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의 한적한 공원. 파란 하늘의 뭉개구름과 분수대로부터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느것 하나 어긋나는 것 없이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면 오히려 기분이 오싹해지고 불안감이 밀려온다.

 …

 …

 …

 가만히 앉아 사념에 잠겨 있던 나는 그만 일어나려고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문득 뒷쪽 벤치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오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막 엉덩이를 떼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나의 어깨를 눌러 다시금 자리에 앉게 했다. 이윽고 살벌한 정적이 주변을 애워싸더니, 가히 신경이 곤두세워질 만한 낮고 음흉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우성오메가 발견─."

 "……."

 "오늘은 운이 좋네─. 크큭─…"

 끔찍하게도, 나는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물을 비추는 햇빛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알파의 날카로운 이빨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나는 어떻게 하면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지, 짧은 순간동안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했다.

 …

 …

 …

 "놔!"

 상대는 알파 한 명과 베타 한 명의 남성체들. 몇 번이고 일어나 도망치려했지만, 나의 저항은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그런 내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말로, 몸짓으로, 완전히 제멋대로 나를 희롱하고 모욕했다.

 "놓으라니까! 소리지를 거야!"

 "그럼 우리는 가만히 있고? 쓸데없는 짓 하다 다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좀 놀자는 거 뿐인데 왜 그래?"

 당초에 아무도 없는 공원에 혼자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스스로의 직감이 경고를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한 오기를 부렸었다.

 무섭다는 이유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고 죽은 듯이 숨어 지내는 삶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극도의 회의감이 느껴져서, 가끔은 일탈을 해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사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나도 그저 가끔은 그런 여유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는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 걸까.

 "날씨도 더운데 그 스카프 풀어. 물지 않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응?"

 "자, 내가 풀어줄게."

 "싫어!!!"

 자신의 가장 연약한 곳을 감추고 있던 나의 마지막 방어수단, 그리고 자존심은, 실제 아무것도 아닌 두 남자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허무하게 흘러내렸다. 그 순간 태양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위를 애워싸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졌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꼴보기 싫었다. 너무 수치스러워서, 차라리 그냥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깡─!

 그때 금속이 무언가와 부딪히는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고개를 들고,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낯익은 얼굴의 두 사람이 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확실히 나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 두 사람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였다. 한편 나를 괴롭히고 있던 남자들은 각각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은 채 고통을 호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벤치 아래에는 처참하게 구겨진 빈 깡통이 나뒹굴고 있었다.

 "방금 누가 찼어? 죽고 싶냐!"

 나는 그 즉시 남자들에게서 벗어나 형제들에게 가려고 했다. 그러나 나를 속박하고 있는 손은 여전히 강했다.

 "우리집 애한테 뭔가 볼일이라도?"

 기세 좋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남자는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멈칫, 하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나 오만하던 남자가 간단히 기선제압을 당하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카라마츠의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에 곧 납득이 되었다. 그는 형제나 친구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고, 오로지 그 때만 진심으로 화를 낸다. 그리고 그가 화를 낼 때는 오니가 된다. 마주하는 순간 움직일 수도,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무서운 오니.

 "따… 딱히 볼일이랄 건 없고, 그냥 같이 놀자고 꼬시고 있었을 뿐이야. 우리들 친구거든."

 "아아─, 친구였던 건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지."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더군다나 나를 괴롭힌 남자인데, 친구라니.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내가 반발을 하기 전에, 돌연 퍽─! 하고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친구는 가려서 사귀지 않으면. 안 그러냐, 시스터?"

 "응…"

 나는 이마의 혹이 아물기도 전에 코를 붙잡고 벤치 위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켜보고 있던 다른 남자도 놀랐는지, 그 전까지만 해도 강했던 손이 의외로 간단히 나를 놓아주었다.

 "이게 무슨 짓… 크윽…! 싸우자는 거야, 뭐야?!"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들자, 카라마츠는 팔에 걸치고 있던 파란색 외투를 던졌다. 이윽고 펄럭하고 날아, 그의 외투가 남자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그는 그대로 옷의 끝자락을 모아 손에 움켜쥐고 남자를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사춘기의 버릇없는 아이를 훈계하듯이 뒤통수를 짝 내리쳤다. 그 사이 나는 공터의 구석으로 달려가 모퉁이 뒤에 숨었다.

 "그만두지 못해?!"

 갑자기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리자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또 한 명의 남자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는지 잠시 우물쭈물거리다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어억!"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가 구멍에 빠지듯이 밑으로 쑥 내려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치마츠가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의 아치모양 손잡이를 남자의 발에 걸어 그대로 잡아당긴 것이었다.

 "100년은 이르다, 이 놈아. 그렇잖아도 우산을 가지고 나왔는데 비가 안 와서 짜증나던 참이거든? 꺼져."

 카라마츠도 카라마츠였지만,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는 이치마츠 역시 만만찮게 무서웠다. 한 번 더 건드렸다가는 우산끝으로 눈을 찔러버릴 것 같은 살벌한 목소리였다.

 "이 자식들…! 두고보자!"

 모래바닥에서 뒹군 탓에 먼지투성이가 된 남자는 아직도 벤치에서 코를 부여잡은 채 끙끙 앓고 있는 자신의 일행을 부축해 도망치듯 장소를 떠났다.

 양아치나 다름없었던 두 남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쯧쯧'하고 혀를 차던 카라마츠는 땅에 떨어진 나의 스카프를 주워 먼지를 털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다친 데 없냐?"

 "없어. 괜찮아."

 그는 직접 내 목에 스카프를 둘러 묶어주었다. 꽤나 어설픈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기뻐서, 풀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혼자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궁상을 떨고 난리야? 우리가 마침 지나가던 길이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음 어쩔 뻔했어?"

 이치마츠는 변함없이 까칠했지만, 그래도 나를 걱정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

 …

 그 뒤, 나는 안심하고 두 사람과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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