 끌려갔다. 두려움을 떨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어두운 골목 안이었다. "너희 오메가들은 떼지어서 다니는 걸 좋아하잖아." 남자는 말을 할 때 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거친 손으로 내 뺨을 툭툭 건드렸다. 그 순간 도저히 자신이 사람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리에서 이탈하면 잡아먹힌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안 그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리는 덩치 큰 짐승을 가만히 노려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네 목을 물 거야." "그리고 다신 나를 볼 수 없게 해주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으라고. 오메가답게."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내가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 그가 나를 구해주러 올 것이라고. 상대방에게 그런 의무 따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도망치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믿었다. 믿어야만 했다. ───. "?" 문득 시야가 밝아지는가 하면, 골목길 입구에서 인기척을 느낀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카라마츠!" 곧장 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뭐야, 일행이 있었어?" 남자는 나를 붙잡아 바닥에 내팽겨친 뒤 카라마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워우─. 꽤 무서운 눈을 하고 있잖아." 이윽고 카라마츠의 앞에 선 남자는, 그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한껏 건들거렸다. "네 물건 찾으러 왔냐? 응?" "그녀는 물건이 아니다." 창백한 얼굴의 카라마츠는 어째서인가 앞머리가 물에 젖어 있었다. 티셔츠의 앞부분과 걷어올린 소매도 같은 이유로 약간 어두운 색을 띠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뭔데? 네 친구라도 돼?" 남자는 자신의 동료들을 돌아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메가랑 친구라니, 귀여운 녀석이네." 그리고 웃음을 멈춘 뒤에는, 카라마츠의 어깨에 능청스레 손을 올렸다. "황당한 소리 말고 같이 즐기자구." 퍽─! 고요한 골목 안에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퍼지고, 남자의 고개가 홱, 꺾였다. "워, 워, 워, 워, 잠깐. 이 냄새…" 남자는 카라마츠에게 얻어맞은 코를 부여잡으며 뒤로 추츰추츰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자세를 고쳐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 이 새끼… 러트중이군?" 나는 남자의 말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카라마츠가. . . .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생긴 건 번듯한 녀석이 꼭 살인마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게 말야."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나와 나란히 걷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카라마츠가 러트중이었다니. "난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글쎄,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녀석과 그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서서히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이전과 같은 타격음이 연달아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누군가 내 앞으로 쓰러지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문득 시야에 들어온 차가운 바닥에는 새빨간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 … … 현실은 언제나 상상이상으로 두렵다. 아까에 비하면 상당히 소란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누군가 얻어맞는 소리와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보았다. 카라마츠는 괜찮은 걸까. "죽어. 죽어,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다행히 그는 괜찮았다. 얼굴 곳곳에 상처가 보이고 피를 뒤집어쓰긴 했어도, 그의 밑에 안하무인으로 뻗어 있는 남자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카라마츠는 이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인 남자의 멱살을 붙잡고 그의 면상에 계속 주먹을 날렸다. 남자가 말했던, 살인마와도 같은 눈빛을 한 채. "죽어. 죽어. 역겨운 새끼."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카라마츠에게 달려갔다. 달려가서,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르는 그의 팔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그를 말렸다. "그만해!" 퍽─. 퍽─. 잔인한 폭력에 살갗이 에는 소리가 들려올 때 마다 내 심장은 흠칫흠칫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은 놀라움이기도 했고, 두려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반쯤 이성을 잃은 카라마츠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만하라니까! 그러다 병신 되겠어!" 내가 울먹이는 소리로 외치자, 그제서야 카라마츠는 때리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이미 높이 들어올려진 주먹은 한순간에 남자의 얼굴을 뭉개놓았다. 그것이 폭력의 마지막이었다. 남자의 멱살을 놓은 카라마츠는 몸을 벌떡 일으켰지만 휘청거리며 골목길의 출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는 죽이 되도록 얻어맞고 기절한 남자의 곁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아무리 한량이라 해도 다친 사람을, 그것도 내 친구에 의해서 그렇게 된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람을 불러야 해." "호들갑 떨 거 없다. 그냥 같은 부류끼리 싸움 좀 한 것 뿐이야." 카라마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파란 소매로 얼굴의 피를 닦았다. 말이 파란색이지 그 소매 조차 피로 물들어서 거의 빨간색이나 다름없었다. 집에 갈 때는 가더라도, 내가 가진 손수건으로 피투성이가 된 그를 어떻게든 해주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어딘가에서 살인이라도 저지르고 온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같은 부류라니. 나는 카라마츠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부터 그가 알파라는 젠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자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던가, 역겹다던가. 피해자의 입장인 나조차도 알파를 그렇게까지 비하한 적은 없었다. 그도그럴 것이 내 친구들은 달랐으니까. 내게 상냥하고, 나를 해치기는 커녕 언제나 나를 보호해줬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가자." 내가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을 때, 카라마츠는 어느덧 내게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망설이는 나를 붙잡고 일으켜세워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 무언가 끔찍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카라마츠의 돌변이 오늘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 . .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