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대본이냐? 왠지 그리운 기분이 드는군."

 "낭독을 하는 것만으로도 일본어실력을 늘릴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 말이야. 책은 자꾸만 잠이 쏟아지니까 일단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대본부터 시작하려고."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대본이라는 건 소설과 다르니까, 제대로 감정도 넣어서 읽지 않으면 안 돼. 음성을 듣고 억양이나 발음을 참고하면 너에게도 좀 더 도움이 될 거다."

 "그래서 말인데, 카라마츠가 상대역 해주지 않을래? 오소마츠에게 부탁해봤는데 목소리에 영혼이 없어. 너는 연극부였으니까 훨씬 잘 하겠지."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극부를 했던 게 언제 적 일인데. 어차피 취미로 했을 뿐이고 말이야."

 "하자, 하자─. 내 공부좀 도와줘─."

 옷깃을 붙잡고 흔들자, 그가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는 대답으로 받아들이고 미리 2부 인쇄해놓았던 대본을 그에게 나누어주었다.

 …

 …

 …

 조용한 방 한 가운데 서로 마주선 우리는 표정을 진지하게 고치고 굳어 있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늘렸다가 오므린 뒤 연기를 시작했다.

 "니가 말한 눈물이란게 뭐야? 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데 눈물이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주인공이 신에게 환생을 약속받고 그 조건으로 49일 안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3방울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간 이야기였다.

 판타지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지만, 나는 그 드라마를 볼 때 마다 이상하리 만큼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이 가고,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가슴이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것을 첫번째 수단으로 정한 것이었다.

 "그냥 마음일 수도 있잖아. 날 정말 사랑하는데 울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카라마츠는 대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대사를 외우고 있다가, 내 연기가 끝나고 턴이 넘어가는 순간 고개를 들어 나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평소의 그와는 사뭇 다른, 냉정한 표정이었다.

 "눈물이 가장 충만한 감정상태를 대변하는거잖아. 인간들 가장 극한감정일 때 울잖아. 너무 좋아서, 너무 슬퍼서, 너무 괴로워서, 너무 억울해서, 거짓눈물도있고, 악의 눈물도 있지만 그걸 우리가 깔대기로 걸러주는데 뭐가 문제야?"

 그가 연기하고 있는 '스케쥴러'라는 역할은 쉽게 말해 저승사자로서, 주인공이 49일 안에 눈물을 모으지 못할 경우 그녀의 영혼을 회수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짓궂은 면을 가진 캐릭터이다. 주인공과 특별한 과거가 있지만 그녀에 대한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작중에서 그를 가장 좋아하고, 그 만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

 카라마츠의 눈을 보고 있으면 주인공을 향한 스케줄러의 마음, 그녀의 영혼을 회수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는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 감탄을 하며 무심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자 카라마츠가 계속 하라는 듯이 내게 눈짓을 했다.

 "믿을 수 없어서 그래. 내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럴 리 없어."

 나는 이어서 대사를 읽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카라마츠의 연기, 그의 표정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자꾸 남탓하는데, 당신은 남을 위해 순도 100%눈물을 흘려 줄 인간이야?"

 …

 …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말한다. 연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은 꽤나 낭만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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